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1)
오래된 연인들이
그러하듯
사소한 일로 다투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연락이 끊기고
후회로 마음 졸이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익숙하고 다정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수화기 속에서
몹시 낯설게 들리고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한결 정돈된 모습이었고
단정하게 빗어 넘긴
긴 머리와
물방울무늬 포플린 원피스가
가을바람에 날린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헤어지긴 죽어도 싫은데 그럼 우린
어떻게 뭘 해서 먹고살 건데?"
".........."
침이 마른다.
못내 확실한 대답을 못했다.
따가운 가을 햇살 속으로
멀어저 간
그녀의 모습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강둑에
흐린 코스모스가 어지럽게 날린다.
천호동 한강변이었고
송파우체국 다니던 미스朴 이였다.
비록 말은 그렇게 했어도
백수 남자와 함께
살아갈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었다는 소식을
세월이 지난 후
그녀의 절친으로부터
전해 들었고
먹고사는 일이 내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란 걸
한평생이 지난 후
알았다.
가로수
무성한 가지에
마지막 매미 울음소리
요란하고
이제
빗속에 여름 보내고
입추 지나고
코스모스 핀
그 언덕
푸른 하늘 흰 구름처럼
아득한 그리움이 깃든 곳
다시 그 자리 그녀 앞에
설 수 있다면
아! 가을이
문턱에 와 있다.
글/벽창호
첫댓글 송파 우체국 다니던 미스 박 은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죠 ㅋ
왠지 같은 동네 (공장) 출신이라 궁금 ~~
기억조차 희미한 시절에
이야기이지요 ㅎ
송파구는 우리 동네 인데..
코스모스 하늘 거리는 강둑엔 추억이 예쁘게
묻어 있군요
갈대 밭도 많았고
드믄 드믄 기와집 사이에
우체국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
지금이라면~~~이런 전제가 깔린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안타까울 뿐이죠......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정 많던 시절이었지요 ^^
벽창호님 미스박 하고는 인연이
거기 까지였나봐요 ㅋ
더운 날씨에 흘러간 추억에 젖어
더운줄 아시려나요 ㅎ
ㅎㅎㅎ
그런가 봐요 ^^
벽창호님의 글은 하나의 시 입니다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오개님
그리 인정해주시니
무지 감사해요 ^^
에고...안타까운 사랑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 실아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님에..
혼돈에 청춘을 지나고 보니
삶에 지혜도 생기더라구요 ^^
에효
인연이 아니었던 거죠
가끔씩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추억을 뒤돌아 보는것도
낭만이고 아름다운 일이지요
그런게 없는사람은 그저
부럼 부럽~~
순수와 순정의 시대이었지요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