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면할 때까지 이국의 강제징용피해자 문제에 천착한 작가 마쓰다 도키코. 그녀가 <여인예술>에 ‘전여성진출행진곡’ 가사를 발표해 야마다 고사쿠(山田耕筰)의 작곡으로 레코드 취입을 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을 되뇌며 일본에서 징용피해자 돕기 자선콘서트를 기획한 것은 재작년 가을이었다.
후쿠오카와 시모노세키에서의 양일간 공연. 우리는 일본 측에 밴드 4팀이 가는 조건으로 입장객 수와 홍보, 수익금에 대한 우리 측 입장을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이미 일본 측 참가자 대표와는 그 협의를 마친 상태였다. 문화사절단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후쿠오카와 히로시마 영사관에까지 보고해둔 터라 광주의 여약사들로 구성된 우쿠렐레 동호회 팀, 청소년 밴드 등과 함께 시모노세키행 부관페리에 몸을 실었을 땐 의무감이 앞섰다.
시모노세키라면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부관연락선을 띄워 해방 때까지 식민지배의 관문으로 삼던 장소.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로 징용해 일본 각지로 배치하기 위해 하선시키던 바로 그곳이다. 시모노세키 음악동호회에는 ‘한일평화콘서트’이기에 음악을 통한 한일 시민간의 교류라는 취지를 전했지만, 징용 피해자 돕기 기금조성이 목적이며, 무대 옆에 징용 피해자 돕기 기부금함이 놓인 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공연에 관한 소식이 연합뉴스 일본어판으로도 보도돼, 일본의 블로그에 악성 댓글이 실리고, “조선인을 강제로 징용한 사실이 없다”, “반일 교수밴드 입국거부” 등 우익들의 거친 문장이 오르내릴 땐 공연이 예정대로 진행될지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시모노세키항에 하선하는 순간 그게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모노세키 음악동호회 대표와 임원진이 나와 우리를 참으로 따뜻하게 맞이해줬기 때문이다.
공연장소인 시모노세키시 요시모 야스나가 정원까지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버스 탑승 소요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촌 골목 어귀를 한참 지나 산중에 이르렀을 땐 ‘이런 곳에서 우리 시민과 시모노세키 시민이 어우러지는 한일평화콘서트라니’라는 생각마저 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야스나가 정원에 들어선 순간 우리 모두는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맑은 공기 속 산새들 울음이 끊이지 않는 정원 한 켠, 대나무 숲과 이름 모를 나무들이 한 폭의 병풍처럼 펼쳐진 배경. 그리고 그 배경 앞 무대. 마차 수레와 물레방아 등으로 꾸며놓은 그 고풍스런 무대가 대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생각건대 정해진 시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심리적 거리를 단축시켜 공감을 나누는 표현양식으로 음악보다 유효한 장르는 없으리라. 문학이 글을 통해 의사소통을 꾀한다면, 음악은 소리의 조합과 배합을 통해 듣는 이의 마음을 파고든다. 현장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측면에선 시각과 청각을 통해 즉시 소리를 뇌에 전달하는 음악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시모노세키 음악동호회에서는 공연장 옆에 현지 특산물과 공예품을 전시하고, 우리 시민과 음식을 나누며 교류하기 위해 몇 날에 걸쳐 야외무대를 꾸몄는지 모른다. 준비해온 인사말을 담담히 낭독했다.
“돌아보면 잊혀진 전쟁시대(일제강점기)에도 드문 예이기는 하나 한일의 서민이 손을 맞잡고 권력에 맞서 공생을 추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밝히고 일생 동안 진상규명에 착수한 사람이 일본 작가라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그러한 선인들의 훌륭한 정신을 배워 한일서민끼리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함을 목표로 일보를 내딛고자 합니다.”
대학 그룹사운드 활동에 이어 군악대 시절 쥐던 드럼 스틱을 오랜만에 다시 쥐었다. 스네어 북과 톰톰 북에서 울리는 귀에 익은 소리, 묵직한 베이스 페달을 타고 울리는 떡매치는 소리. 일본 전역에 울려 퍼져라! 이제 일본 우경화의 밑동을 후려치는 소리가 되어라. 평화의 리듬을 타고 울려 퍼져라!
동료 교수와 함께 징용피해자인 근로정신대 할머니를 찾아뵙고 소액이지만 공연 수익금을 전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돌이키건대 마쓰다 도키코 정도로 일제 강점기의 징용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보이며 한일서민의 연대를 주장한 작가는 그리 없다. 그녀는 일본의 모든 여성이 권력자와 자본가에 맞서서 당당히 살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한 염원이 힘찬 리듬으로 레코드판에 담겼으리라. 필자에겐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었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일본근대문학필자는 일본 간사이가쿠인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소세키(漱石)와 조선』,『 소세키(漱石) 남성의 언사·여성의 처사』, 논문으로「마쓰다 도키코‘하나오카 사건 각서’고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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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정훈 교수님,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리는듯~
한일 평화 콘서트^^애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