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의 히트상품 후보로 삼각김밥을 추천하고 싶다. 2001년 상반기 24시간 편의점을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린 삼각형 모양의 주먹밥은 인스턴트 식품으로서 쌀을 이용한 본격적인 '디자인 푸드(designed food)'라는 점에서 내 관심을 끌었다. 물론 길거리 포장마차를 중심으로 판매되는 직경 27mm내외의 손가락 모양의 꼬마김밥도 손쉽게 집어먹을 수 있도록 크기가 축소된 인스턴트 식품이 있었지만 삼각김밥은 편의점의 강력한 유통망을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24시간 편의점
먹는 것에도 편의(convenience)를 강조하는 편의점은 21세기 물류유통의 최첨단(最尖端)이고 전체 유통시스템의 일부이다. 어떤 상품이 이런 시스템을 타고 흐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변형(크기, 가격, 포장...)이 가해진다. 예를 들면 라면용으로 소형포장의 꼬마김치가 개발된 것을 보면 그렇다. 내가 편의점 공간을 자주 가는 이유는 이처럼 상품화 과정에 대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들어 있는 흥미로운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븐 일레븐
삼각김밥이 2001년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전에 세븐 일레븐(삼각김밥의 원조?)이라는 일본계 편의점을 통해 소개된 바 있으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때 유통회사는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편의점 상품들의 구색을 갖추는데 급급해서 개별 상품가치를 파악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롯데가 체인망을 인수하면서 일본인사장에게 경영을 맡긴 이후로 붐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흉내만 내는 다른 점포들의 유사한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삼각김밥이 일본음식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의심도 가져 본다.
즐거운 삼각형들의 대화
그러면 삼각김밥이 인기를 끌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디자인 측면에서 삼각형의 형태는 진열대 위에서 안정되게 진열될 수 있으며, 공모양(球形)의 주먹밥보다 먹기가 편하다. 광고를 보면 첫 카피는 "김밥은 옆구리부터 먹는 거래요" "왜, 옆구리가 허전하세요?"하는 두 사람의 대화가 있다. 삼각형들이 즐겁게 먹는 방법을 상상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겉과 속의 교묘한 조화
삼각형 단면을 가진 삼각김밥의 디자인은 둥글게 마는 것보다 쉽게 기계로 만들어 낼 수 있고 두께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 어떤 제품은 맛이 덜하다고 느껴졌는데 그 이유를 찾아보니 두께가 34mm로 둔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보았던 제품이 30mm로 유지되는 것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는데 작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이 작은 변화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께의 증가는 제조원가의 증가가 있었을 것이고 제조설비의 재조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최근에 포장지를 비교해보니 제조공장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두께는 김과 밥의 맛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대한 엔지니어링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맥도날드가 햄버거의 패티 두께를 결정하는데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놀랍게 읽은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밥의 두께는 초밥을 만드는 것처럼 세심한 맛의 조절을 필요로 한다.
오감을 통해 느끼는 디자인
음식을 먹는 것은 오감을 동원하게 된다. 삼각김밥의 독특한 시각적 형태, 코끝을 간질이는 김의 향, 손에 집어들고 까실한 김의 촉감을 느끼며, 포장을 개봉하면서 바삭거리는 소리, 그리고 맛보게 되는 깔끔한 맛이 그것이다.
빨간 끈의 비밀
맛의 비밀은 김과 밥을 분리한 비닐포장과 빨간 끈에 있다. 처음에 등장한 삼각김밥은 설명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절차가 복잡한 것이었다. 비닐 열고 김 펴고 밥을 올려놓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 빨간 끈이었다. 기존 방법이 수동이라면 반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고나 할까?
주먹밥이 원조
재료는 간단하다. 김과 쌀 그리고 소(소는 송편·만두·빵 등을 만들 때, 익히기 전에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를 말함)로 구성된다. 꼬마김밥이 표면에 참깨가 묻어 있고 참기름이 발려 있는 것에 비하면 삼각김밥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 이유는 삼각김밥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의 원조인 주먹밥에서 온 것이고 꼬마김밥은 손이 많이 가는 김밥에서 온 것이 아닐까?
먹는 순간을 즐김
제품의 질을 좋은 김과 쌀(광고에는 이천쌀?)을 사용하여 엄격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똑똑한 소비자들에게서 지지를 받게된다. 더구나 세심하게 냉장 보관하는 것을 보면 이것을 만드는 사람들은 진정한 맛을 알고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들어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왜냐면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건강하고 똑똑해지는 음식
가격은 천원 이하로 700원이니 두 개를 먹으면 1,400원 녹차캔이 500원이니 1,900원이면 충분히 무리없이 즐길 수 있다. 광고가 주는 분위기는 일종의 테이크 아웃(take out)을 위한 음식과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을 강조고 있다. 파리에서 정원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었던 크로와샹 샌드위치처럼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여유시간으로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음식이라는 컨셉이다. 게다가 라면처럼 물이나 젓가락도 필요 없고 쓰레기도 적다.
예전에 이탈리안 디자이너가 파스타를 디자인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디자이너는 독특한 시각적인 형태만을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입 속에서 씹을 때의 촉감을 디자인했다는 설명을 읽으며 감탄했었다. 음식에서도 디자인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시리얼을 보자. 음식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