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마야
마야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표기법을 갖춘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마야 글자는 소리글자와 뜻글자가 복잡하게 뒤섞인 형태의 문자였다. 마치 우리나라가 한글과 한자가 섞인 문자를 사용하듯이 말이다. 마야인은 1000여개의 문자를 사용했는데 오늘날 그 일부가 해독되었으며, 그들이 남긴 기록의 뜻을 대체로 파악하게 되었다. 마야에는 수천권이 책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4권만이 전해진다. 대부분의 글자는 건축물이나 비석, 조각에서 발견된다.
이렇게 고도의 문명을 뽐내던 마야문명의 최후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마야인들은 평안한 도시에서 어느날 갑자기 이곳을 버리고 황량한 북쪽으로 이동하였고 어느 한 사람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 도시는 인적이 끊어지고 건물이 정글 속에 묻혔으며 온간 잡초가 뒤덮었다. 조사에 의하면 마야문화권은 과테말라에서 유카탄 반도로 또 다시 멕시코 시티를 지나 이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왜 이렇게 이동을 해야만 했을까? 천재지변에 의한 이동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렇다면 천재지변이 끝난 후에는 그 화려했던 도시로 돌아와야 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염병이 돌았다는 주장을 한다. 역시 여기에도 뚜렷한 증거는 없다. 기후의 이상으로 생존이 어려웠다는 주장은 이동한 장소와의 거리가 400km밖에 안 된다는 점이 헛점이다. 농민들의 반란이나 다른 민족의 침입, 농토의 황폐화로 인한 식량부족 등에 대한 주장도 있지만 그 어느 하나도 뚜렷한 설명을 할 수 없다.
화려한 마야의 문명을 뒤로 한 채 그 선조들의 생활을 알지 못하는 마야의 후손들. 답답하지만 언젠가 밝혀질 그 날이 올 것이다. 마야 문명에 대한 의문은 대충 다음과 같이 나뉘어 진다.
우선 마야인들이 고대의 어떤 문명과도 견줄 수 있는 기술과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도 왜 밀림에 도시를 세웠을까 하는 점이다. 이들이 도시를 세운 열대 우림 지역은 평균 3m나 되는 풀이 무성해 있으며 마호가니 등의 거목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낮에도 햇빛이 닿지 않는다. 정글에는 표범, 멧돼지, 독사, 독도마뱀, 독거미 등이 우글거린다. 또한 축축한 습기와 더위로 전염병이 유행하기에 안성맞춤인 조건을 갖고 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등의 고대 문명이 하나같이 하천이 운반해 준 비옥한 토양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야 문명은 지옥과 같은 조건 아래 도시를 이룩한 셈이다.
두 번째 의혹은 그들이 건축한 거대한 석조 도시군의 비밀이다. 마야인들의 건축은 인근 어느 민족보다도 뛰어났고 규모도 컸다. 페텐의 밀림 속에 있는 티칼은 신대륙 최대의 유적이며 마야 최고의 대도시이다. 그곳에는 신전, 궁전, 승원(僧院) 등 석조 건축군이 무려 1km2 당 약 200개의 비율로 3,000개 이상이나 발견되었다. 신전 피라미드는 높이가 70m 이상이며 외측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경사가 60°나 되는 계단이 꼭대기까지 이어진다. 피라미드의 정상에는 마야의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다. 여기에서 발굴된 시간의 석비에는 가장 오래된 날짜의 기록으로 292년, 최신의 것으로도 879년 날짜가 새겨져 있다.
유카탄의 수도 우즈만에 있는 총독 궁전이라고 부르는 건물을 받치기 위해 마야인들은 총 46만m3의 자재를 사용하여 길이 183m, 너비 156m, 높이 13m의 토대를 축조했다. 이 거창한 토대 위에 다시 길이 120m, 너비 26m, 높이 4m의 테라스를 만들었으며 이 테라스 위에 길이 92m, 너비12m, 높이 10m에 달하는 궁전을 세웠다. 전체 건조물을 위해 100만 톤에 가까운 자재가 들어갔다. 코판에 건설된 인공 아크로폴리스의 성채는 면적이 5ha나 되고 총 부피는 230만m3, 500만 톤에 이르는 자재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면서도 마야인들은 도시와 밀림을 연결하는 포장도로를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바퀴의 이용법을 알고 있었지만(무덤 속에서 바퀴 달린 장난감이 출토되었다) 무슨 까닭인지 달구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짐을 운반하는 가축도 없었으므로 모든 돌과 설비는 사람들이 날랐다. 도시에 따라서는 그와 같은 거석을 수십 킬로나 떨어진 곳으로부터 운반해 왔을 것이다. 그들의 노고에 경탄을 보낼 수밖에 없지만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세 번째 미스터리는 다른 고대 문명에 비해 월등한 수준의 정확한 역법, 천문학, 수학을 어떻게 익혔는가하는 점이다. 마야 문명을 경탄스럽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들의 과학에 대한 지식이다.
카툰이란 단위로 시간을 측정했던 마야인들은 3세기부터 이미 0을 포함한 20진법 숫자 체계를 갖고 계산했다. 0의 사용은 인도보다는 3백 년, 아라비아 상인들보다는 7백 년 정도가 앞서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숫자를 가지고 하늘의 운행, 시간의 경과들을 계산하였다. 현대인들도 놀랄 만한 태양력도 만들었고 훌륭한 미술 작품도 남겼다. 마야의 천문학은 매우 발달하여 1년이 365와 1/4일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브라는 윤년을 갖고 있는데 아브는 각기 20일로 이루어진 18개월과 5일로 이루어진 ‘짧은 달’이 있고 이것이 합쳐진 365.2420일이 기본 단위였다. 근대의 엄밀한 계산에 의해 일 년을 365.2422일로 보고 있는데 이들의 달력과는 불과 17.28초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마야인들은 금성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 584일 주기의 금성력(金星曆)까지 만들어 냈는데, 그들은 태양력의 8년 동안에 금성력이 꼭 0.4일 어긋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은 그들이 왜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가이다. 정글에서 수 세기를 살아오면서 막상 마야 문명으로 보아 최전성기를 누렸다고 생각될 때 갑자기 소멸해 버린 것이다. 고전기의 마야의 도시는 이카튼(7,200일)의 종료 때마다 기념비를 남겼는데, 서기 790년에는 19개의 밀림 도시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어 810년에는 12개 도시로 줄었으며 830년에는 불과 3개의 도시만이 남았다. 하나의 민족이 전쟁에 의해 멸망하는 예는 역사상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야에서는 그런 전쟁이 일어난 흔적이 없다. 정글에서 다른 지방으로 이동한 것 같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문명의 후계자도 남기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설 하나 남겨놓지 않았다.
물론 마야 문명의 후손들이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다. 유카탄 반도의 시빌찰툰의 유적에서는 이 도시가 기원전 1500년부터 스페인들이 침략한 15세기까지 3,000년을 존속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정글에 살고 있던 마야인들이 시빌찰툰으로 이동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마야인들이 자신들이 세운 찬란한 밀림 문명 속에서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첫댓글 나 마야 문명 처돌이...
우와 완전 흥미돋,, 언제 왜 어디로 사라진걸까
어덯게 된걸까..?
하 이런 글 너무 좋아! 고마워!
이런글 넘 좋아. 잘봤어.
진짜 어디로사라진걸까
마야문명은 진짜 신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