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돌발상황 놀람을 뒤로 하고 다시 영암을 향해 가는 길자락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금 웃음꽃이 활짝.
삼호, 대불산단을 지나며 산꼭대기에 지어진 세한대학교를 보며 모두 한마디씩...오잉? 저 높은 곳에 대학이?
"원래는 대불산단이 있다고 해서 대불대학교라고 명명했는데 다들 불교대학인줄 알고 종교관련으로 많이 찾아서
학교 피해가 막심하여 이름을 세한대학으로 바꾸고 심기일전 중"이라는 설명에 헉.
무슨 대학교 이름을 동네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것인지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오더라는.
사실 대불대학교 이었다는 말을 듣고
"불교대학인가? 요즘 시절에는 뭘 하나 콕 집어 관련 학교를 만드는 것도 트랜드이긴 하지"
라고 말했던 것이 우습게 여겨지던 순간이었다지만 무슨 학교 이름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지었다는 건지 어처구니 없었다.
여하튼 어찌어찌 영암으로 들어서고 독전에 있다는 "청하식당"을 찾아들었다.
초딩친구의 소개로 찾아들었지만 그곳은 이미 가수 "하춘화"의 단골 식당으로 이름난 곳이었고
실제로 먹어본 낙지관련 음식과 밑반찬은 최고최고 엄지척이었으나 소시민이 먹는 한끼 식사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배부르게 먹고 뒤돌아보니 그곳은 이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을 한 듯 "낙지골목"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었고
거리에 즐비한 식당가는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앞세우며 손님몰이중이지만 아직은 관광모드로 변신하지 않은 듯 하다.
와중에 흠이라면 주차시설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고 길을 물어도 노인꽈들은 전부 제 할말만 한다는 것.
이어 부른 배와 함께 "도갑사"로 향하자니 염암에 기거처를 둔 시요일 식구 젬마님이 무화과를 준비했다고
자신의 아파트로 우릴 안내한다...마침 독전에 아파트를 마련해 살고 있더라는.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젬마님은 그렇게 언제나 알게 모르게 모든 것을 준비하고 결국 점심값도 내었다는 후문.
늘 엽엽한 그녀는 여행때마다 언제나 조신한 손길로 우릴 맞곤하는데 그녀가 기거하는 장소에 따라 준비성도 다르긴 하다.
이번엔 광주 농업축제를 준비하느라 농업진흥청에서 오이를 연구했다는 그녀의 작품은 "호동청장오이".
그야말로 둘이 먹다 죽어도 모를 아주 독특한 질감의 오이와 손수 정성들여 말린 곶감과 단감까지 완벽했다.
게다가 끝물인 무화과릍 함께 여행할 시요일식구들 몫과 그밤에 야식으로 먹을 무화과를 바리바리 준비해주었으니 감동.
귀한 선물을 받아들고 도갑사로 향하는 길에 서울내기 친구가 강진에서 장흥으로 또다시 영암으로
기거처를 옮겼다는 말에 기어이 그 친구의 집을 찾아 늘 여행하곤 하던 우리는 그와 도갑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사와 이제 집 정리하고 마당을 꾸리는 중이라지만 흔쾌히 시간을 내어 함께 해주는 친구는 영암 안내를 자청한다.
도갑사....아주 오래 전에 찾았던 도갑사와 경내가 많이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신축 건물이 들어섰고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시설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 탁트였던 도갑사는 이제 건물에 휘감긴 사찰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광지회 되었다.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걸까?
새로운 건물엔 아직 물기도 마르지 않았구만 그 곁자락에 갤러리를 짓고 단 하나의 작품만을 전시할 공간을 또 증축 중이고
걷다 보니 불교 시설에 걸맞는 이름인지는 모를 뉴페이스 절집이 생기고 있다.
도갑사 본전 법당에 계신 부처님의 근엄한 얼굴로 보아 뭐라고 한마디 하실 것 같은데 그냥 조용히 입다물고 계시는 건가?
암튼 사방팔방으로 너른 도갑사는 사철 내내 꽃이 만발하는 절이기도 하여 찾는 이들은 당연히 행복할 것 같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라면 외면할 풀종류- 사실 그 풀도 이름이 있거늘- 부터 외래종이 아닌 순 토종 식물류와 나무가
빈틈 없이 자라며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으면서 즐겁게 하고 있으니 아마도 도갑사의 역할로는 최고이지 않을까 싶긴하다.
봄부터 겨울까지 쇠뜨기, 고마리, 으아리, 개여뀌, 제비꽃, 모란, 수국, 돌나물 등등 수도 없는 들꽃과 잡초와
개서어나무, 모과나무, 단풍나무, 황칠나무, 뜰보리수, 배롱나무 등등의 수도 없이 지고 피는 꽃들과 풀과 나무 행렬엔
또 얼마나 많은 손길과 애씀이 있었을지 안봐도 알겠다.
잠시 동안 경내와 외부공간을 탐닉하면서 가을을 만끽한다.
붉음이 유혹하고 머리끝을 지나 사그라지는 햇살이 등뒤를 비출 때 따스하게 느껴지는 온기는 바람과 맞물려 투쟁중이다.
지나가다 여뀌의 자랑질에 새삼스럽게 토종 식물에 대한 애정이 다시 살아나고 걸음은 또다시 빨라진다.
남겨진 시간안에 영암츨신 "하정웅 미술관"을 찾아들어야 했으므로 마음이 급하다.
그 하정웅 미술관은 전남 광주에도 있다고 하나 우선 눈에 보이는 영암에서 그를 만나기로 한다.
그는 영암 출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많은 부를 축적하면서 예술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쌓아온 부를 예술작품 구입에 쏟아붓기로 하고 전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사람은 물론
고인들의 작품까지 모두 구입하여 조국에 기증한 마음자락이 넉넉한 사람이다.
워낙 많은 작품들을 기증한 고로 일년 내내 작품을 전시해도 죄다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
그가 애정을 갖고 마련한 작품들은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길이 보존될 유산이 아닐까 싶다.
특히 하정웅의 제 고향 영암에 이런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놀라운데 지자체인 군이 마다할 이유도 없지만
기꺼이 개인의 작품 수집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협력한 좋은 실례를 남긴 듯해서 보기 좋더라는.
들어서서 작품을 보는 순간 사실은 너무나 충격이었다.
작품들의 수준이 그냥 기증했다가 아니라 예술가의 정신과 혼이 함께 담긴 작품이 실내외로 그득하다
특히나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이런 작은 영암에서 만난다고?
기가 막힌 운빨 찬스인 듯 했다.
사실은 월요일이라 미술관이 쉬는 날이지만 그야말로 운이 좋으려고 그랬는지 그날 오후에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그 순간에 우리가 찾아든 것이었고 그곳에서 한국미술을 빛낸 남도화가 허백련, 천경자, 허견, 김환기, 오지호, 김정현 등의
초기 작품을 비롯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결국 우리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쿠사마 야요이, 뷔페, 피카소의 작품과 이우환, 이강하....등등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 심취하여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웬 횡재란 말이더냐 싶어 차근차근 작품 하나 하나를 곱씹어가며 감상을 하고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하정웅의 말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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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내 컬렉션의 특징을 묻는다.
첫번째로 내 컬렉션은 "기록"의 유산이다.
내가 재일한국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 작품들이 내 분신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내 삶을 포함해서 , 재일한국인 전체의 역사가 투영된 거대한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내 컬렉션의 두번째 특징은 "기도의 미술'이라는 점이다.
컬렉션의 원형이 된 전화황의 "미륵보살"은 기도의 출발이다.
내가 수집한 재일한국인 작가의 작품들 또한 기도가 근간이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불우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작품이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는 작품이다.
비극의 역사를 잉태했던 시대를 애도하고 위령하는 작품이다.
내 컬렉션의 세번째 특징은 '행복"의 확장이다.
내 그림 수집의 여정은 확장의 여정이다.
처음에는 재일한국인 작가의 작품들을 수집했고,
다음에는 한국 작가의 작품들, 그다음은 일본 작가들,
그리고 전 세계의 작가들로 나아갔다.
20세기라는 무대에서 처음엔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다음에는 동아시아를 조망할 필요를 느꼈으며,
지금은 세계 전체를 들여다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내 컬렉션은 "기쁨"의 공유다.
아름답고 따듯한 미술 작품은 조건 없는 기쁨을 선물한다.
또 좋은 작품과의 만남은 영혼을 정화시킨다.
정치도 이념도 사상도 넘어서는 순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좋은 작품과 만나면 그냥 미치도록 기쁘다.
나는 그 기쁨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ㅡ하정웅, '날마다 한 걸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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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감동과 감격의 도가니를 오갔다.
한 사람의 마인드가 얼마나 사람들의 감정을 오르락내리락 하게 하는지를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으며
인간 하정웅에게 감사의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어졌다.
우리가 아는 재벌들만 이런 컬렉션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다지 유명세를 타지 않았어도 곳곳에서 예술을 사랑하고 불사르며 자신들의 삶자락을 길게 늘이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같은 소시민들은 그저 그들의 작품을 보며 겨워하면서 삶을 이해하게 되는것, 예술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하정웅 같은 사람들이 유,무명 예술가들을 눈여겨 보며 세상 속으로 끌어내고 공유하는 것...감동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간이 촉박하여 곁자락 "도기 박물관"을 찾아가지는 못했다.
그 역시 하정웅님의 수많은 도자기가 기증되어 빛을 발하고 있었을 터이고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을 온갖 작품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어밀었을 것이나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이제 감정의 흥분도를 가라앉히며 하룻밤 숙소를 제공하게 될 "해든 스테이"로 간다.
한옥으로 정갈하게 지어진 "해든스테이"에 들러 체크인을 하고 오래 기다려 준 어린 주인은 목포로 향하며 "즐거운 시간들 되세요" 란다.
그리고 우리는 해든 스테이 건너편에 자리한 내친구의 집은 어딘가를 궁금해하며 그밤에 친구네 집으로 몰려간다.
그 친구는 고딩 시절부터 남사친이다.
아주 오래된 인연이기도 하지만 전직 국어선생님이기도 했고 작가이기도 해서 친밀도가 높다.
그러다 어느날 서울을 버리고 강진으로 홀연히 내려가 작고 소박한 학교에서 다시 교직 생활을 했다.
이후 장흥을 거쳐 영암으로 기거처를 옮긴 까닭에 다시 그를 찾아가게 됐고
월출산을 눈앞에 두고 갈대가 춤을 추는 너른 자연 정원을 가진 그 친구의 한옥집은 그야말로 매력만점이라
우리는 딱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아니하고 그의 집에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가 준비한 성찬을 마다하고 이동하였더라면 정말 미안했을 밥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제 철인 굴과 꼬막, 밑반찬과 영암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진국명가"에서 공수해온 백순대국밥이 한상차림으로 우리를 맞는다.
더불어 막걸리 네병과 들고간 와인과 무화과, 곶감, 단감과 호동청장오이가 자리를 차지했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그참에 다시 어릴 적으로 순간이동을 하여 햇청춘 시절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 기억이 지금까지 우리의 끈을 연결해주고 있었다고 믿는 남사친과 쥔장은 그저 즐겁게 희희낙락이고
바라보는 시요일 친구들은 신기해 하며 우리와 함께 그 시공간을 넘나든다.
그 한때가 세월을 건너오면서 계속 이어져 지금 이순간이라니 싶어 새삼스럽기도 했던....
여하튼 예전에 남편이 선물해준 조각상이 그의 집 중앙에 자리한 것을 보자니 새삼스럽다는 생각을 했으며
이번에 들고간 남편의 서각 작품을 건네 주면서 남편의 안부를 전하며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기억을 함께 공유하는 사이로서의 이질감은 전혀 없는 세월꾼들이 되었다.
그렇게 길고 긴 여정을 함께 하던 두 시공간 차 남사친과 시요일 친구들과의 시간은 아주 길게 오래도록
그밤을 넘나들 듯하였으나 급 피곤이 몰려오는 관계로 숙소 한옥스테이 "해든"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이후 야밤에 홀린 맥쌤의 괴담은 다음으로 패스....
첫댓글 예전에 워ㅏㄹ출산 도갑사로 가며 억던 연포탕이 생각이 나네요,,
ㅎㅎ 그러셨군요.
독천골목, 낙지거리는 아무래도 낙지 전문이니 다양한 음식이 제공되고
우리가 찾은 청하식당의 연포탕도 그야말로 압권이었더라는.
호동청장오이~!
난 모르는것도 참 많아!
궁금증 유발~! 수도없는 들꽃들도 보고프고, 하정웅이란분의 컬랙션은 과연 볼 기회가 있으려나~?
세상엔 숨어 있는 대단한분들도 참 많아요.
맞아요.
세상엔 숨은 고수들이 많기만 하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