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적인 신시사이저 반복구, 몽롱한 화성과 선율로 나른한 오후의 심상을 그려낸다. 어쩐지 르누아르의 그림 속 인물들이 헤드폰을 쓰고 일광욕을 즐기는 공상이 떠오른다. 겨울의 계단에서 햇빛에 만취한 날들을 그린다.'
'로이 에이어스 유비퀴티' 밴드의 '에브리바디 러브스 더 선샤인'(1976)을 소개한 동아일보 임희윤 기자의 2015년 12월 20일 글 중 일부다. 재즈펑크 비브라포니스트이며 퍼커셔니스트, 힙합 뮤지션들이 샘플링한 아티스트로 이름 난 로이 에이어스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영향력도 높고 음악계 콜래버레이터로 많이 찾던" 고인이 지난 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숙환으로 눈을 감았다고 5일 전했다.
고인은 재즈펑크 운동의 개척자였으며, 네오솔, 애시드 재즈와 리듬 앤드 블루스 장르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그는 1963년 웨스트코스트 바이브스를 시작으로 커리어 내내 수십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그의 노래들은 메리 J 블리지('마이 라이프'), A Tribe Called Quest('Bonita Applebaum'), Junior M.A.F.I.A.('겟 머니') 등에 샘플링됐다. 그는 또 구루, 펠라 쿠티, 릭 제임스 앤드 더 룻츠 같은 아티스트들과의 콜래버레이션 작업을 했다.
2016년에 잡지 핏치포크는 '에브리바디 러브스 더 선샤인' 타이틀 트랙을 1970년대를 빛낸 200곡 가운데 하나로 뽑았다. 해당 매체는 “이 노래는 숨길 수 있을 만큼 민첩하긴 하지만 숨기려고 애쓰는 노래는 아니었다"고 적었다.
1940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난 고인은 다섯 살 때 라이오넬 햄프턴 빅 밴드 공연을 보고 비브라폰을 처음 알게 됐다. 그 뒤 열일곱 살 때 선물로 이 악기를 받고 연주법을 배웠다. 어릴 적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도 하고 피아노도 배웠다. 그 뒤 LA 시티 대학에서 음악이론을 전공했다. 1960년대 초반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와 첫 계약에 성공했다.
1973년 에이어스는 팸 그리어 주연의 '흑인 착취'(blaxploitation) 액션 영화 '코피'(Coffy)의 사운드트랙 가사를 쓰고 프로듀스했다. 고인의 마지막 솔로 앨범 'Mahogany Vibe'를 2004년 발표했고, 라이트, 카밀라, 에리카 바두 등과 콜래버레이션을 했다. 2015년에 그는 'Tyler, the Creator'의 'Find Your Wings'에 등장했고 2017년에는 그 래퍼의 'Camp Flog Gnaw'에서도 공연했다. 2020년 그는 애드리언 영이, 알리 샤히드 무함마드와 콜래버레이션 앨범 'Roy Ayers JID002'를 발매했다.
고인은 생전에 워싱턴 포스트(WP) 인터뷰를 통해 네오솔 아티스트로 불리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털어놓았다. "일생을 살며 많은 음악을 겪었다. 난 이제 내 음악을 네오솔이라고 부른다. 그 모든 다양한 소리를 포괄하는 사운드다. 그냥 재즈를 한다, 펑크를 한다, 블루스를 연주한다, 뭐 그렇게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난 네오솔을 연주한다."
에이어스는 아내 아게리에와 두 자녀 음투메와 아야나 에이어스를 유족으로 남겼다. 가족은 고인의 삶을 기리는 일정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