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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관동대지진 100년…묻혀진 조선인 학살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9.04. 03:00
지난 2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에 있는 아라카와 하천의 기네카와 다리 아래에서 일본 시민단체 ‘백년(百年)’ 소속 젊은이들이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일본인들의 증언을 낭독하고 있다. 이곳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현장이다. /성호철 특파원
2일 오후 2시 30분 일본 도쿄 변두리 스미다구에 있는 아라카와(荒川) 하천의 기네카와(木根川) 다리 아래 풀밭에 마련된 무대. 20·30대 일본인 젊은이 16명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 앞에서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일본인들의 증언을 낭독했다. “부모들과 아이들이 같이 줄지어 앉았다가 칼에 찔려 죽었다.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사이타마현의 전 순사 아라이 겐지로) 같은 목격담을 읽는 일본 젊은이들의 목소...
[기자수첩] ‘조선인 학살의 역사’를 계속 기록해야하는 이유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9.04. 03:00
1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국제포럼에서 민단 주최 ‘제100주기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 1923년 9월 1일 도쿄·가나가와 등 관동 일대에 규모 7.9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인들이 벌인 조선인 학살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다. 정진석(국민의힘) 한일의원연맹 회장과 일본 여야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주일한국대사관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로 비극의 과거사(史)를 둘러싼 갈등과 화해를 반복했다.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1998년엔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 2010년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재차 사죄했다. 식민지를 겪은 나라가 옛 지배국에서 세 차례나 포괄적인 공식 사죄를 받은 건 한국이 유일하다. 전쟁 침략이 아닌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드문 사례로 국...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9.02. 03:35
1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국제포럼에서 민단 주최 ‘제100주기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 1923년 9월 1일 도쿄·가나가와 등 관동 일대에 규모 7.9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인들이 벌인 조선인 학살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다. 정진석(국민의힘) 한일의원연맹 회장과 일본 여야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주일한국대사관
일본 도쿄 도쿄국제포럼 행사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관동대진재 한국인 순난자(殉難者) 추념식’엔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당수, 누카가 후쿠시로 의원(자민당) 등 일본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국에선 정진석 의원(국민의힘·한일의원연맹 회장), 윤호중 의원(더불어민주당·간사장) 등이 참여했다. 100년 전인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때 무고하게 학살당...
더 심각해진 가짜 뉴스 해악… ‘100년 전 비극’ 잊지 말아야 할 이유
김동현 기자,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9.02. 03:34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이 발생했던 일본 도쿄의 모습/게티이미지
일본 관동대지진 100주년 하루 전날인 지난달 31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제목은 ‘관동대지진 100년, 우리의 불안이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였다. 100년 전 관동대지진 발생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믿었던 민중과 경찰에 의해 한반도 출신 주민들이 무참하게 살해됐다며, 생명과 직결된 사태로까지 치달을 위험이 있는 유언비어가 최근 발생하는 재해에서도 자주 확산한다는 내...
日 오늘 관동대지진 100년... 행사 10건 중 ‘학살 반성’은 없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김동현 기자
입력 2023.09.01. 03:00
도쿄 다리에 ‘녹색 등’ - 일본 도쿄도가 1일 밤 ‘관동대지진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스미다가와의 교각과 도쿄도청에 녹색 불을 켜는 행사를 연다. 스미다가와는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학살당했던 아라카와의 요쓰기다리와 가깝다. 그럼에도 도쿄도가 올해 여는 10여 건의 관동대지진 100년 행사는 모두 조선인 학살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 사진은 2015년 2월 녹색 불로 밝힌 스미다가와 가치도키대교. /익스피리언스도쿄
일본 도쿄를 가로지르는 스미다가와(隅田川)의 교각 열 곳엔 1일 밤 녹색 불이 켜질 예정이다. 일몰 15분 뒤부터 오후 11시까지 스미다가와 다리와 도쿄도청에 동시에 켜질 녹색 등은 ‘100년 전 관동대지진을 기억하자’는 도쿄도의 공식 행사다. 녹색 불이 켜질 다리 가운데 아즈마바시(吾妻橋) 등 여섯 곳은 관동대지진의 피해를 딛고 다시 일어선 부흥 사업 계획에 따라 세워진, 이른바 ‘재해 부흥 교량’이다. 녹색은 평화·약동·번...
“추도문 거절한 도쿄도지사, 조선인 死者에 대한 모독”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9.01. 03:00
최근 만난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위원회’의 미야가와 야스히코 위원장이 추도식 팸플릿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성호철 특파원
“관동대지진 때 세상을 뜬 조선인 사자(死者)에 대한 모독입니다.” 도쿄에 있는 일조협회(日朝協会) 사무실에서 최근 만난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위원회’의 미야가와 야스히코(宮川泰彦·82) 위원장은 “일본인들이 모여서, 관동대지진 때 죽은 조선인을 추모하는 행사에 현직 도쿄도지사가 추도문을 안 보내다니 말이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40여 년간 미노베 료키치 도지사부터 스즈키 슌이치, 아오시마 유...
英 외교문서 “조선인 폭동은 없었던 일… 책임 전가한 것”
유석재 기자
입력 2023.09.01. 03:00
“일본에 20년 이상 체류하고 있는 영국인 말에 따르면 (1923년) 9월 4일이나 5일에 조선인 한 명이 철사로 꽁꽁 묶여…. 그가 처참하게 죽을 때까지 죄어지는 것을 실제로 봤다고 한다.” 일본 요코하마 주재 영국 영사관의 로버트 볼터(Boulter) 총영사 대리가 1923년 12월 19일에 작성한 ‘1923년 9월 1일 요코하마의 지진·화재 및 그 후의 경과에 대한 보고’다.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한 기록이...
“선량한 일본인들, 집단에 매몰돼 폭주...그것이 학살이고 전쟁”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8.30. 23:12
일본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福田村事件)’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 9명이 조선인으로 오인돼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다뤘다. 관동대지진 100년인 오는 9월 1일 영화 개봉을 앞둔 모리 다쓰야(森達也·67) 감독. /성호철 특파원
“관동대지진이 터지고 5일 뒤, (도쿄 옆에 있는) 지바현의 후쿠다(福田)라는 작은 마을(村·무라)에 일본인 보따리상 15명이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조선인이라고 착각하고는 유아와 임신부를 포함해 9명을 살해했습니다. 살해 현장에는 마을 사람들 수백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개인일 때는 선량한 일본인들이 집단으로서는 얼마나 잔혹했는지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30일 도쿄의 한 사무실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후쿠다무...
日 스기오 의원 “한일, 목에 걸린 가시 놔두고 진정한 화해는 어려워”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8.29. 04:14
스기오 히데야 일본 참의원 의원/스기오 X(트위터) 캡처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목에 걸린 가시’와 같습니다. 이 문제를 숨긴 채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요.” 일본 도쿄에서 최근 만난 입헌민주당의 스기오 히데야(杉尾秀哉·66) 참의원 의원(상원 의원)은 “진정한 화해를 하려면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와 마주하고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 새로운 일·한 관계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동 대지진 조선...
日정부 문서 “살해된 조선인 813명”...본지, 조선총독부 기록 확인
유석재 기자,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8.24. 06:00
본지가 입수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문서’의 일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총독부가 자체 조사한 조선인 학살 피해자 추정치[見込数]가 813명(빨간 원)이라고 적혀 있다.//성호철 특파원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직후의 조선인 학살과 관련, 당시 조선총독부가 일본 현지의 내무성 집계를 신뢰하지 않고 도쿄출장소 직원을 통해 피살자 수를 독자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당시 일본 내무성은 조선인 피살자를 231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조선총독부는 그해 12월에 자체 집계해 추정치 813명이라는 문서를 남긴 것이다. 문서에는 ‘가나가와현은 추가 조사 중’이라는 단서를 붙여, 조선총독부조차도 보수적으로 잡아도 1000명 이상이라고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강점했던 조선총독부가 보기에도 일본 현지의 조선인 사망자 축소가 심했던 것이다.23일 본지는 일본 스기오 히데오 의원실(입헌민주당)을 통해 입수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문서(사이토 마코토가 조선 총독을 지낸 1919~1927년, 1929~1931년 기록된 공식 문서)’를 미야자키 마사아키 닛쿄대학 역사자료센터 조교수와 함께 검토했다. 미야자키 조교수는 10여 년 전 와세다대학 재직시, 일본 국회도서관과 함께 사이토 마코토 문서 정리를 담당한 인물이다.
김동현 기자,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8.24. 03:00
그래픽=김하경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2013년 작 ‘바람이 분다’는 남주인공 지로가 같은 열차에 타고 있던 여주인공 나호코를 우연하게 만나면서 시작한다. 몇 마디 짧은 대화를 나누던 두 주인공 뒤로 붉은색 빛이 ‘번쩍’하고 나타나더니, 온 주택가가 들썩일 정도의 강한 지진이 도쿄를 덮친다. 현관문이 떨어져 날아다닐 정도의 강풍과 화염, 급히 피난 가는 주민들의 인파로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바람이 분다’는 2차...
조선인 얼마나 당했나, 공식조사 없어 정확한 숫자 몰라
유석재 기자
입력 2023.08.24. 03:00
본지가 입수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문서’의 일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총독부가 자체 조사한 조선인 학살 피해자 추정치[見込数]가 813명(빨간 원)이라고 적혀 있다./성호철 특파원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문서에 기록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자 813명’은 조선총독부 도쿄출장소에서 조사한 학살자 수다. 당시 일왕의 직속 기관이던 조선총독부가 수행한 조사이기 때문에 결국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관동대지진 당시 도쿄에서 발표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 사법성은 피살된 조선인 희생자 수를 233명이라고 발표했고, 내무성 정보국은 조선인 사망자 231명, 오인된 일본인...
“불온 조선인이 방화” 가짜 뉴스에 가담한 日대문호 아쿠타가와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8.24. 03:00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1892~1927)는 1923년 9월 일어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화재를 냈다’는 유언비어를 믿었다. 1927년 35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쿠타가와는 당시 반(反)군부 사상을 피력한 일본 대표 지성(知性)이었다. 주간아사히는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아쿠타가와조차도 아무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를 어느 정도 믿고 있었던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아쿠타가와...
작은 비석 하나만 남았다, 100년전 조선인 학살한 ‘日 관동 참극’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8.22. 03:26
도쿄 아라카와 주택가 뒷골목에 세워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의 한 주택가에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아라카와에서 일어났던 조선인 학살을 추도하는 추도비가 세워져 있다. ‘悼(슬퍼할 도)’라고 적혀 있는 이 추도비는 일본 시민 단체 ‘봉선화’가 2009년 사비로 땅을 사서 만들었다. /성호철 특파원
한일 관계가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 중러 패권주의 등 전체주의의 도전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생존을 위해 한일은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그렇다고 양국의 역사에 새겨진 과거까지 잊히지는 않는다. 1923년 9월 1일 일어난 일본 도쿄 관동대지진 당시 현지 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학살 사건이 그중 하나다. 관동대지진 100년, 조선인 학살 100년을 맞아 시간 속에서 풍화된 아픈 역사의 흔적을 취재해 연재한다.
“목격자들 죽고나자 ‘학살 없었다’는 주장 나오기 시작”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8.22. 03:27
지난달 28일 도쿄 스미다구에서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의 니시자키 마사오 대표가
관동대지진 당시 무장한 일본 자경단의 사진을 들고 있다. /성호철 특파원
“봉선화 운동을 시작한 1980년대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라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일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도쿄 곳곳에 목격자가 살아 있었으니까요.” 지난달 28일 도쿄 스미다구(區)에서 만난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일본 이름 ‘호센카’)의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64) 대표는 “어느새 증언자들이 모두 죽고 없어지자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