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문명
내가 인도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0여년 전 우연히 Yanni의 타지마할 공연 녹화방송을 본게
인연이 되어서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망자의 궁전’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Yanni의
공연은 장엄하고 감동적이었다. 인도정부는 이 공연을 위해 야무나강에 세 개의 다리를 세우고 진입
로를 건설했으며, 타지마할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를 일부 메워서 관람석을 만들었다. 이에 큰 감명을
받은 Yanni는 공연수익 전액을 인도정부에 기증하여 타지마할 호수의 원상복구에 쓰도록 했다. 공연
을 보고 나서 타지마할에 대해 공부하는데, 그 아름다운 전설을 만든 주인공들이 칭기즈칸의 후예라
는 게 아닌가!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어떻게 타지마할 건설에 관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던 중, 최
근 우연히 인도의 역사책을 구하게 되었다. 혹 인도 역사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함께 공부해보자.
인더스강 유역은 황하 유역,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 나일강 유역 등지와 함께 세계 4대 문명발
상지다. 인더스강은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에서 발원하여 아라비아해로 흘러들며 길이는 320
0㎞, 유역면적은 한반도의 약 5배인 110만㎢에 이른다. 그러나 이름만 ‘인도의 강’이지 실제는 파키스
탄을 동서로 양분하며 흐른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는 원래 한 나라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종교적인 이유로 갈라선 뒤 서로 웬수지간으로 지내고 있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종
교가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사람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는 힌두교, 파키스탄‧방글라데시는이슬람교, 스리랑카는 불교를 각각 국교로 삼고 있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인도에서 독립한 뒤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으로 불리는 같은 나라였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독립했다.
인더스문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2년 영국 고고학자 존 마셜에 의해서였다.
마셜은 인더스강 유역에 있는 모헨조다로에서 발굴작업을 하던 중 초기인류의 거대한 유적을 찾
아냈다.유적은 사막지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원형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했는데,바둑판 모양
으로 구획되어 있는 계획도시 형태였다.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도시는 벽돌집, 도로와 하
수도 시설, 거대한 공중목욕탕과 공회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목욕탕의 물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인더스강에서 끌어다 공급했으며, 그 규모로 보아 시민들이 종교
의식을 치르던 장소로 추정된다. 모헨조다로 유적은 로마보다 3천년 앞선 BC 3천년경의 선진문명
이었다.이후 발굴이 계속되어 동서 1550㎞, 남북 1100㎞의 광활한 지역에서 200군데 이상의 유적
이 확인되었다.
모헨조다로 문명은 인류사에서 사라진 뒤 1천년 이상 잠들어 있다가, BC 1500년경 철기문명을 앞
세운 강력한 아리안족이 인도를 침입하면서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아리안족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종족이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벗어나 이동을 시
작한 초기인류는 비옥한 중앙아시아에서 오랜 세월 머물며 세를 불린 뒤 동서로 갈라져 대이동을
시작했다. 그 중 유럽으로 건너간 아리안족은 오늘날 유럽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히틀러가 아리안족
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한다며
눈엣가시인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했지만, 유대인들 또한 아리안족의 일파로서 독일인들의 먼 친척
이다. 아리안족이란 용어는 원래 언어학에서 사용했으며 인도유럽語族이라는 뜻이다.
아리안족의 인도 침입은 수백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원주민들은 우수한 문화를 바탕으
로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막강한 철제무기와 기마병을 앞세운 아리안족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리안
족은 비옥한 인더스강 유역에 정착하면서 유목생활을 버리고 차츰 농경문화에 적응해갔다. 그러나
아리안족은 원주민들과 화합을 시도한 게 아니라 카스트제도를 만들어 철저한 분리주의를 고수했다.
네 계급으로 분리된 카스트 중 아리안족에게는 최상위인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계급을, 원주민에게는
바이샤 계급을, 전쟁포로로 잡아온 이민족에게는 수드라 계급을 부여하여 어떤 경우에도 신분을 변
경할 수 없도록 했다. 이 완고한 카스트제도는 오늘날까지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의 국교인 힌두교도 아리안족이 가져온 종교다. 인도와 힌두는 모두 인더스강을 어원으로 한다.
힌두교는 BC 1500~1000년경에 편찬된 리그베다를 경전으로 사용한다. 베다는 ‘성스러운 지식’이라
는 뜻이다. 리그베다는 아리안족이 유목생활을 할 때부터 인도를 침입한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한 역
사서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아리안족의 생활상도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리안족은 원시적 다신교를 숭배했다. 베다에 의하면 브라만 계급인 성직자는 왕 위에 군림하면서
국가를 지배했다. 오늘날 이란에서도 1979년 이란혁명을 주도했던 호메이니 이후 종교지도자가 대
통령 위에 군림하며 국가를 지배하고 있다.
인도에서 왕권이 서서히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BC 600년 이후였다. 이때부터 우파니샤드가 등장하
여 종교도 신들의 문제에서 인간의 문제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BC 565년, 현재의 네팔 국경 부근에서 한 족장의 아들인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났다.
고타마는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살다가 사회적 관습에 따라 29세에 출가했다.
이후 고타마는 정신수양을 위해 인도 전역을 떠돌며 6년 동안 고행했다. 당초 목표로 정했던 생로
병사의 비밀을 풀지 못한 고타마는 긴 좌선에 들어가 드디어 답을 찾았다. 고타마는 이름을 붓다
(우리말로는 부처)로 바꾸었다. 스스로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이후 부처는 45년 동안 인도 전역을 순회하며 깨달은 바를 널리 전파했다. BC 486년 부처가 열반
하자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이 부처의 말씀을 모아 경전을 편찬하고 불교를 창설했다.
추종자들은 힌두교의 핵심사상인 윤회와 業을 불교의 기본교리로 받아들였다. 다만 불교는 신이
라는 개념은 수용하지 않았다.불교는 깨우침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종교로서 모든 사람은 살아
서나 죽어서나 평등하다는 교리를 가졌다. 불교는 크게 번성하다가 4세기경 굽타왕조 때부터 힌
두교에 밀려 인도에서 도태되었다. 현재 인도에서 불교신도의 비율은 인구의 0.7%에 불과하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