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주
야스미나 레자 저자(글) · 이세진 번역
뮤진트리 · 2023년 03월 08일
이 시대 최고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야스미나 레자의 신작 소설
“기억과 기억의 문화로부터 우리가 끌어올려야 할 것들”
할머니의 묘지에서 손자가 읊조린다. “마구잡이로 설치한 가건물 같은 우리 가족, 그걸 지탱하고 있었던 건 할머니 당신이셨어요.”
이 작품은 육십 대인 세 남매가 함께 떠난 여행을 계기로 해묵은 갈등이 폭발하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가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가는 소설이다. 세계적인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야스미나 레자의 소설답게 세 남매가 서로를 향해 쏟아붓는 대사들은 거침이 없고, 그 속에 함축된 사유는 깊다.
〈아트〉 〈대학살의 신〉 등의 희곡으로 20대부터 몰리에르상ㆍ로렌스 올리비에상ㆍ토니상ㆍ세자르상 등을 석권한 최고의 극작가답게, 야스미나 레자는 이 소설에서 세 남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이라는 블랙 코미디를 한 편의 연극처럼 펼쳐 보인다. 이 작품 《세르주》는 뮤진트리가 다섯 권째로 국내에 출간하는 레자의 작품들 중 가장 최근작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육십 대인 세 남매는 함께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유대인의 순례지 아우슈비츠이다. 이 소설에서 그 장소는 매우 중요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굳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대인인 그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찾아보고자 그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했지만 사실 그 기원에 대한 동질감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뜬금없이 겸허한 여행은 역사가 만들어낸 공포의 기억을 되새기기보다 그들, 세 남매의 해묵은 갈등이 폭발하는 장이 되어버린다.
이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세르주는 이들 포퍼 가의 장남이다. 겉으로는 강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난데없는 폭력을 무던히 견뎌내는 척하지만 내면의 상처는 늘 탈출의 욕망과 허세로 표출된다. 작은 악당 노릇을 하며 ‘역마살’이 낀 그는 평생 탈출구를 찾고자 했으나 변변한 성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 탓인지, 육십 대 성인 남자답지 않게 징크스에 민감하고 미신에 집착하며 매사에 부정확하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둘째인 장은 그런 형이 답답하면서도 안쓰럽고, 그래서 늘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산다. 어려서부터 형을 졸졸 따라다닌 터라 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일찍부터 집 밖으로 떠돈 형 탓에 무색무취의 삶을 제 몫으로 취한 면도 있다. 그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가정을 꾸릴 의지가 없다. 대신 제각각인 가족 내에서 영원한 완충 장치를 자처한다.
세 남매의 막내인 여동생 나나는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딸이고 한때는 두 오빠의 히든카드였으나 빈털터리인 스페인 좌파 청년과 결혼하면서부터 포퍼 가와는 삶의 지향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빠들은 그런 여동생이 아깝고 못마땅하고 그래서도 동생을 그렇게 만든 제부를 한 톨만큼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 동안은 의무로라도 매주 모여 가족애를 상기했지만, 이제 세 남매는 가족답게 소통한 지 꽤 오래됐다. 그래도 누군가가 바람을 잡은 덕에 모처럼 함께 아우슈비츠로 여행을 떠났으나, 이제 그들은 역사를 보는 시각도 좋아하는 것도 너무 다르다. 뭔가를 공유하는 가족이었던가 싶고, 수용소의 정적만큼이나 서로를 향한 마음은 황량할 뿐이다. 저마다의 시뮬라르크 속을 헤매는 세 사람. “우리는 같은 길을 뱅뱅 돌았다.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세르주는 차가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무감각하게 몸을 맡기고 있었고, 나나는 차창에 코를 갖다 대고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가 그 특별한 여행지에서의 그들의 모습이다.
관찰과 풍자 사이의 단단한 균형
야스미나 레자는 “남자와 여자가 만들어내는 삶의 변주”에 대한 절대적인 귀를 가진 작가이다. 어느 작품에서나 그녀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들이 함께한 삶의 변주를 다채롭게 재현한다. 이 시대 최고의 극작가답게 그녀의 대사에는 독보적인 음조가 있다. 세심한 관찰과 정확한 풍자는 그녀의 특기다. 이 소설에서도 레자는 트라우마, 복잡한 가족 관계, 중년의 위기를 우울하지만 눈물 어린 재미를 더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의 헝가리인 선조들이 돌아가신 곳을 우리 시대의 회한을 안고 찾아간다는 것”이 목적이었던 여행은 “가족다운 가족”으로의 회귀는 불가능함을 깨닫는 것으로 끝이 나는 듯했으나, 레자는 그 흔한 드라마를 멋지게 마무리해냈다. 혈연으로 연결된 삶의 또 다른 기억을 촉발하는 순례의 이야기로. 그런 맥락에서 언뜻 극단적인 설정으로 느껴질 법한 아우슈비츠라는 장소는 최적의 배경이다.
“우리는 아무 데로도 가지 않는 길을 걷는다. 우리는 폐허를, 추악하고 짓눌린 폐허를 봄 내음 속에서 볼 것이다.” _ 162p
이 소설에서도 레자는 독자를 웃게 하다가 동시에 마음 아프게 만드는 재주를 어김없이 발휘한다. 세르주가 쏟아내는 대사에는 미워할 수 없는 인간성과 수많은 아이러니가 있다. 나나의 대사에서는 도발적이면서도 공허한 속내가 느껴지고, 남 얘기하듯 던지는 장의 대사는 차분함과 우울함이 동시에 배어나 묘한 여운을 준다. 주인공들은 서로를 자극하고 싸우고 원망하지만, 레자는 그들을 하나로 묶는 사랑의 흔적과 공유된 기억을 소설의 곳곳에서 섬세하게 상기시킨다. 모두가 삶의 무의미함과 우울함, 노년의 쇠퇴, 끊임없이 기억을 빼앗아가는 시간의 위협에 나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참을 수 없고 그러면서도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형제간의 통렬한 대화, 긴장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신랄한 유머는 이 소설의 강점이다. 또한, 삶의 장애물들을 다루는 관점은 우울함 속에서도 활기를 놓치지 않게 한다. 나치의 역사, 불행의 흔적을 관광하는 여행 패턴, 추모의 문화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논평은 포퍼 일가의 역사에 우아하게 녹아들어 독자의 사유를 자극한다. 어떤 역사적 사실의 옳고 그름보다, 그 사실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관점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정확한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런 면에서, 레자는 역시 레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