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현지시간)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국 드라마 '톡식 타운'(4부작)을 어제(5일) 하루 정주행했다. 길지 않은 분량에다 어두운 느낌을 강요하지 않고, 유익하면서도 재미를 갖춰 만족스러웠다.
잉글랜드 소도시 코비(Corby)에서 일어난 환경 재앙을 다뤘다. 기형이 있는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하고 같은 기형아를 낳은 엄마들이 서로 만나면서 철강공장 매립으로 인한 독성 폐기물의 영향이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이 마을 출신 변호사와 의회 말단 직원, '뒷방 어른'으로 물러난 시의원 등이 엄마들을 도와 소송을 시작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밀도 높게 그렸다.
여러 모로 미국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떠올리게 하는데 역시나 실화가 갖는 힘을 절감할 수 있다. 기형아를 낳은 엄마들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느낌이다. 영드를 본 이들은 느낄 수 있겠지만 굵직한 배우들이 적은 분량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느낌이다. 특정 인물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쇠락해가는 마을 주민들이 고통을 안긴 주체를 찾아내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며 힘을 합치는 과정에 주력했다. 그런 점에서 시리즈의 강점을 찾을 수 있겠다.
영국 BBC는 4일 BBC 라디오 노샘프턴의 팟캐스트 '인 디테일, 톡식 웨이스트 스캔들'(8부작)이 재판 속기록과 새롭게 발굴된 문서 등을 통해 실제 일어난 일을 더 깊숙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며 세 명의 실제 피해자들의 근황까지 알려 눈길을 끈다.
코비의 간단한 역사부터 살펴보자. 이 도시의 제철과 제련 산업은 스튜어트 앤드 로이즈 제철소가 세워지던 1930년대 빠르게 팽창했다. 1970년대 마을 사람 절반이 제철소에서 일할 정도였다. 하지만 1980년대 제철소가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해체 과정에서 나온 독성 쓰레기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공해를 확산시켰다.
2009년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고등법원은 코비 자치구 의회가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부주의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가족들은 이듬해 피고 측과 금전적 합의에 이른 뒤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트러스트에 묶기로 했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탓하게 되더라'
팟캐스트 내레이션을 맡은 조지 앵거스 테일러(33)는 1992년 3월 11일에 태어났다. 손가락 기형을 타고 났다. 부모 이름은 피오나와 브라이언. 아버지는 스튜어트 앤드 로이즈 제철소에서 일했는데 매일 교대근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먼지와 잔해로 옷들이 얼룩져 있었다.
미인 대회 출신인 피오나는 부부의 삶을 영원히 바꿔놓은 조지의 태어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네이비 블루"로 태어났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 있었다. 피오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조그만 손을 봤더니 반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이 주먹처럼 생겼더라. 둘째손가락과 엄지도 뭉개져 있었다. 계속 내 탓이다 싶었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탓하게 되는 첫 대상은 당신 자신이다."
열네 살 때 의사들은 조지 손의 종양이 너무 커서 절단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는 실험이라 할 만한 수술이었다. "(수술을 마친 뒤) 깨어나 보니 난 모르핀에 절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훈련 없이 에베레스트를 오른 격이었다. 내 몸은 딱 셧다운이었다."
이 경험은, 특히 냄새가, 오래도록 기억됐다. "(수술 중에) 살갗을 태웠는데 프라이팬에 소시지를 굽듯 지글지글 소리가 났다. 그리고 냄새가 났는데 지금도 이따금 찾아온다."
모든 일에도, 조지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내 손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이전보다 나아졌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이라고?'
리사 앳킨스는 제철소 경비원으로 주차 관리와 외곽 순찰을 했다. 먼지를 여기저기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1989년 6월 27일 딸을 케터링 종합병원에서 출산했는데 시모네는 두 손 모두 세 손가락이 없었다. 의사들은 리사를 달래려 했는데 딸이 할 수 없는 것이라곤 피아노 치는 것뿐이라고 했다.
피오나가 조지에게 했던 일마냥, 리사 역시 처음에는 딸이 이렇게 된 것을 누구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는지 궁금해했다. "아마도 난 우두커니 앉아 '내가 뭘 했길래? 내가 이렇게 한 것이라고?' 묻는 일뿐이었다. 시모네를 갖기 전에 두 차례나 유산했기 때문이었다. 난 시모네를 얻었으니 어쩌면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 아기를 가졌고 앞의 두 사례처럼 되지 않아 운이 좋았다."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리사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신 중에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 뒤 자신을 돌보지도, 딸이 왜 그렇게 됐는지 원인 추적도 부족했다는 점을 떠올렸다. "여러분은 상당한 차이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을 무작정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후속으로 따라붙는 일 같은 것도 없었다. '우리가 들여다 볼게' 그런 것도 없었다. 해서 당신이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야 하니까 한 것이다."
리사는 재빠르게 시모네의 여건에 적응했다. "날 충격에 빠뜨린 것보다 훨씬 더 다른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난 정말정말 빠르게 익숙해졌다."
자치구 의회를 법정 소송에서 꺾자 주위의 관심이 엄청났다. "난 유명인이 아닌데 유명인이란 이렇게 느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미쳤다."
이제 서른다섯이 된 시모네는 자라면서 무자비한 놀림을 당했다. "대단한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힘들었다. 난 아주 자신감 넘치는 아이는 아니었으며, 손쉬운 타깃이었다." 시모네는 유머로 적응했다. 엄마가 손가락들을 잘라냈다거나 외계인 피가 섞였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차이점을 즐길 거리로 바꾼 것이었다.
"스스로를 놀려대면, 누구도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많이 앞서게 된다. 그냥 난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여라. (세상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열여덟 살 때 손 수술을 다시 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들도 그게 도움이 될지 진짜 알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그 무렵, 난 적응돼 있었다. 매일 통증을 안고 살지만,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손에 대해서 숨겼다.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이 사례에 대한 2020년 다큐멘터리 '호라이즌' 링크를 보내줬다. 그의 반응은? "정말로 별 일 아니네."
오늘, 그녀는 가족이 벌인 법정 투쟁에 감사한다고 했다. "내 인생을 일구게 했다. 내 인생을 시작할 수 있고, 대학에도 들어갔다. 내 집도 갖고 우리 딸은 인생을 최선의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불편함으로 여겨진다'
루이스 워터필드는 1994년에 양손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지붕 이는 사람으로 일꾼으로서 오염된 지역 근처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자주 그곳을 방문했다. 루이스는 "아버지도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경고했다"고 돌아봤다. 어릴 적 병원을 들락거렸는데 발가락을 손에 붙여 손가락으로 쓰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긴 시간 수술을 받았는데 해낼 수 있는 일에 한계들이 있었다."
법정 투쟁 기간, 루이스의 부모는 산업 오염과 기형아 출산의 연관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 기억에 의회는 거만했다. 그들에게 우리는 불편함으로 느껴졌다."
노샘프턴 대학의 공중 보건 강사인 그는 자신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인정했다. "이따금 누군가 내 손에 대해 물어보면, 날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으면, 나란 사람의 일부다."
코비 자치구 의회는 2021년 다른 기구들과 통합해 노스 노샘프턴셔 의회가 됐기 때문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2010년 사무총장이었던 크리스 말렌더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 "의회는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돈으로 이들 젊은이의 장애와 고통의 나날, 미래에 닥칠 그들의 문제들을 적절히 보상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의회는 이 사과와 함께 오늘의 합의가 법적 투쟁을 뒤로 하고 더 큰 금융적 확실성으로 전진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했다.
차분하게 엄마들을 대변한 데스 콜린스 변호사
시리즈를 보면 소송으로 가기 전에 합의하는 것이 좋으며, 성공 보수도 없이, 아버지인 교장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피해 여성들을 돕겠다고 나선 데스 콜린스 변호사(로리 키어니)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는 BBC 기자에게 "그 때로 돌아가면, 우리는 여러 차례 이 문제를 공적 조사로 가져가려 했지만 늘 거절당했다. 난 공적 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야기가 드러나지만, 또 많은 이야기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에 해낸 것처럼 가족들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대중 앞에 더 완성된 형태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난 넷플릭스 프로덕션을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이 문제들에 대해 더 정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준다." 아울러 "전폭적인 사과가 (가족들에게) 엄청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리즈를 잘못 보신 분들은 가족들이 보상금을 받아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것처럼 오해하기가 쉬운데 속 시원한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양쪽이 적당히 돈 좀 주고 화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무승부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앞에서도 전했듯 해당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노스 노샘프턴 통합 의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어려운 점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