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일러 주듯이, 개인이든 가정이든 나라이든 우리들의 앞날을 바라볼 때에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육은 그 근본이 매우 취약하여 마치 사상누각(砂上樓閣)처럼 불안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걱정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도처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국가위기사태, 사회악, 가정파탄, 인격파탄 들이 이에 연유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이에 우리 교육의 근본을 다시 돌아보는 뜻에서 아래의 세 글이 주목되어 소개한다.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선진사회로 진입하려면, 마치 독일의 피히테(Fichte)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발표하고 나라를 발전시켜간 것처럼, 우리도 교육을 개혁하고 국민들의 정신문화를 개혁하여 인격수준을 높여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1. 우리나라 전래(傳來)의 교육 이념에 대하여
1653년(효종 4년) 7월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의 ‘상차문(上箚文)’ 에는 아래와 같이 우리나라 전래의 교육의 기본이념에 관한 말씀이 있다.
“교화를 밝힌다[이른바 明敎化]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부터 나라를 세울 때에는 각각 한 나라의 규모가 있어서 조종(祖宗)이 이를 새로 세우고 자손이 이를 이어 지키는 법입니다. 하(夏)나라의 충(忠)과 상(商)나라의 질(質)과 주(周)나라의 문(文)과 서한(西漢)의 패도(霸道)와 동한(東漢)의 절의(節義)와 조송(趙宋)의 충후(忠厚)는 이것으로 비롯하여 이것으로 마쳤는데, 우리나라가 이제까지 유지한 까닭은 과연 어느 도(道)를 따라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다만 명교(名敎)일 뿐입니다. 아, 천지가 크게 변하여 관상(冠裳)이 바뀌어 놓였으나 한 조각 우리 동방만이 의관(衣冠)을 보전하였으니, 어찌 관(冠)을 훼손하고 면(冕)을 찢어 구구한 명교를 아울러 못쓸 물건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이른바 교화(敎化)라는 것은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군신·부자·부부·붕우가 각각 그 도리를 다하면 망국(亡國)·패가(敗家)가 어디에서 생기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근년 이래로 가정의 더러운 일과 집안끼리 다투는 변과 상기(喪紀)의 문란이 이따금 사족(士族)에서 나온단 말입니까. 어찌 세교(世敎)가 쇠퇴하고 풍화(風化)가 밝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너진 풍속을 새롭게 하는 것은 성명(聖明)께 달려 있으니, 예(禮)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는 일은 치우치거나 폐지할 수 없습니다. 또 학교의 정사(政事)는 소략하기가 또한 심하므로 동몽(童蒙)의 교양이 바르지 않아서 경박하고 사치한 것이 드디어 조장되고 세도(世道)가 점점 투박해져서 지도하는 방도를 잃었으니, 맑은 명망과 도타운 학문이 있는 선비를 얻어 성균(成均)의 직임을 맡겨 부박한 버릇을 통렬히 억제하고 오로지 실행을 숭상하게 하면 성취하는 보람이 반드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살피건대, 오늘날의 풍류(風流)는 진대(晋代)와 같은 점이 있습니다. 술 마시며 농담하고 다른 일은 하지 않으며 예의·염치는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니, 표준을 세우는 임금의 자리에서 그 취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이미 대세가 글러진 것을 만회할 수 없을 듯합니다. 중외에 신칙하여 상중에 예를 다하게 하고, 효성과 우애 있고 화목하게 지내는 선비를 찾아 아뢰게 하여 특별히 장려하여 정표(旌表)하고 제직(除職)하며, 혹 슬픔을 잊고 풍속을 어겨 복상(服喪)을 삼가지 않고 더러운 짓을 하여 윤리를 어지럽히고 다투어서 우애하지 않는 무리가 있으면, 또한 적발하여 율문(律文)에 따라 처단해야 할 것입니다. 1년상을 입을 자가 장사지내기 전에 과거에 응시하거나 가장(家長)으로서 3년상 안에 혼인하는 자도 법을 세워 금단해야 합니다. 명관(名官)으로서 술에 빠져 직무를 폐기하거나 예법을 폐기하는 자는 타일러 경계하되 한결같이 세종(世宗) 때의 고사를 따라 두렵게 생각하고 고치게 한 뒤에 그래도 고치지 않는 자는 법사(法司)와 전조(銓曹)를 시켜 심한 자는 거론하여 탄핵하고 경한 자는 좌천시켜야 합니다. 수령(守令)으로서 읍비(邑婢)를 몰래 간통하고 이어서 데려온 자도 각도를 시켜 사실대로 아뢰게 하여 적당히 벌주어 선비의 풍습을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풍속을 변화하는 데에 작은 보탬이 되지 않겠습니까.”
2. 유대인 교육의 기본정신에 대하여
2-1. 쉐마(Shema) 정신
역사를 바꾸고 세계를 움직인 인물 다섯을 뽑는다면 물리학의 아인슈타인, 공산당 선언을 만든 칼 마르크스,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한 프로이드, 물리학의 아버지격인 뉴턴, 진화론을 전개한 다윈을 손꼽을 수 있겠다. 이들 중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윈을 제외한 네 명은 유대인이란 점이다. 지난 100여 년간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 300여명 중 유대인이 100여명을 넘는다. 경제학 분야에서는 65%, 의학 분야에서는 23%, 물리학 분야에서는 22%가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의 그런 경쟁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환경이 좋아서일까? 나라를 잃은 후 수 천 년간 나라 없는 백성들로 세계를 떠돌며 살아왔으니 환경 때문일 수 없다. 일반적으로 나라가 망하고 나서 100년이 지나면 그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이 통례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런 역사의 통례를 깨고 수천 년을 지나오며 여섯 개 문명 발상지로 흩어져 살아오면서 그들만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 왔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능이 우수하게 태어나서일까? 조사연구에 의하면 유대인들도 태어날 때는 그냥 평균적인 지능이다. 무엇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세계사를 주도하는 자리에 서게 하였을까?
종교와 교육을 합친 특별한 시스템 때문이라 한다. 유대인의 삶의 핵심은 그들의 종교인 유대교(Judaism)이다. 유대교의 중심은 구약성경이다. 유대인들의 우수성의 핵심은 그들 종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을 어려서부터 반복교육을 시키고 그런 반복교육을 통하여 삶의 체질화를 이룬 결과이다. 그 말씀의 대표적인 경우가 ‘쉐마(Shema, 들으라)’로 알려진 신명기 6장의 말씀이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로 시작되는 말씀의 첫 부분을 인용한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장 4절~7절).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그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 말씀에 대한 실천과 반복교육이 유대인의 탁월성의 기초가 되고 있다.
2-2. 유대인 아버지
히브리어로 아버지는 아바(Abba)이다. 아바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둘째 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의미인즉 가정에서 아버지는 첫째와 둘째가는 중요한 위치란 의미를 담고 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에는 4가지 사역(使役)이 있다고 가르친다.
1) 공급자. 자녀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한다.
2) 보호자. 자녀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3) 인도자. 자녀들을 말씀의 초장으로 인도해 준다.
4) 교육자. 하나님의 사람으로 교육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들을 직접 교육하면 다섯 가지 유익이 있다고 말한다.
1) 부모가 자녀들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2) 안식일 저녁에는 성경교육을 실천하여 영적인 멘토(Mento)의 역할을 겸하게 된다.
3) 자녀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시대가 원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4) 자녀들이 아버지의 신앙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5) 아버지를 닮아 자신도 아버지가 되었을 때에 자녀교육의 사명을 지니고 대대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
유대인 아버지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시간을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여긴다.
신명기 6장의 쉐마(Shema) 본문의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친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지니는 탁월성의 한 기초가 된다.
2-3. 유대인 어머니
히브리어로 어머니는 엠(Em)이다. 이 단어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중요한 3단어의 어원이 되고 있다. 믿음을 뜻하는 Emuna, 진리를 뜻하는 Emeth,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의 Amen이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는 아멘이 모두 어머니라는 단어 엠(Em)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인들에게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 어머니는 육신의 생명을 주는 어머니일 뿐 아니라.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주는 어머니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도와주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모세의 어머니이다. 이집트 왕 파라오의 공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 모세는 유모인 친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라게 되었다. 그 어머니는 아기 모세를 기르되 젖을 먹여 육신의 생명만 자라게 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함께 가르쳤다. 전형적인 유대인 엠(Em)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그런 역할로 인하여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유대인 어머니들은 자녀가 3살이 되면 꿀로 만든 과자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적어 그것을 혀로 핥으며 글자를 깨우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꿀 과자처럼 달고 맛있음을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다. 이 교육은 자녀가 히브리어 알파벳을 완전히 외울 때까지 계속된다. 알파벳을 배우고 나면 기도문을 읽히고 그 다음 경전을 읽힌다. 유대인들은 그냥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이어내려 온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기 위하여 언어를 배운다.
3. 존 록크(John Locke)의 교육철학에 대하여
영국의 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 1632년~1704년)가 1693년에 펴낸 『교육에 관한 몇 가지 단상』이란 제목의 책이 있다. 교육의 목표에 대하여 분명한 지침을 주는 책이다. 300여 년 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도 영국 교육의 지침을 제시하여 주고 있는 내용이다. 한국 교육의 현실을 생각하며 반드시 새겨 보아야 할 내용이다.
이 책에서는 교육의 목표를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목표는 체력이다. 한국에서 고3 학급이 되면 아예 체육시간을 없애 버리는 현실에 비하면 아주 대조적이다.
둘째 목표는 위기극복 능력이다. 학생들은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나간 후에 온갖 위기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학생시절에 체득한 위기극복 능력이 인생을 개척하여 나가는 밑거름이 된다.
셋째 목표는 창의성이다. 우리나라 같이 자원이 없고 인구만 많은 나라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창의성이 국운을 결정짓는다. 그런 점에서 존 로크의 교육관이 우리들에게 귀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넷째 목표는 담대함이다. 담대함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기 확신이요 용기이다. 확신과 용기를 바탕으로 하는 담대함이 리더십의 필수가 된다.
다섯째 목표가 앞에 언급한 네 가지 목표를 학습한 후에 여유가 있다면 지식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상의 주요한 교육이념을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 실천하고 설득하여 나아감으로 스스로와 자녀들의 바른 행복을 찾아감은 물론 이 사회와 나라를 살기 좋은 선진국가로 이끌어 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4. 6.13.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