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주 감동을 받은 영화가 있다.
블랙스완.
백조와 흑조.
인간의 이중성.
점강법을 이용한 영화의 구도.
멋진 영화였기에 이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의 새 작품 더 웨일에 기대를 했다.
포스터만 봐도 대략적인 느낌이 왔다.
인간의 몰락과 구원.
영화는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다.
배경은 웨일의 방 하나.
등장인물도 단순하다.
동성 애인의 죽음으로 세상과 단절한채 살아가는 주인공.
거짓 선교사
사실은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한 선교사가 아니라 돈을 훔치기 위한 좀도둑이다.
죽은 찰리의 연인의 동생인 간호사.
찰리를 지극하게 돌본다.
찰리의 딸.
찰리가 8살 때 자신을 버렸기에 삐딱하게 자란다.
이런 설정이 너무 싫다.
왜 한부모 자녀는 인격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묘사하는지.
이땅의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 대한 모욕이다.
미드 불에도 비슷한 설정이 나온다.
맨 왼쪽의 남자가 의상담당인 동성애자이다.
결혼 후에 딸을 낳고서야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았고 부인은 이해하고 결별해준다.
둘은 친구처럼 지내며 가끔 집을 방문해 딸의 성장을 지켜본다.
딸은 훌륭하게 자라서 두 개의 좋은 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진다.
대학을 살펴보러 딸이 뉴욕에 오게 되고 아빠는 그제서야 본인이 아빠라는 사실을 밝히고 화해를 한다.
얼마나 훈훈하고 정상적인가.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은 칙칙하고 인격형성에 문제가 있다는 묘사는 버렸으면 좋겠다.
동성애가 어쩔 수 없는 선택과 환경이라는 것을 이해하듯이.
딸.
친구도 없고 학교에서도 졸업을 못할 정도다.
엄마마저도 딸을 악마라고 부르지만 아빠가 딸의 진가를 알아보고 딸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신파 중의 신파.
거론할 가치도 없다.
찰리의 부인 역할도 중요하다.
딸을 악마라고 부르지만 어쨌든 딸을 실질적으로 양육한 사람이다.
다행히 찰리는 양육비를 주었고.
찰리를 원망은 하지만 이해는 한다.
이런 모습이 일반적인 정상인의 모습이 아닐까.
영화는 찰리가 죽기 직전 일주일의 기록이다.
영화 초반 모비딕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더 웨일 이라는 영화의 제목과 관련이 있다.
고래와 같은 몸집이 거대한 찰리의 죽음.
그리고 선교사를 가장한 좀도둑이 등장한다.
그리고 구원을 울부짖는다.
이 영화는 구원에 관한 영화야.
찰리의 세상과의 교류는 생계를 위한 인터넷강의와 피자배달원 뿐이다.
그것마저도 화상 강의지만 카메라가 고장났다는 이유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피자배달원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미리 우편함에 돈을 넣어둔다.
찰리는 마지막 할 일로 딸과의 화해를 선택한다.
그리고 말도 안되게 딸과 하해를 한다.
화해의 과정과 이유를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마지막에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찰리에게 감동한다.
무슨 예수의 재림인가?
일어나라 하자 앉은뱅이가 거짓처럼 일어난.
지금까지 몸을 앞으로 숙이는 행동조차 하지 못했던 비만의 덩어리가
272kg의 거구를 스스로 일으켜 제 발로 걷다니.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꾸며낸 거짓 감동이다.
동성애, 가족애를 이용한 신파 중의 신파다.
내 기준으로는 10점 만점에 평점 1점의 영화.
찰리가 미이라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은 놀랍다.
그리고 연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좋았다.
그러나 원작인 연극의 대본이 워낙 형편없어서 몰입하기 힘들 뿐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지만 대본이 허술한 영화의 표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라있는 영화지만.
첫댓글 책이나 영화에 빠져 사는것도 한때라 생각이듭니다.
삶에 열정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구요.
옛날옛적엔 라디오 연속극에 빠져서 내일 이시간까지 "우찌기다릴꼬"
애를태웠었고,
사십대후반 쯤엔 만화영화에 몰입
"은하철도 구구구"
"황금박쥐"
그다음엔 주말 드라마
모래시계 등등에~!
지금은 빠질레야 빠질데가
없고 빠지기도 싫은건 왜그런지 알다가다 모르겠다 입니다.ㅋ
저는 돋보기 안경 쓰고 책 읽는 어르신의 모습이 아주 좋아보여요.
따라하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