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처음 나치가 등장했을 때…
처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에밀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마틴 니묄러(1892~1984) 신부가 쓴 ‘나는 침묵했습니다’라는 이 시는 국가가 정의롭지 못하고, 인민을 탄압해도 침묵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유명한 시입니다.
니묄러 신부는 나치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운동가’, ‘가톨릭교도’, ‘기독교도’, ‘이웃’, ‘친구’를 잡아갈 때 침묵했다고 합니다. 왜? 자기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자 그리고 노동운동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침묵한 결과는…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이야기 해줄 사람이…
아무도 나를 위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 밥 먹을 때 말하면 꾸중을 듣고 살았습니다. 이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말하면 잔소리를 합니다. 또 침묵은 금이란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는 것보다 적게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2013년 11월 현재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민에게 침묵은 금이 아니라, ‘악’입니다.
18대 대통령 선거는 2012년 12월 19일 끝났습니다. 당선자는 박근혜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열 달이 지난 지금까지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릴 정도로 ‘정통성’ 시비가 일고 있습니다. 1987년 12월 13대 대통령 선거 이후, 선거 결과를 두고 열 달이나 넘게 받아들이지 않는 때는 없었습니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싫어하고 탄핵까지 했지만, 선거 결과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양상이 전혀 다릅니다. 국정원를 비롯한 국가기관이 부정선거에 개입했기 때문에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선거결과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정선거가 있었다며 특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도 국정원이 부정선거에 개입했다고 발표해 사법부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근혜정권은 국정원 부정선거 수사에 대해 방해하고 있습니다. 채동욱 검찰총장을 사생아 문제로 잘랐고,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을 내쳤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보고 누락과 절차 위반 따위 이유를 들어 3개월 정직에 처했습니다. 이에 비해 수사방해 의혹을 받았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박근혜검찰’ 부활을 자처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국정원 부정선거 물타기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전공노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을 위헌 정당으로 몰아세웁니다. 박근혜정권 8개월만에 대한민국은 ‘석기시대’로 돌아갔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여당 의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언론’을 자처하는 방송들은 박 대통령이 한복을 입었다고 찬양하고, 무슨 색깔을 입었다고 찬양합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사실은 침묵합니다. 권력 비판이 근본인 언론이 국정원 부정선거에 침묵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포기 선언과 마찬가지인데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지난 9일 한국방송학회가 발표한 ‘박근혜 정부 기간 KBS와 MBC 뉴스에 대한 방송학자들의 평가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영방송의 ‘중립성’ 평가에서 10점 만점에 KBS (3.71)와 MBC (3.16) ‘사회 감시 및 권력 비판’에 대한 평가에서는 KBS가 3.24, MBC는 2.87점을 얻었습니다(11일 <한겨레> “MBC 보도중립성, 10점 만점에 3.16점”)
10점 만점에 3점대라면 ‘낙제’도 아닙니다. 더 이상 이들 공영방송에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시민이 일어나야 합니다.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채동욱과 윤석열이 없는 검찰이 국정원 부정선거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습니다. 윤석열 검사를 정직 징계한 검찰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야당이 특검을 제안했습니다. 특검이 절대는 아닙니다. 검찰 수사 결과보다 더 좋은 결과는 낳은 특검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미 박근혜검찰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검찰보다는 진실을 더 잘 밝힐 것입니다. 시민들 여론도 특검에 긍정적입니다. CBS노컷뉴스와 여론조사전문업체인 <포커스컴퍼니>가 8∼11일 나흘 동안 전국의 만 19~69세 남녀 992명(응답자)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신뢰구간 95%, 오차범위 : ±3.1%) 결과에 따르면, '’정원 대선개입 사건 일체에 대한 특검제 도입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66.6%가 찬성했습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 특검은 75.1%가 찬성했습니다.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침묵이 금이 아니라 악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직 수락 연설에서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권력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면서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체 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다”고 했습니다.
국정원이 부정선거를 저질렀습니다. 이 불의를 더 이상 참는다면, 정의는 다시 회복될 수 없습니다. 민주시민은 그저 밥이나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불의와 부정이 눈 앞에 있는데도 침묵한다면 악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비굴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권력에 굴종하는 비겁함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노 대통령은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라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권력이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불의를 행했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파헤치는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고 있습니다.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2013년 11월 국정원부정선거에 대한 침묵은 금이 아니라 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