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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네? 아, 오빠 한약 갔다 줄려 구요.”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요?”
“……?”
“그건 원래 제가 하던 일이거든요?”
“네? 아, 전 오빠 거니깐 괜히 귀찮게 해……”
“귀찮지 않거든요?”
“……”
“작은 사모님이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여긴 제 구역이었어요.”
“……”
“그러니깐 제 구역 침범하지 말아주세요!”
재희는 자기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순자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뭐 때문에 자기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 건지…… 그리고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다면 말해주면 될 텐데 말도 안 해주니 재희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얼굴 표정이 왜 그래?”
“내 얼굴이 왜?”
“무슨 일이 있는 표정인데? 왜 힘들어?”
“……”
“힘들면 우리 나가서 살까?”
“됐어, 그러지마-”
“너 힘들면……”
“오빠가 자꾸 그러면 내가 난처해.”
“……”
“나 괜찮으니깐 그런 말 하지마. 그 말 들으면 어머님께서 실망하실 거야.”
“후, 알았다. 알았어.”
“이거 마시고 씻고 내려와,”
재희가 다려온 한약을 석주에게 건네주고 쟁반을 들고 방에서 나가려고 했지만 나갈 수 없었다. 그 이윤 다름아닌 석주가 재희의 손목을 부여잡고 자리에 앉히게 한 뒤 그대로 재희를 자기 품에 안아 보였다. 재희는 아침을 차려야 된다며 석주 품에서 나 갈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석주의 힘을 이겨 낼 재간이 재희에겐 없었다.
“이거 놔, 아침 해야 돼.”
“조금만 이렇게 있자.”
“안된 대두, 이러다 나 더 찍힌다 말이야.”
“찍힌다니 무슨 말이야?”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내가 눈치 보여서 그래.”
“눈치 볼 것 없어, 넌 며느리지 가정부가 아니야.”
“알아, 그래도 내가 불편해.”
“순수한 네 모습이 매력이긴 하지만 넌 너무 순수해서 큰일이야.”
우리끼리 있었다면 누구에게 눈치 안보고 맘껏 사랑 해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석주는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오늘밤은 순순히 자게 두지 않을 거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
‘네? 오늘 저녁이요? …… 아니요, 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갑자기 성여사에게 전화가 걸려 오자 자현은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긴장했다. 하지만 저녁을 집에서 같이 하자는 성여사 말에 긴장이 풀어졌다.
“자현씨 무슨 전화길래 그렇게 바짝 주눅 들면서 받아?”
“네? 아, 그냥……”
“부가세 신고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지금 하고 있어요.”
“빨리 끝내도록 해.”
“네.”
일을 하는 동안 자현은 석봉이에게 전화를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이었다. 분명 말하게 되면 걱정할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자현아 점심 안 먹을 거야?”
“아, 언니 왔어요?”
“나 아까 전부터 왔거든? 빨리 도시락 꺼내~”
“아, 죄송해요-”
“죄송할 게 뭐 있다고…… 근데 너 무슨 고민 있어?”
“네?”
“아니면 일이 많이 힘들어?”
“그런 거 아니에요~”
자현은 서둘러 도시락을 꺼내어 밥을 먹었다.
.
.
.
“후~ 고자현 힘내자 아자아자!”
전에 한번 석봉이와 간 길을 한번 되짚어보며 드디어 집 앞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긴 했지만 자현은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너무 긴장이 되어 긴장을 푼 다음 자기 자신에게 화이팅을 외친 뒤 차에서 내렸다.
“빨리 왔네,”
“네, 시간에 늦을까 봐 좀 달렸더니……”
“아무리 급해도 운전은 조심해서 몰아야지.”
“헤헤~ 네, 다음부턴 조심 할게요~”
“그래, 어머, 내 정신 좀 봐- 손님을 여전히 밖에 서 있게 하다니……”
“어머님 저 그런 말 싫어요~”
“응? 무슨 말?”
“제가 어머님한테 손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엄청 섭섭해요.”
“어머? 그랬니? 호호, 알겠다. 담부터 조심하마~”
“어머님 그 약속 꼭 지키셔야 되요~”
자현은 실로 자기가 이렇게 애교가 있었는지 의심이 됐다. 하지만 섭섭한 건 사실이었다. 자기는 그래도 성여사와 좀 더 친해졌는 줄 알았는데 자기를 그저 ‘손님’으로 치부해 버리니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그때 때마침 회사 일을 마치고 먼저 집으로 돌아 온 재희는 대문이 열려있자 초인종을 누르려는 걸 그만두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돌계단을 밟고 올라서자 이번엔 현관문이 열려있는 게 보였다. 재희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린 뒤 계단을 끝까지 밟고 올라서자 왠 여자의 목소리가 재희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성여사의 기분 좋은 목소리와 함께 왠지 지금 그들 사이를 방해하면 안될 것 같아 쉽게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근데 누구지?’
뒷 모습만 보이고 있어 그 여자가 누군지 재희는 알 수 없었다.
“어? 재희 왔니? 어서 들어오렴~”
그때 성여사가 재희가 온 것을 알아보고 어서 들어오라고 말했고, 그제서야 뒷 모습만 보이던 그녀가 뒤를 돌아 재희와 마주 바라보았다.
‘자현씨……?’
“에구, 그냥 앉아있어.”
“아니에요, 저도 같이 도울게요~ 그래도 되죠?”
“네? 네,”
자현이 순자를 향해 되묻자 순자는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렸다. 성여사가 말려도 자현은 고집대로 도우겠다며 팔을 걷어 부치고 순자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으러 갔던 재희가 내려오고 있었다.
“어머님 자현씨는요?”
“어, 안 해도 된다고 말렸는데도 기어이 주방으로 들어갔어.”
성여사 말에 재희는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순자와 친하게 지내는 자현이의 모습에 재희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
*
“당신 왔어요?”
“…… 그 아이 왔어요?”
“네, 지금 주방에 있어요, 부를까요?”
“됐어, 흠, 난 씻으러 들……”
“아버님 오셨어요?”
“아……안녕하셨어요.”
“흠,”
하지만 한회장은 자현을 모른 척 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성여사는 그런 자현이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 한회장이 들어간 안방으로 들어갔다.
“힘내요, 언젠가는 아버님도 자현씨를 받아주실 거에요.”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저녁식사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아마도 불청객인 자현이의 한 사람의 존재가 불러일으킨 여파인걸 까……
저녁을 다 먹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면서도 그 누구 하나 말을 먼저 하지 않았다.
“여보 오늘 저녁 어땠어요?”
“항상 똑같지 뭐가 궁금해요.”
“오이 소박이 어땠어요? 그거 자현이가 만든 거에요.”
자현은 성여사의 말에 얼굴을 붉혔고, 두 귀는 오로지 한회장을 향해있었다.
“난 맛있던데 당신은 어땠어요.”
“……”
“여보……”
“오늘따라 당신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
“……”
“피곤해서 그만 일어날게요.”
그러더니 한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들어갔다.
“피곤하다면서 일은 그렇게 하고 싶은지……”
“어머니 아버지 생각도 하셔야죠.”
“내가 뭘 생각 안 했다고 이래?”
“아직 아버지께선 자현씨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니깐 이럴 때일수록 자현이를 회장님께 잘 보여야지.”
“어머님 전 정말 괜찮아요.”
“후, 자현씨 오늘은 그만 가보세요.”
“네? 네,”
“가긴 어딜 가, 좀 더 있다가 가렴.”
“어머니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하세요.”
“한석주! 너까지 이렇게 나올 거니?”
“어머님 전 정말 괜찮아요, 담에 또 올게요~”
괜히 자기 때문에 ‘모자’ 지간에 틀어지는 건 싫었던 자현은 서둘러 성여사를 말려야만 했다.
결국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허망하게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성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서 나온 자현은 뒤를 돌아 집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괜히 한숨이 길게 나와버렸다.
“고자현!”
“어? 오빠…… 오빠가 여긴 무슨 일이야?”
“그러는 너야말로 여기에 뭐 하러 온 건데!”
“어? 저녁 먹으러……”
“나 없을 때 무슨 봉변 당하려고 온 거야! 겁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어.”
“그래도 너 혼자 가지마!”
“알았어, 근데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한석주가 문자로 너 집에 있다고 날렸어.”
“형한테 이름이 뭐야, 형 이라고 말해.”
“필요 없어.”
“필요 없긴 뭐가 필요 없어! 오빠 진짜 이럴 거야!”
“싫어! 부르기 싫다고!”
“자꾸 그러면 나 오빠 안 본다!”
“이씨, 알았어! 형 이라고 하면 되잖아! 근데 너 괜찮아?”
“응, 괜찮아- 아버님도 잘해주셨어.”
“거짓말한다. 내가 회장님을 모르겠냐? 그 성격에 퍽…… 악, 왜 때려!”
“아버지한테 회장님이 뭐야! 또 회장님이라고 해봐!”
“하면 어쩔 건데? 또 협박하려고?”
“잘 아네~ 나 보기 싫으면 계속 그렇게 해.”
“진짜! 내가 네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
"그래서 싫어?"
"싫긴~ 너의 그 모습이 매력인걸, 가자-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고마워, 오빠~"
석봉은 벤의 문을 열어주며 자현이 안에 올라탔다. 그리고 석봉도 안에 올라타고 그렇게 벤은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때 밖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한회장이 있었다.
*
"다리 아프지? 내가 다리 만져줄게, 이리와봐."
"됐어, 다리 안아파."
"거절하지 않아도 되니깐, 앉아."
"괜찮다니깐…… 이건 일도 아니야."
"정말…… 알았어. 정말 오빤 못말리는거 알지?"
"그런가? …… 어때? 시원해?"
"응, 조금 시원해지는 거 같다."
"당연하지, 내가 사랑을 듬뿍 담아서 만져주는데 시원하는게 당연하지."
"오빠도 그런 말 할줄 알아?"
"그런 말? 내 말이 어떤데?"
"닭살 돋아,"
"뭐야? 감히 서방님한테 그런 말이 쉽게 나오냐?"
"그런 말이 나오는 거 어떡해, 하지만 오빠의 의외의 모습이 매력있어."
"닭살 돋는다는 말에 조금 화가 나기는 하지만 매력있다니 봐준다."
"핏,"
아침, 저녁으로 한약을 먹어야하는 석주 때문에 순자는 한약을 다려서 그릇에 담아 쟁반에 나두고 들고 올라왔지만 순자는 쉽게 방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석주와 재희 때문에 순자는 씁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괜히 더 재희가 미워지는 순자였다.
첫댓글 순자... 아무리 석주가 좋아도 그렇지... 감정이야 어쩔 수 없는거지만... 저정도 행동은 정말 오바다..
순자의 행동은 저도 조금은 오바라는 생각이.... 계속 지켜봐주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