지난 1일(현지시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스코틀랜드 화가 잭 베트리아노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명화 '싱잉 버틀러'(The Singing Butler)를 거리의 화가 뱅크시가 재창조한 그림 '크루드 오일(베트리아노)'이 경매에서 430만 파운드(약 80억원)에 팔렸다. 록 밴드 '블링크 182'의 베이시스트 마크 호푸스가 2011년 사들여 소유하던 그림을 경매에 내놓았다.
파이프(fife)의 메트힐(methil)에서 태어난 베트리아노의 이 작품은 폭풍우가 치는 해변에서 한 커플이 현란한 춤사위를 즐기고 있는데 집사와 하녀가 우산을 받쳐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뱅크시는 노란색 방호복을 입은 두 사람이 석유 드럼통을 치우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뒤에 그려넣었다. 조금 더 뒤에는 유조선이 가라앉고 있었다.
뱅크시의 작품은 4일 저녁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한 개입 수집가의 손에 넘어갔다. 당초 이 그림은 300만~500만 파운드에 낙찰될 것이란 예상이었다. 베트리아노가 프랑스 남부 니스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지 며칠 만의 일이다.
뱅크시가 손으로 기름과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그려 2005년에 처음 전시됐다. 처음에는 노팅 힐의 폐점한 점포 윈도에 놓여 있어서 지나가는 행인들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베트리아노의 원화는 역시 소더비에서 2004년 74만 4800 파운드(약 14억원)에 팔려 당시 스코틀랜드 화가의 작품 가운데 최고가 낙찰가를 기록했다.
호푸스는 '크루드 오일'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를 방문한 뒤 사들였다. 그는 이 작품을 본 순간 자신과 아내 스카이가 "사랑에 빠져 실수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매와 별도로 자선기금 모금도 진행돼 LA 아동병원, 세다스 시나이 뇌종양 연구에 전달된다. 호푸스 부부는 수익금 일부를 연초 이 도시를 할퀸 산불 복구에 힘을 보탠 캘리포니아 소방재단에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1951년 11월 17일 파이프(fife)서 잭 호건으로 태어난 베트리아노는 열다섯 살에 학교를 때려치우고 광산 엔지니어로 취업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 스물한 번째 생일에 여자친구로부터 수채화 물감 세트를 선물 받아 짬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커크캘디 갤러리에서의 작업으로 영감을 끌어올리며, 사무엘 페플로(1871~1935)와 윌리엄 맥태거트(1835~1910) 같은 화가들의 그림을 연구했다. 골똘히 두 화가의 작품을 지켜봐 갤러리 직원들의 의심을 살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왕립 스코티시 아카데미의 연례 쇼에 두 그림을 출품했는데 첫날 모두 팔리는 바람에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으면서 돌파구가 만들어졌다. 그의 작업은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 런던과 홍콩, 요하네스버그, 뉴욕 등에서의 전시회로 이어졌다.
베트리아노 그림을 구입한 이들로는 잭 니콜슨, 알렉스 퍼거슨 경, 팀 라이스 경, 로비 콜트레인 등이 있다.
그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으며 알코올과 약물 의존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공개적으로 토로해 왔다. 대변인은 고인의 죽음이 "현대 스코틀랜드 화단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면서 "그의 도발적이며 가없는 작업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사로잡고 미래 세대에 영감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필름컷 스튜디오는 대전 엑스포 시민광장 아트센터 2층과 3층에서 뱅크시 사진전 'WHO IS BANKSY by Martin Bull'을 7일 개막해 6월 1일까지 석 달 동안 선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