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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모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대형출판사 로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갔다.
창밖은 어느새 비가 오고 있었다. 누가 비를 내리게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제 그 사람, 멋지던데.” 이라부가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내 친구니까요.” 아이코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 이라부의 진료실에 와 있었다. 책을 내는 걸 포기하라고 말하러 왔다. 아라이에게 떠맡기려니 불쌍했다.
이라부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수락했다. “좋아. 나는 만화가 더 좋거든.”
“만화 작품이라면 어디서나 항상 받아줄 거예요.”
“정말? 그럼, 이번에 걸작을 그려서….”
“하지만 만화가가 되는 건 작가 되기보다 훨씬 힘들어요. 경쟁도 심하고.”
이라부는 아랫입술을 비죽이더니, “당분간은 의사나 해야겠군.”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작품을 만드는 현장은 힘들구나. 다들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겠고. 다음에 편집자들한테 선전 좀 해줘. 작가와 트러블이 생기면 이라부종합병원으로 가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건 당신이잖아, 하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선생님, 의사 선생님들은 언제 가장 억울해요?” 아이코가 물었다.
“그야 환자가 사망했을 때지.” 이라부가 코를 찡긋하며 말했다.
그렇겠네, 의료 현장에선 사람의 죽음과 직면하기도 해야 하니까. 안이하게 상상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힘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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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시절엔 내과에도 근무했어. 치료한 보람도 없이 아이들이 죽으면 담당했던 사람들이 모두 울었지.”
그럴 거야. 가슴이 찢어지겠지.
“명복을 빌어주러 노래방에 가자고 해도 아무도 안 가더라고.”
“이보세요.” 끝내 입을 열고 말았다.
“애도하는 뜻으로.”
무슨 이런 남자가 다 있담. 언젠가 꼭 소설로 써야겠다. 나는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안 하니까.
“이제 쓸 수 있을 거 같아?” 이라부가 말했다.
“아마 괜찮을 거 같아요.” 아이코가 대답했다.
분명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도 좌절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람들과 물건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 그러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어제 사쿠라가 한 말은 정말 격려가 되었다. 반성도 했다. 밴댕이 소갈머리를 가진 자신이 부끄러웠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사건들과 비교하면 작가의 일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다. 없어져도 괜찮고 바람에 날려가도 상관없다. 그때그때 한순간만이라도 빛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