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전국대회 중 문화관광부장관기(7경기 9골),
2003 금강대기 득점왕(6경기 6골),
2003 대통령금배(3경기 6골),
2003 추계중고연맹전(7경기 12골)
2004 대학 무대 신고식이었던 대통령배(3경기 2골)
2004 전국대학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7경기 10골)
6개 대회 총 33G/45골(4개대회 득점왕, 경기당 평균 (1.36골)
정조국
2002년춘계연맹전 득점왕 6경기(6골)
2002년 서울시 교육감배 4경기 득점왕(5골)
2002년 문화부장관기 4경기 4골
2002년금석배 득점왕6경기 득점왕(10골)
2002년대통령금배 4경기 득점왕(9골)
2002년서울시장기 5경기 득점왕(4골)
2002년대한축구협회장배 6경기 득점왕(6골)
7개대회 총 35G/44골 (5개대회 득점왕, 경기당 평균 1.25골)
이렇게 지금 박주영과 마찬가지로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라고 불과 2년전만 해도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의 계보를 이을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떠올랐던 정조국이 프로 데뷔해서 기록한 성적은 어떨까요
소속팀 : FC서울
2003년 32경기 12골 2도움 77 슈팅
2004년 30경기 8골 2도움 58 슈팅
총 62경기 20골 4도움 135슈팅 (1경기당 득점율 0.32)
확실히 고교무대랑 프로무대가 다르다는걸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이는 한 때 지금의 박주영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한국 축구를 10년은 책임질 스트라이커로 꼽혔던 이동국의 프로 데뷔 2년동안의 성적과도 비교해 볼 수 있는데요
소속팀 : 포항 스틸러스
1998년 24경기 11골 2도움 81슈팅
1999년 19경기 8골 4도움 69슈팅
총 43경기 19골 6도움 150슈팅 (1경기당 득점율 0.44)
비교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조국이 이동국보다 슈팅한 횟수에 비해 결정력은 다소 우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당 득점율로 비교해 보시면 이동국이 정조국보다 다소 우위에 있습니다
도움 능력도 이동국이 다소 앞서고 있고요
올 시즌에는 도움 2위씩이나 했다지 몹니까 스트라이커가 -_-
더구나 1998년에 이동국은 프랑스 월드컵(월드컵대표) +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청소년대표) + 방콕 아시안게임(아시안게임대표) 3탕 씩이나 뛰는 가운데 K리그(포항대표)데뷔까지 했죠
19살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심하게 여기 저기 끌려 다녔는데도(진짜 이런 선수도 없었죠-_-)불구하고 프로데뷔 첫 시즌에 24골 11골이나 넣어서 축구 전문가들이 깜짝 놀랐다죠 정말 대단한 선수였었죠
정조국의 능력을 깍아내리려는 건 아니지만 3탕씩이나 뛰면서 프로무대에 데뷔해서 24경기 11골이나 넣은 이동국에 비해서 좋은 성적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똑같이 신인왕을 수상했지만
그럼 또 정조국은 교체 출장이 많았다고 반론하는 사람 있겠지요
위에서 말했듯이 이동국도 각종 대표팀에서 차출요구가 심해서 전 경기를 풀타임
으로 소화할 수 없었습니다 이동국으로서도 첫 프로데뷔무대였고 당시 포항도 지금의 FC서울처럼 쟁쟁한 용병과 선배들이 있었죠
유럽 진출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적응했느냐 못했느냐의 기준과 관점도 이동국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논란이 되고 의심을 받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결과만 놓고 "쟤는 안 통하네" "안 통하니까 그렇지"이렇게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데 대다수 축구팬들이 간과하시는게 있습니다
이동국이 여느 선수들처럼 몸이 온전한 상태로 브레멘에 진출했습니까?
아닙니다 어린 나이 대표팀에 발탁되어(19세)축구선수로서 이제 한창 성장해 나아가야 할 나이에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월드컵,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올림픽, 각종 대회 A매치 등등 차출 당하고 여기 저기 다친 상태로 차출, 부상 후 완치 되지 않은 상태로 또 차출, 이렇듯 곯고 곯은 상태로 또 차출...브레맨측에서도 한국에서 선수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이렇게까지 되도록 방치해뒀냐 왜 망가뜨려논 상태로 진출시켰냐 축구 영웅 펠레도 한국축구환경에서 좋은선수 하나가 망가졌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이동국의 몸은 혹사 당하고 또 혹사 당하였습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단지 이동국 자신의 돈과 명예를 위해서 그라운드에서 피, 땀흘렸겠습니까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서 자존감과 사명감이 없이 과연 그 어린 나이에 각종 대회 평가전에 참가하면서 그 많은 골을 터뜨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아픈데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꾹꾹 참아가면서 그 무리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겠습니까 무엇보다 포항측은 그런 상태론 무리라며 내키지 않아 했답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대한축협....어거지도 떠밀다시피 이동국의 해외진출을 추진시켰답니다 6개월의 임대형식이었지만 브레맨측은 6개월이 지난 후 이렇다 할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이동국임에도 불구하고 포항측에 완전 이적을 요구했답니다 브레맨 분데스리가에서 요새 잘나가는거 아시죠? 그런 빅클럽에서
미쳤다고 가능성 없는 선수에게 완전 이적을 요구했을까요? 설사 그게 헐값이라도 말이죠 가능성 없이 방출될만한 선수에게 완적 이적을 요구할 까닭이 없지 않나요? 하지만 포항측에선 거부했지요 대개 이런 경우 금전적인 문제로 협상이 결렬되고 말죠 브레맨측에서 부상 당한 채로 와서 제대로 뛰어 보지도 못한 이동국에게 뭐가 아쉬워서 완적 이적을 요구했을까요? (여담이지만 현지 독일 사람의 말에 의하면 브레맨 서포터들 중에서 이동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고 합니다 ) 그리고 그렇게 6개월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에도 꾸준히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팀들에게 러브콜이 들어왔었죠 그것도 우리가 실패하고 돌아왔다는 분데스리가쪽에서 유독 영입제의가 끊이지 않았다는거죠
군대를 가 있는 상황에서도..또 최근에는 헤르타베를린과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군제대 후 영입이라는 조건까지 내걸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들이 아마추어일까요? 비전 없는 선수에게 영입제의를 할만큼 그것도 군제대 후라는 조건까지 내걸고 뭐가 아쉬워서 아시아권 선수에게 그토록 손을 내밀까요
그리고 안티들 중에 브레맨에서 공격포인트 하나 기록 못하고 쫓겨왔다고 뻥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반시즌 동안 있으면서 6경기 모두 교체출장(15분이상 뛰어본 경기가 없었죠)이었지만 분명 어시스트 1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
지만 이동국은 분데스리가 진출하기전까지 98년도부터 01년 초까지 한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이 우리나라를 위해 뛰어온 선수입니다 다친데 또 다치고 곯은
데 또 곯고 다들 스카웃 제의가 먼저 와서 간걸로 아는데 재활훈련 차 독일을 갔다가 브레맨측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은거구요 이동국은 부상 때문에 몸도 말
이 아니고 독일쪽은 별루 내키지 않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부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축협이 그 당시 "유망주 해외 진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동국만한 적임자가 없었던거죠 아시안컵 득점왕도 했겠다
좋은 구실이 생겼을 때 빨리 해외 진출시켜버리자고 입을 모았고 이동국이 자기들
뜻대로 쉽게 오케이 싸인을 안해주자 계속 포항측에 찾아가서 설득하고 이동국
개인한테도 이렇게 하면 너도 경험쌓고 우리도 좋고 서로 좋은거 아니겠냐면서
거의 자의반 타의반 설득하는데 성공해서 결국은 진출한거구요
결론은 정말이지 결과적으로 조기 입국하고 말았다고 해서 "유럽팀에겐 안 통한다"이렇게 말하는 것 판단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나 의견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결코 객관적인 이론이나 사실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아시아팀에게만 통하고 유럽팀에겐 안 통한다"는 공식이 성립되려면 타당한 근거나 토대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이동국을 "아시아용"이라고 조롱하고 폄 하 해왔던 축구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를 설득력있고 타당하게 설명하질 못했다는거죠
*리플중 이동국 고교자료 얘기해서
너무 길지만 몇개 찾아보겠습니다
96년 8월 시도대항 중고 축구대회 MVP
97년 춘계KBS중고 연맹전 2관왕(MVP, 득점왕)
98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득점왕
21세기를 이끌어간 신인에 호나우두 라울 오웬 산타크루즈 등등과함께 이동국 오노신지 나카타와 함꺠 유일한 아시아 선수로 뽑힘
고교랭킹 1위로 연세, 고려, 한양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으나 이중 연세대 진학의 거의 결정했다가 막판에 포항스틸러스에 입단 계 약 금 : 1억 5천만원(역대 고졸 최고액
청소년 대표 시절
98년 아시아 청소년축구대회 6경기 5골 2도움 득점왕,MVP+우승컵(트리플크라운)
(지금의 박주영처럼 AFC 올해의 최우수 청소년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음)
99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말리전 3경기 출전 1골
주요 대표 경력 :
96년 청소년대표-20세이하
97년 청소년대표-20세이하
97년 국가대표-상비군
98년 월드컵대표-예비 엔트리 22명에 발탁
98년 월드컵대표-자메이카전(A매치 첫 출전,79분에 황선홍과 교체투입 )
98년 월드컵대표-역대 최연소 본선출전(네덜란드전 77분에 서정원과 교체투입)
98년 국가대표-친선경기 자메이카전 출전
98년 청소년대표-아시아 청소년(U19) 출전
98년 아시안게임 대표-카리브해 올스타팀 초청 친선경기
98년 아시안게임 대표-한.중 정기전
98년 아시안게임 대표-방콕아시아 게임 출전
99년 올림픽대표-던힐컵 출전
99년 청소년대표-청소년대표(u20) 평가전
99년 청소년 대표-세계 청소년(U20) 축구대회 출전
99년 올림픽 대표-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예선
99년 올림픽 대표-한일 올림픽 대표 친선경기
99년 올림픽 대표-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2000년 올림픽 대표- 호주 4개국 친선대회
2000년 국가대표-골드컵출전
2000년 국가대표-한.중 정기전 출전
2000년 올림픽대표-시드니 올림픽 본선
2000년 국가대표-LG컵 4개국 친선대회 출전
2000년 국가대표-아시안컵 축구대회 출전
2001년 독일 브레멘 진출.복귀
2001년 국가대표-LG컵 4개국 친선대회 출전
2001년 국가대표- 친선경기 체코전 출전
2002년 월드컵 대표-예비 엔트리
2002년 월드컵 대표-최종 엔트리 탈락
2002년 아시안게임대표-부산 아시안게임 출전
2003년 국가대표-한일 평가전 출전
2004년 국가대표-중국 아시안컵 출전
2004년 국가대표-독일 월드컵 2차 지역예선 출전
첫댓글 그냥 몇개 자른거
ㅋ
이동국 고교때 자료는 없네요..
차라리 아시아용이라도 돼는게 낮지.. 그거도 안돼는 다른 공격수들은 뭐냐
맞습니다..맞고요...안티들 괜히 이제와서 이동국 인정해주려니깐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겠죠..^-^ 상대안하는게 최곱니다....
결승골 넣은 선수 욕하는 무뇌아가 존재하는 우리나라 재밌는 나라
고교랭킹 1위로 연세, 고려, 한양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으나 이중 연세대 진학의 거의 결정했다가 막판에 포항스틸러스에 입단 계 약 금 : 1억 5천만원(역대 고졸 최고액)
참나~그러면 님들이 직접 국대경기에 나가시져~!~!나가서 공이나 잡을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