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9일.
목요일.
아침부터 나는 심각한 충격에 휩싸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심장까지 심하게 요동쳤다.
부산 '태종대'를 출발해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까지 537K를 달리는 '2020, 한반도 종단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오늘 새벽 03시 30분께였다.
장소는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 앞 지방도였다.
400K CP(체크포인트)를 막 지난 지점이었다.
30살 젊은 놈이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갓길을 따라 달리던 도전자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인 선수들은 애통하게도 모두 숨졌다.
불볕더위 속에서 밤낮으로 400K를 달려온 사람들.
그 심신의 상태가 어떤 지경일지 일반인들은 십분의 일도 가늠하지 못할 거라 믿는다.
그 '처절한 고통'과 '극한의 곤고함'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
모든 관절과 뼈마디가 욱신욱신 쑤시고 벌어지고 분리되어 따로 논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뚱아리.
이글거리는 한여름날의 폭염보다도 더 뜨거운 도전정신과 숭고한 정신줄 하나만을 부여잡은 채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며 '망배단'을 향해 한 발 한 발 전진했을 위대한 도전자들.
약간의 충격에도 생사의 문제로 직결될 만큼 심각한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는 반상반상한 심신일진대, 어찌 음주운전 상태로 달리는 그들을 뒤에서 덮쳤던 말인가?
지금까지 약 20여 년의 대한민국 울트라 연맹(KUMF) 역사에서(전신인 KU 시대까지 포함하면 약 30여 년) 대회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총 6명이 되었다.
애통하고 애닲기 그지없다.
강화도 서해바다에서 경포대 동해바다까지 308K 한반도 '횡단대회'에서 2명.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휴전선 아래까지 622K 한반도 '종단대회'에서 1명.
이번에 태종대에서 파주 망배당까지 537K 한반도 '종단대회'에서 3명.
이렇게 총 6분이 대회 중에 삶을 마감했다.
심장마비도 아니었고, 지병 때문도 아니었다.
모두 다 어이없고 황망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각 구간마다 제한시간(데드타임) 이내에 통과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주자들은 죽을 힘을 다해 달린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칠흑같은 새벽시간에 그랬다.
나도 숱한 울트라 대회에 참전했었고, (사)대한 울트라 마라톤 연맹의 초대 '공보이사'를 역임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사고를 접하게 되면 가슴이 찢어지는 애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친하지는 않았어도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랬다.
어떤 도전이든 도전은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되는 위험들은 사전에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예방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참사가 있기 전까지 3번의 처참한 사고가 있었다.
그래서 연맹에서도 다양한 안전대책을 강구했지만 '음주운전'에 대한 것까지는 어쩌지 못했으리라.
차제에 운영방식과 대회패턴을 근본적으로 일신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도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겠다.
짧은 일기를 한 편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생각과 감정이 왔다갔다 한다.
머릿속에서 정리도 잘 안되고.
나도 과거에 '철인3종 경기' 훈련을 많이 했었다.
'경기남부 철인클럽'을 만들었던 창립멤버였고.
하지만 '트라이애슬론'보다 몇 배 더 힘들고 고통스런 끝판왕이 바로 '초장거리 울트라 마라톤'과 '트레일 런'이다.
사하라 횡단 대회, 고비사막 대회, 몽골 대초원 울트라, 그리스 스파르타슬론, 홍콩 비브람 트레일런, 프랑스 그랜드 레이드 레위니옹, 울트라 트레일 몽블랑 레이스, 일본 울트라 트레일 마운틴 후지, 일본 니찌난 울트라, 북극과 남극 어드벤처 레이스 등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대회가 대한민국의 한반도 종단, 횡단 울트라다.
대회 거리나 자연환경 때문이 아니고 대회진행 방식 때문에 그렇다.
이제는 도전자들의 안위가 1순위라는 생각으로 대대적인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필히 그래야 한다.
'생명'과 '안전'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때가 있을 것이다.
'손영만님',
'전상배님',
'백용호님'.
"위대한 도전자 세 분의 명복을 빕니다"
현재 '대한 울트라 마라톤 연맹'(KUMF)의 집행부도 모두 잘 아는 지인들이다.
언제나 앞장서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인데, 이번의 참사로 인해 아픔과 어려움이 형언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끗끗한 마음으로 이 엄중한 사태를 잘 수습해 주기 바란다.
우리도 적극 돕고 힘을 보태려 한다.
한 가정의 가장이며, 남편이자 아버지, 할아버지였을 사람들.
충격과 슬픔에 잠겨 있을 유가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음주운전'은 곧 '살인'이다.
제발 제발 제발, 다시는 술 마시고 운전하는 일이 없기를 강력하게 촉구하는 바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뛴 서른 살 젊은 놈의 '음주운전'에 말 할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일은 많은데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참, 엿같은 하루다.
두고두고 2020년 7월 9일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집에 가서 술 한 잔 하고 싶다.
첫댓글 너무나도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울트라는 아니어도 운동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정말 황당한 사고입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