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지간 지난 주 내내 바쁘게 이뤄진 스케줄 덕분에 온 몸이 극도로 피곤하지만
담주 초반에 영암으로 길 떠날 생각에 부랴부랴 김장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연말이 가까워진다는 이유로 스케줄이 한참 밀려있어 별 수 없이 미리 김장을 해야했다.
본래는 매해 11월 20일 즈음 앞뒤로 김장을 하였건만 날씨가 아직은 더워도 서둘 수밖에.
해마다 하는 김장이지만 언제 부터인가는 김장의 폭이 줄었다.
백포기 넘게 담가서 이집 저집 한 일곱집을 나눠주던 시절은 열정과 에너지가 차고 넘칠 때이다.
이제는 텃밭에 짓는 배추농사도 방치 상태인데다가 웬만하면 사먹는 시대로 들어섰으니
굳이 김장을? 이었으나 그래도 오로지 집 김치만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힘들고 고되도 김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하였어도 고추농사도 망했고 배추는 더더욱 그러하다.
워낙 지난 가을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온갖 작물들이 물에 점령당해 녹았다.
물론 과일들도 그러했을 터....기후 온난화가 문제인지 계절 감각의 상실인지 모를 일이다.
어쨋거나 아쉬운대로 텃밭 배추 손질을 남편에게 맡기고 속재료를 사러 길을 나섰다.
하지만 배추를 비롯한 온갖 부속품이 입을 쩍 벌어지게 한다.
정말 같지 않은 배추 한포기가 4500원, 웬만하면 부르는 게 값이다.
쪽파 다듬을 시간이 없을 것 같길래 다듬어놓은 쪽파를 보자니 12700냥 이다.
와우, 저건 아니지 싶어서 흙쪽파를 사서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더니
"나 같으면 다듬어 놓은 것을 산다"나 뭐라나?
그렇게 부속재료를 사러다니는데 장보러온 남편들은 또 얼마나 많던지.
"이게 갓이에요? 어느 갓이 좋아요?"
"뭐 각자 나름이죠 뭐. 청갓, 홍갓 섞어서 사세요. 아내분이 뭘 원하는지 모르니까..."
이후 발빠르게 스캔한 김장 속재료들을 사고 김장 후 먹을 수육거리까지 사고 휘리릭 달려와
김장 재료 손질을 끝내고 나니 열두시라 점심을 먹은 후 본격적으로 김장 준비에 들어선다.
물론 육수는 새벽같이 일어나 끓였고 재료 다듬기 전에 배추를 절였으므로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육수, 늙은 호박을 기본으로 디포리, 훈제 멸치, 북어포 머리부분, 양파와 다시마
그리고 온갖 해산물과 버섯을 말려 곱게 빻은 가루로 즉 나만의 천연재료를 넣고 오랜 시간 끓여 내었다는 말이다.
늘 해마다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할 때 마다 마음자락이 뿌듯하다.
와중에 요즘 팔꿈치가 아파 힘을 못쓰는 쥔장을 위해 남편이 무도 썰어주고 쪽파도 다듬고 갓도 손질해 주었으며
대파까지 썰어주면서 눈물이 난다고...."김장김치가 맛있으면 자기 덕분"이라고 큰소리 친다.
"암요, 암요 그렇고 말구요. 올해는 엄청나게 도와 주었으니 한 몫 하신 겁니다."
안성으로 기거처를 옮긴 이후로는 김장 때마다 남편이 도와줘서 혼자서도 충분히 그많은 김치를 담갔으나
이제는 꾀도 나고 점점 일하기가 싫어지니 아마도 세월값을 하는 듯하다.
그랬어도 일용할 양식이니 겨울내내와 김장 직전까지 먹으려면 나만의 비법이 있어야 하는 법.
마른 고춧가루는 물론 물고추 간 것과, 고추씨, 가자미 젓갈과 새우젓, 생새우와 동태 손질한 것과 배까지
육수에 밥 한그릇 갈고 무 간 것, 생강과 마늘 간 것을 또다시 육수와 함께 불린 후 온 몸을 다해 비벼놓는다.
이후 갓과 쪽파랑 대파를 넣고 마무리 휘저음을 한 후 속이 양념에 붙을 때 까지 기다리면서 수육을 삶는다.
당연히 육수 남겨놓은 것과 커피, 후춧가루, 정종과 간장과 참치액젓을 넣고 압력솥에 한참을 돌린다.
다섯시 반, 소금에 절여놓은 배추를 건져 상태를 본다.
원하던 반 절임 상태가 되었다.....꺼내서 두어번 씻은 후 소쿠리에 건져놓는다.
이미 초벌에 씻어놓았던 고로 많이 씻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약간의 물빠짐 시간을 기다리며 밥을 하면서 겉절이 김치와 수육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시간을 내고 기다려 김장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가족에 대한 예의? 라고도 생각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내가 잘하는 것을 거침 없이 해낸다는 것은 자부심이기도 하며
자존감을 상승시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여하튼 그릇을 늘어놓고 김치속을 버무려 김장김치와 깍두기를 완성하면서 정해둔 순서대로 넣는다.
누군가에게는 맛있을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입맛이 다를 수도 있을런지 몰라도 최선을 다했다.
정해진 예정일이 아니라 부랴부랴 김장 김치를 담그면서도 온 마음은 "제발 맛있어져라" 였다.
그렇게 올해의 김치도 끝났다.
아직은 김장 밑김치도 남겨져 있으며 삼겹살에 곁들이거나 김치찌게에 사용될 묵은 김치도 남아 있다.
다행이다.
사실 철철이 담가놓은 김치 종류는 많다.
가죽, 무말랭이, 민들레 김치를 비롯한 다양한 제철 나물 김치와
나만의 방식으로 절여진 명이나물 등 절임 식품류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준비해 두어 계절에 맞게 꺼내 먹긴했다,
그리고 말린 나물과 갓김치, 쪽파김치도 남았으니 겨울을 나는데는 지장이 없으렸다?
하지만 김장김치 담그는데는 너무 많은 비용과 체력적인 한계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니
이쯤되면 사먹는 것이 남는 것인가 싶어도 그게 또 쉽지 않은 일.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왔으니 당연히 아무런 조치 없이 성장하는 무농약 농사법에 걸맞는 재료로 담그는 재미는 맛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가 아닌 선택한 삶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 마땅한 법.
그랬거나 말거나 이제는 남겨진 스케줄을 확인하며 가는 해를 즐길 예정이다.
그러다 보면 또 새해가 찾아들 것이다.
또한 매우 바빴지만 무탈하게 잘 지내진 한 해를 기꺼워 하면서 새해를 맞게 될 것이다.
첫댓글 ㅋㅋㅋㅋ 저는 교회에서 국수먹고 남은 김치를 주는데,, 제가 주방 책임자라,,, 그걸로 대체를 하려합니다... 정말 양념도 많이 들어가고,,, 맛있겟어요,,
ㅎㅎ
그런 경우가 있군요.
무엇이든 만족하면 최고...
맛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올해 처음 고장난 어깨 덕분에 김장하기를 포기하고
사먹기로 결정하고 보니 한편 아쉽기도 하네요. 하긴 교우들과 함께 만들기가 이젠 어려우니 엄두가 안나기도 하고 전보다 좁아진 집도 엄두 안나게 하는 동기도 되긴 했네요. 여럿이 먹다 둘이서만 먹으니 소모되는 양도 퍽이나 줄어서 사먹어도 되지 싶긴 하지만 만들어 먹던 맛이 그립기도 하네요.
뭐든 하나는 포기해야 하니 배추를 포기하나?
김장을 포기하나~?
좌우지간 포기~! ㅎ
맞아요.
이젠 김장이라는 거창한 행사는 무리인듯.
그렇다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k푸드 김장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고
적당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