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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에 여자들 이름에는 子字 들어 간 이름이 많았다. 심지어 한 교실에 같은 O자가 있어서 작은 O자 큰 O자로 부르기도 했다.
내겐 아버지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큰 매형의 딸인 조카들이 나와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데 세 명 전부 子로 끝나는 이름이다.
당시 이름 중에 美子 만큼 흔한 이름이 있었을까. 불세출의 가수 이미자를 필두로
연예인 중에도 성만 다를 뿐 미자란 이름이 많았는데 사미자, 장미자 등이 있고 내게 글자를 깨우쳐 준 국민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성함도 미자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윤정희와 금보라도 본명이 미자라고 한다.
미자뿐 아니라 그 많은 O자들이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는 촌스럽다고 여기는 본명 대신 예명을 지어야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름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요즘은 이런 이름 짓는 사람은 거의 없고 미대 나온 여자를 미자라 한다는데 이름과 언어의 유행사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늘은 가수 이미자와 김추자 이야기다. 이미자는 내 누이가 좋아했고 나는 김추자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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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가수 중에 발표곡이 가장 많은 가수가 이미자라고 한다. 그녀 노래 중 숱한 명곡들이 있지만 내 누이는 기러기 아빠,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을 잘 불렀다.
공교롭게도 이 세 곡은 한때 전부 금지곡이었다. 이미자뿐 아니라 당시는 여러 가수들이 금지곡이 많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보다 다섯 살 위인 누이는 동백 아가씨는 말할 것도 없고 섬마을 선생님을 즐겨 부른다.
학교를 다니질 못해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던 내 누이가 그 많은 유행가 가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불가사의하다.
구름도 쫓겨 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 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섬마을 선생님은 가사가 이렇듯 서정적이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을 떠올리곤 한다.
17세 늦깎이 국민학생 소녀 전도연, 시골 학교로 발령 받아 온 총각 선생님 이병헌을 사모하는 순박한 산골 소녀의 설레는 마음은 풍금소리처럼 두근거리며 사방으로 퍼졌다.
너무나도 시적인 흑산도 아가씨는 또 어떤가.
남 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 보다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누이는 얼마전 가족 모임이 끝난 후 뒤풀이 노래방에서 섬마을 선생님을 비롯해 이미자 노래를 불렀다.
나는 오직 이미자와 심수봉 노래 같은 뽕짝만을 부르는 내 누이의 노래 취향을 존중한다. 그런 노래 속에 험한 세상을 잘 견디고 살아 온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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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자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들의 우상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통에 부스럼 딱지 앉은 깡촌 조무래기들이 뭘 알겠느냐만 우리는 모였다 하면 김추자의 노래와 춤을 따라 했다.
월남전에 가 본 적도 없으면서 월남에서 돌아 온 김상사를 신나게 불렀고 커피를 마셔 보지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커피 한잔과 거짓말이야를 따라 불렀다.
가난했던 동네 신혼 아저씨가 월남전에 다녀 온 후 전축이며 테레비 등을 사 와서 정말 거짓말처럼 부자가 된 것을 보기도 했다.
김추자의 유행곡도 수두룩하다.
그녀 곡 중에 내가 지금도 즐겨 부르는 님은 먼 곳에, 봄비, 미련 등뿐 아니라 늦기전에, 저무는 바닷가, 무인도 등 어찌 다 헤아릴 것인가. 김추자 또한 이미자처럼 여러 노래가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다.
김추자는 독특한 창법과 파격적 율동 때문에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란 유행어가 있었다지만 나는 커서야 그것을 알았다.
내가 최근 들어 유독 좋아하는 김추자 노래가 있는데 바로 <그런 거라네>다.
인생은 자고 새면 오고
인생은 자고 새면 가는
세상 그런 거라네
울고 웃는 거라네
그래서 한세상이라네
그래서 나그네라네
이 노래 가사는 그동안 어디서든 들었고, 지금까지 들었고, 앞으로도 들을 흔한 내용이지만 노래로 들으니 훨씬 실감 있게 다가 온다.
가을 추자가 들어 있기 때문인지 김추자는 가을 여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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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유명세다.
하긴 돈 버는 데 세금 안 매긴 곳 없는 것이 세상살이긴 하다. 소주 한 병을 사는 데도 주류세와 부가세가 붙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세금 내느라 허리가 휜다.
하물며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치를 유명세는 오죽할까. 내 어릴 적에 이미자가 죽으며 일본에서 그녀의 목을 가져간다고 했다. 노래를 너무 잘 부르기 때문이란다.
김추자는 간첩이라고 했다. 그녀가 춤을 출 때 손가락으로 간첩들에게 암호를 보낸다고 했다. 우리는 이것도 진짜라고 믿었다.
하긴 어느 배우는 아프리카 흑인 대통령 아기를 낳았다는 루머로 혹독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으니 이것 또한 연예인의 숙명이리라.
노래에 얽힌 오늘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깊어 가는 가을에 이브 몽땅의 고엽만 들을 게 아니라 이미자와 김추자의 노래 또한 잘 어울린다. 그 시대의 희로애락이 담긴 유행가의 매력이기도 하다.
& 뱀발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단어지만 예전에는 유행가란 말을 자주 썼다. 나는 지금도 연속극 마지막 대사처럼 이 유행가란 단어를 좋아한다.
유행가에 관해 내가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담고 사는 멋진 문장이 있어 옮긴다.
*<어차피 인생이란 유행가의 한 소절인 것, 그다지 심각한 것도 그다지 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하찮은 유행가의 한 소절에도 인생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김성우 산문집 <돌아가는 배>에서
첫댓글 맛깔스럽게 잘 써내려간
미자와 추자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겨우 나왔네요 ㅎㅎ
우리 중년들이 즐겨듣고 자라난
명곡들을 다시금 들어보게된
계기도 되었지만
격변기 한국의 생활상과 애환도
느낄 수 있어
먼 옛날 어릴적 추억으로 여행을
떠나 보았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지요
한주내내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가세요
정담 선배님 잘 지내시지요?
요즘 제가 가을을 타기도 하지만 뭔 일이 그리도 바쁜지 카페도 자주 결석을 하고 오프 모임 참석도 못하고 있습니다. 추워지면 시간이 좀 나려나요.
주말이면 경조사도 자주 있고 빈 시간 나오면 산에 다니느라 정신 없이 가을을 보내고 있네요.
선배님이 카페 활동 열심이시고 각종 문화생활을 즐기시니 보기가 참 좋답니다.
세월이 너무 빨리 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모쪼록 추억 많이 쌓는 풍성한 가을이기를 바랍니다.
미자와 추자
정감있고
예쁜 이름입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도
자나 옥,분으로 끝나는 친구들이 많아요..
김추자
한때 유명한 가수였지요..
님은 먼곳에~~
스위트리님 안녕하세요.
미자와 추자, 등등 다정하게 들리는 그 많던 자자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이 땅의 근대화를 이룬 밑바탕이기도 합니다.
저도 자 들어간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몇 되지요.
한 친구는 개명을 해서 이름에서 자를 지우기도 했으나 만나면 여전히 옛날 이름이 자동으로 튀어나와 서로 웃었답니다.
스위트리님과 추억 속의 김추자님에 대해 공감할 수 있어서 참 좋네요.ㅎ
"이미자"를 뻥튀기 했더니 "사미자"가 되었다지?
"사미자"를 다시 뻥튀기하니 "팔미자"가 아니라
"오미자"가 나와서 그 기계는 불량품으로...
어쨌거나 나의 사촌누나는 봄(春)에 태어났다고
"춘자"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역사적 사실....ㅎ~
적토마 선배님 댓글 보구 빵 터지며 웃어봅니다.ㅎ
정답이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때론 이런 유머가 팍팍한 삶에 잠시 여유를 주기도 합니다. 내겐 없는 이런 재주도 일종의 생활 능력이지요.
내 친척이나 동창 중에 춘자는 없으나 고종 사촌 형이 춘식이랍니다. 그 형이 봄에 태어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날이 짧아져서 요즘에 퇴근할 때면 완전 깜깜한 밤입니다. 멋진 가을 밤 되시길요.ㅎ
@유현덕
팍팍한 삶에 윤활유같은 유머는 乳母(유모)가
없이 외롭게 커온 청춘들에게 그나마 힘이
되주기도했지...우리 서로 힘이 되어주자고라~
앗싸~ 닐니리맘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