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에게는 (막 9:21-24)
믿는 사람은 특별한 뭔가가 있을까요?
믿는 사람은 믿지 않은 사람과 차이가 있을까요?
믿는 사람은 뭔가가 확실히 다릅니다.
믿는 사람은 무엇이 확실히 다를까요?
믿는 사람은 =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은 사람은 = 여전히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 아멘이고, 순종이고, 충성이고 열정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축하합니다.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축하합니다. 아멘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축하합니다. 순종과 충성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축하합니다. 열정을 불태울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이어서 할 수 있는 이인 서로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아십시오.
우리가 믿는 사람이기에 나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이기에 ‘할 수 없다’는 속임에 속지 마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은 = 할 수 있습니다.
내 힘이 아닌 내 안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은 =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주 예수님이 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이 부분을 찬양으로 노래 합시다.
주님이 제자 3인방과 산에서 내려옵니다.
산에서 내려온 세상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1. 큰 무리가 와서 둘러쌉니다.
2. 서기관들과 제자들과의 말싸움이 시작됩니다.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 큰 무리가 둘러쌓다.
14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 인생의 슬픔을 말해주는 단면입니다.
인생은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하지만 대안도 없습니다.
문제에 봉착하고, 대안 없이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모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문제를 안고 삽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문제의 답, 예수님으로 삽니다.
우리는 백문일답의 예수님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했다.
14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예수님이 없는 곳에는 항상 말뿐입니다. 변론과 다툼입니다.
- 학문이든, 정치든, 종교든 예수님이 빠진 것에는 말장난뿐..
주 예수님을 모신 곳에서는 늘 충성과 하늘의 역사뿐입니다.
문화와 예술, 빈들이든 산골이든, 도성이든 사막이든
주 예수님 모신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펼쳐집니다.
우리는 예수 없는 변론이 아닌 예수님 모셔 충성되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없이 다툼이 아닌 예수님과 하늘 역사이기 바랍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합니다.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보고 매우 놀랐을까요?
예수님께는 사람들이 매우 놀랄만한 무언가가 있었을까요?
- 변화산에서의 그 빛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을까요?
- 변화산에서 방문했던 엘이야와 모세가 동행했을까요?
- 구름 속에서 들렸던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을까요?
= 예수님께 변화산에서의 특별한 현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예수님께는 사람되신 하나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 예수님은 그 모습으로 문제 많은 세상에서 희망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느낌은 어떻습니까?
- 매우 놀라며 달려 옵니까?
- 예수님 기다렸다고, 필요하다고 달려와 문안합니까?
우리 모두는 사람되신 하나님인 예수님께 간절하기 바랍니다.
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무슨 일인가?”
“무엇으로 사람들과 변론하는가?”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주님이 사람들의 문제를 알지 못하여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게 인생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시킨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직전의 상황을 잘 아시죠?
?주님을 만나기 직전 우리의 상태는? 한계를 절감입니다.
- 인생은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절감합니다.
- 내 스스로는 무엇하나 할 수 없고 주님이 허락하셔야함입니다.
주님 앞에 있는 우리에게의 주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무슨 일이냐”입니다.
한 사람들은 주 예수님께 말합니다.
“내 아들이 죽어갑니다”
“말 못하는 아들이 있는데 쓰러져 죽어 갑니다.”
“주님은 제자들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예수님 없이는 안됨’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 제자일지라도 예수님 없이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믿음 없음을 지적하고, 데려오게 합니다.
“믿음 없는 세대여” 합니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곁에 있어야 하겠는가?”
“얼마나 믿음 없는 너희를 참아야겠나?” 합니다.
19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리고 그 아이를 데려오게 합니다.
19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주 예수님은 다름 아닌 믿음 없음을 책망합니다.
주 예수님은 믿음으로 서기를 원하십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져오게 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기 바랍니다.
아이의 아버지의 말입니다.
“주님이 혹시 하실 수 있거든”
“주님 하실 수 있다면 불쌍이 혀기사 도와 주소서”
22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아버지의 이 말은 무슨 뜻의 말입니까?
- “예수님~ 하실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고요”
- “혹시 할 수 있으시면 고쳐 주세요” 입니다.
아이의 아버지의 이 말은 믿음일까요?
믿음이 아닙니다.
소망은 간절하고 절박하나 믿음은 아닙니다.
아이의 아버지 또한 믿음 없는 세대인 것입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어야합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으시니 이루어 주십니다”
“사람들은 다 못해도 주 예수님은 하시니 도와 주세요”
“제자들은 하지 못했어도 주님은 다 하시니 아들을 고쳐 주소서”
하고 주 예수님께 전폭 믿음으로 매달렸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그런 발언의 아이의 아버지 믿음을 책망합니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무슨 말이냐
주 예수님께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주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닌가?
주 예수님의 능력도 열정도 알지 못한 사람 아닌가?
여러분 우리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입에서 ‘주님 하실 수 있으면...’ 안됩니다.
“주님~ 못하실 수도 있지만 하실 수 있으시면..? 안됩니다.
그럼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할까요?
주님~ 주님은 다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한 분을 바라보고 주님 한 분을 의지합니다.
주 예수님은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은 하시는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게 하십니다.
23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능치 못함 없으신 그가 능치 못함이 없게 하시는 주님입니다.
그가 친히 다 하시고 또 믿는 자로 다하게 하시는 주님입니다.
믿는 사람인 나로하여금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 내 힘이 아닌 주가 주신 힘으로
- 내 능력이 아닌 주님이 오셔서 하심으로
그래서 주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리고 바울은 그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평가해야 합니다.
- 주 예수님은 ‘할 수 있으시면’이 아니라 ‘하시는’입니다.
- 믿는 나 또한 ‘주 예수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입니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새롭게 됩니다.
그의 새롭게 된 첫 번째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그의 새롭게 된 주번째는 ‘아이가 나음’입니다.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이처럼 믿음의 결과는 치료와 회복, 새롭게 됨입니다.
예수 믿음의 사람인 여러분~
우리 안에 치료와 회복, 새롭게 됨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당시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사람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고치지 못했고든요
그들은 서기관과 변론, 다툼은 있었는 무력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조용히 묻습니다.
“왜 우리는 안되었습니까?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제자들은 왜 안되었을까요?
= 주님은 말씀합니다. ‘기도의 부재 내지는 기도의 부족’입니다.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주 예수님과 우리와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 주님은 바로, 언제나 가동됩니다.
- 우리는 기도를 통과하고 기도의 량을 채워야합니다.
기도 = 믿음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100%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기도합니까?
기도하는데 어찌 믿음 없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곳에 믿음의 역사는 당연합니다.
찬양
- 주님 찾아 오셨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할 수 있다 하면된다
넘지 못할 산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