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다니지 못하니 이 참에 바다라도 다녀오자고 한 날 새벽까지 열심히 월드컵 응원을 하다 열
심히 잘 싸운 우리 젊은이들에게 질펀하게 칭찬 한상 차려주고 내쳐서 보따리를 싼다
급히 남부터미널로 달려가 마눌님이 안면도행 버스표를 끊는 사이 살짝 돌아서서 씨앤선인가 먼
가 하는 펜션을 전화로 예약을 해둔다
(아무래도 평일이라지만 나같은 미친 사람들 많아 혹시라도 헤맬까 봐서 예약은 하지만 발길닿는
대로 떠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마눌님 덕분에 드러내놓고 예약은 못한다)
그렇게 잠깐 사이에 곧 바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싣자마자 난 잠 들어버리고(어제 밤엔 응원하느
라 바빠서 잠을 못 잤거덩) 잠이 깨니 썰렁하기만한 안면도터미날이다
할매,할배 바위 사이로 지는 해는 볼 때가 아니지만 그래도 서해 제일의 낙조라는 꽃지의 일몰을
기다리기엔 너무 빨리 와 우선 식당에 들어서서 가볍게 요기를 하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총각에
게 어디가 좋겠느냐고 하니 우선 휴양림과 수목원들러 보고 나서 꽃지로 가면 될것이라한다
걸어가기엔 좀 멀다 해서 택시를 잡아타니(약 30리 길은 얼추될 것 같은디) 주욱 벋은 길을 잠깐
사이에 휴양림에 닿고 이 곳에도 드문드문 사람들이 와 있다
이조시대에 궁궐에 쓸 나무를 확보하기 위해 이 곳에 금표를 붙였다는 그 유명한 소나무 숲이라
는 휴양림은 유명한만큼 소나무들이 쭉쭉 하늘을 보고 곧게 서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영동고속도로를 가다보면 알 수 있듯이 봉평 이서로 크고 곧은 소나무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얼마든지 크고도 곧은 소나물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참으로 오랜만이다)
그 소나무 숲속을 이리저리 한가롭게 거닐다가 또 수목원으로 가보자
휴양림에서 도로 밑으로 통하는 지하도로 해서 산길을 올라 산등성이에서 내려다 보니 그림같이
꾸며진 수목원이 보인다
그 사이를 걸어 다니다 보니 보기 힘든(우리 고향에서는 자주 볼 수 있지만) 층층나무가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다다가서 팻말을 보니 그건 층층나무가 아니라 산딸나무란다
그러니 청계산에서 보았던 층층나무도 실은 산딸나무란 말인데 내 눈으로는 도저히 층층나무와 구
별할 수 없는데 그 팻말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층층나무과란다
그러면 그렇지
날은 무지하게 덥고 그것도 걸었다고 또 힘들어 하는 허리와 다리를 달래자고 잘 꾸며진 한옥으
로 들어서서 시원하게 사방이 트인 누마루에 마치 쥔인 것처럼 자리를 잡고 누어있으니 부채 하
나 들고 시조라도 한수 읊으면 내가 바로 선비가 아닌가
그렇게 한가롭게 누워 있는데 어느사이에 사라진 마눌님이 앵두를 한웅큼 따가지고 온다
요 뒤꼍에 가면 앵두가 무지하게 많이 달렸다나......
요걸 관리아자씨헌티 일러바쳐? 말어?
그래도 앵두는 무지하게 맛있다
이제 꽃지로 가자고 길가로 나왔으나 지나가는 택시는 한참을 기다려도 보이지 않고 아까 택시기
사가 꽃지까지는 잠깐이면 간다고 해서 그 말만을 믿고 꽃지까지 걸어서 가다가 택시가 보이면 잡
아타기로 했는데 약 5리 정도를 걸었는데도 지나가는 택시는 아직도 보이지 않고 꽃지로 가는 갈
림길도 우리 걸어온 만큼 저 멀리 보일 쯤에(그 기사는 차로 잠깐이라 한건가?) 지나가던 차가 조
르르 달려와 옆에 서더니 어디로 가느냐고 한다(오매! 반가븐거)
꽃지까지 간다고 하면서 갈림길까지 태워달라고 했더니 꽃지까지 태워주신댄다
관광지에 사는 사람들이라서 이렇게 친절한건가?
구경 잘하고 돌아가시라는 고마운 말까지 덤으로 받으면서 꽃지에 내리니 그렇게 맑던 하늘이 갑
자기 안개에 싸여 온 세상이 뿌옇게 된다
그 유명한 할매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는 보리라 아예 생각도 않았지만 이젠 낙조 자체도 볼
수 없는가 하고 낙담하고 있는데 그 안개가 조금 걷히면서 할매바위가 안게 사이로 흐릿하니 얼
굴을 내말고 바닷가 모래사장 여기저기 사람들이 보인다
부리낳게 모래사장으로 내려서서 불빠진 바닷가를 걸어서 할매바위께로 가니 안개 속에서 살그머
니 보이는 바위가 환상이다
어떻게 내가 오는걸 알고 이렇게 성대하게 환영한대?
안개에 싸인 할매바위의 신비함에 감탄도 하고 모래사장도 거닐어도 보지만 아직 해지기는 멀어
서 해질때까지 방포에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합의를 보고 어느 횟집에 가서 참돔 한마리 잡아서
거하게 배를 채우면서 마눌님의 투닥거리기가 시작된다
그전에는 안 그랬는데 수술 후에 유독 술에 대해서는 유독 잔소리가 심하다
반병만 마셔. 아녀 한병 정도는.... 한벙같은 소리하네, 쓰벌.........
그렇게 투닥거리는 사이에 나갔던 물은 도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해도 안개 사이로 떨어진다
그렇게 지는 해를 보고 있으면서 욕심이 더 생겨서 할매바위와 할배바위 사이에 물이 다 차기를
기다리지만 이젠 어두워져서 더 기다릴 수 없다
그럼 자러 가야지
시킨대로 창기리라는 곳에서 택시를 내리니 무슨 놈의 동네가 집은 몇채없고 큼지막한 슈퍼만 두
개가 온 동네를 차지하고 있디야?
(낭중에 알고 보니 이 부근은 왼통 펜션들이 널려 있어서 그 곳에 놀러 오는 사람 상대하기때매
그렇게 크다는데)
가끔씩 지나가는 차 밖에 없이 조용한 동네서 아주, 진짜로 아주 오랜만에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
으면서 한참을 있다가 펜션에서 나온 차를 타고 들어간 동네
다른 곳은 적막강산임에도 이 곳은 휘황찬란하다
온 동네가 몽땅 펜션이라서 그런가
그래도 다행히 요란한 풍악소리는 없다
마눌님은 서둘러서 샤워를 마치고 곧 바로 꿈나라 들어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토옹 잠이 오지를 않
아 별 수 없이 테라스로 나가서 담배 한대 피워물고 어두운 밤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
저 거너편 간월도 쯤에 불빛이 반짝이고 집 뒤로도 휘황찬란하지만 내가 내려다 보는 밤바다는 어
둡기만 하다
그 어둠을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는데 언제 몰려 들었는지 모기들이 극성을 부린다
이만큼의 호사도 내게는 아직 과분한건가?
버릇처럼 일찍 일어나니 창빡으로 바닷가가 바로 눈앞에 있다
넓게 퍼진 갯벌, 자욱한 안개, 그 사이로 외롭게 보이는 바위섬.
어제 내가 내려다 본 바다는 바다가 아니라 갯벌이었던거다
찰지고도 찰진 개벌엔 아직 해뜰 생각을 않고 안개만 자욱해서 해돋이도 보기는 틀렸다
아무려나 넓기만한 갯벌을 바라보는 사이에 안개는 조금씩 걷히고 해는 어느 사이엔가 중천에 떠
있고 햇빛을 받은 갯벌은 황금색으로 변해서 그 화려함을 한껏 뽑내고 있다
그 화려함도 밀려 들어오는 물줄기에 스러져가고 물이 바로 아래에 차는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제
돌아갈려고 짐을 싼다
창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동네사람들끼리 태안에서 백합축제를 한다고 말한다
남는게 시간이고 오늘저녁까지만 집에 들어가면 되니까 서둘 필요 하나도 없어 또 태안가는 버스
에 몸을 싣는다
아무렴 바쁠 것 없이 사는 세상에서 가고 싶으면 가는거제
그렇게 내린 태안읍내에서 축제장소를 물으니 여기서도 한참을 더 가야하고 다니는 버스도 없다
고 한다
기왕에 하는 축제라면 사람들이 잘 다닐 수 있는 곳에서 하지 ㅉㅉㅉㅉ
그래서 또 택시를 잡아타고 간 축제장소는 밭 가운데다
조그만 동산 하나가 온통 백합꽃밭인데 아직 꽃은 피지 않았고 찾아온 사람도 없다
행사 관계자들이 외국에서 수입한 백합을 연구 중인데 이 동네서 그 구근을 받아서 증식시키는데
올해는 늦게 날씨가 풀려 꽃이 늦다고한다(그래도 하우스 안에서 키운 것들은 활짝 피었다)
백합을 판다기보다는 이런 농사도 짓는다는 것을 홍보할려고 하는게 행사목적이라는데 이젠 쌀 농
사만으로는 영농을 할 수 없는 고단함이 보여서 맘이 서글퍼진다
그렇게 찝찝하게 돌아오는데 태안을 감싸고 있는 이 부근에서는 볼수 없는 마치 수락산처럼 보이
는 바위산이 보인다
백화산이라고 하는데 육산만 있는 동네에서의 바위산이라 그런지 신기하기만하다
그래서 낭중 언젠가는 저 산을 올라보고 가까운 몽산포쯤에서 낙조를 보리라 미리 예약해두고 서
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면서 또 이틀간의 여행은 끝났다
첫댓글 부부간에 오붓한 즐거운 이틀간 여행기 부러울 정도구...ㅋ 곳곳에 머물렀던 영상그림 감상 잘 했으이....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