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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은 중국과 동지중해를 잇는 무역로
구간은 중국, 중앙아시아, 티베트, 북인도, 트란스카스피아(초원길), 서방으로 구분
비단길을 통한 혁신 전파 가능. 화약처럼 비단길로 전파되는 전용 혁신 확인됨
비단길 혁신을 받으려면 중국 명맥/비단길 무역허브 보유/중국 문화 선호 전통/비단길 허브 방문(활동) 중 하나여야 함
각 구역별 상태에 따라 수익이 증가 혹은 감소
비단길 허브 방문은 10년에 한 번 가능. 허브는 전용 특수건물
혁신 화면 개편 예정
Out of the ruins of the Tang was born the glory of the Song. Greatness such as this has not been seen for nearly two centuries - tribute flows to the imperial capital from afar like a mighty river, rebellions are infrequent and swiftly suppressed, and the government is firmly in the hands of the capable and meritorious.
However, with with g great prosperity comes great temptation. Nomads have coveted the bounty of Central Plains since time immemorial, while even within the empire the unscrupulous oft cloak themselves with feigned nobility to divert its wealth into their own pockets.
The Son of Heaven holds the world in his palm, but what of those who may compel even the Son of Heaven to act according to their will?
옛 당나라의 폐허 위에 세워진 송나라는 2세기 동안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조공은 큰 물결처럼 수도로 흘러오고, 반란은 신속히 진압되었고, 조정은 유능하고 공이 많은 신하들이 봉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번영에는 큰 유혹이 따르는 법입니다. 밖에서는 중원의 부를 오랫동안 탐내는 유목민이, 안에서는 부패한 관료가 호주머니 속으로 제국의 부를 빼돌리고 있습니다.
천자마저 자기 뜻대로 휘두르려는 이들에게 천자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공개된 1066년 북마크 인물
중국
소식(蘇軾 Su Shi): 북송 시대 중국의 시인. 호를 붙은 소동파로 유명함
단사렴(段思廉 Dan Silian): 대리의 19대 국왕. 묘호는 흥종(興宗)
이일존(李日尊 Lý Nhật Tôn): 대월 이씨 왕조의 3대 황제. 묘호는 성종(聖宗). 그의 대에 정식으로 대월이란 국호가 정해짐
진관(秦觀 Qin Guan): 북송의 시인. 소식과 함께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음
양낙요(梁落瑤 Liang Luoyao): 서하의 2대 황제인 의종 이양조(탕구트식 이름은 외명양차)의 황후. 한족. 역사적으로는 1년 후 의종이 승하하자 아들인 혜종 이병상의 수렴청정을 맡았고, 혜종이 성년이 된 뒤에도 친정인 양씨 가문과 함께 영향력을 행사함
Almost a half-century has passed since Fujiwara Michinaga, Kampaku of Japan, penned his famous poem: "I think of this world as my world, and the full moon as never waning."
Widely interpreted as a statement of the Fujiwara family's unassailable position as imperial regents, his words so far seem to ring true. Michinaga's 's son is set to pass his all-powerful position to the next generation.
Will the Fujiwara maintain their dominance over the imperial court, against the protests of other aristocratic houses and the imperial family?
관백 후지와라 미치나가가 "이 누리가 내 누리라고 생각하니 보름달이 이지러지는 일이 없는 듯 하다고 생각하노라"라는 시를 읖은 지 반 세기가 지났습니다.
섭정으로서 후지와라 가문이 누리는 지위는 그의 시구처럼 공고해 보입니다. 그의 아들 역시 자신의 지위를 후손에게 물려 줄 것입니다.
과연 후지와라는 황실 및 다른 귀족 가문의 견제를 막아내고 권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일본
후지와라 요리미치(藤原頼通 Fujiwara Yorimichi): 1066년 당시 섭관이자 후지와라의 수장. 아버지 미치나가의 뒤를 이어 1017년에 섭정, 1019년에 관백이 되며 후지와라의 권력 승계 과정을 정석으로 밟았으나, 재임 기간 동안 여진족 해적, 지방 호족들의 반란, 200년 만에 외가가 후지와라가 아닌 덴노가 즉위하는 등 후지와라의 권력 기반이 흔들리던 시기를 보냄
덴노 치카히토(親仁 Chikahito / 後冷泉天皇 Go-Reizei-Tenno): 일본의 제70대 덴노(천황). 역사적으로는 2년 후에 사망한 뒤,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외가가 후지와라가 아닌 동생인 다카히토(尊仁)가 천황위를 물려받으며 200여년 만에 후지와라=덴노의 외가 공식이 깨짐. 다카히토는 즉위 후에 후지와라의 권력 독점 구조를 더욱 흔들기 위해 장원을 정리하고 친위 세력을 육성했음, 다카히토의 아들인 사다히토(貞仁)는인세이를 본격적으로 실시하며 증손자 때까지 상황>천황으로 권력이 쏠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황위 계승 분쟁에 무사세력이 개입할 여지를 만듦.
미나모토 모로후사(源師房 Minamoto Morofusa): 당시 조정의 원로 중 하나로, 무라카미 계열 겐지(미나모토)의 시조로 고산조 덴노 시대에 기용됨
미나모토 요리요시(源頼義 Minamoto Yoriyoshi): 전9년의 역에서 조정군을 지휘한 장수. 카와치 계통. 그의 고손인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게임상에선 1178년 시점에서 이즈를 통치하고 있으며, 훗날 겐페이 전쟁에서 이기고 가마쿠라 막부를 세우게 됨. 다른 후손 중에선 요리토모의 동생인 노리요리와 요시츠네 및, 백년전쟁 발발 1년 전인 1336년에 무로마치 막부를 세우는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있음
키요하라 타케노리(淸原武則 Kiyohara Takenori): 1066년 당시 진수부장군(鎮守府将軍)으로 봉직 중이던 호족. 아들인 타케사다는 전9년의 역 당시 사망한 후지와라 츠네키요의 아내와 결혼했는데, 츠네키요는 이미 후지와라 키요히라(의 후손이 1178년 당시 오슈 후지와라의 수장인 후지와라 히데히라)란 아들을 둔 상태였음.
전9년의 역(1052~1061)은 조정에서 데와 및 무츠(묶어서 오슈로 부름) 지방관으로 보낸 미나모토 요리요시와, 요리요시에 반대하던 호족인 아베 및 키요하라와 벌인 전쟁
후3년의 역(1083~1087)은 요리요시의 아들인 요리이에를 거쳐 키요하라 가문에서 오슈를 맡은 후, 후계자 문제로 키요하라 가문에서 일어낸 내전이며 내전을 기회로 잡고 독립한 후지와라 키요히라에게 진수부장관 자리가 넘어가게 됨. 키요히라의 후손인 히데히라는 1178년 시점에서 오슈를 통치 중이며, 1187년에 장남인 야스히라에게 가문을 물려 주지만, 2년 후인 1189년에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공격을 받아 세력이 멸망하게 됨
후지와라 미치나가의 시 원문은 친척인 후지와라 사네스케가 쓴 수기인 소우기(小右記)에 수록됨
この世をば 我が世とぞ思ふ 이 누리가 내 누리라고 생각하니
望月の 欠けたることも 無しと思へば 보름달이 이지러지는 일이 없는 듯 하다고 생각하노라
There is no place where regal and spiritual power is as closely entwined as in Southeast Asia. For hundreds of years the Dharmic faiths have gained a stronger hold over its people, but only in the last century have those who were once Kings begun to assume the tile of Devaraja, God Kings.
Which of these God Kings will build a legacy of devotion, and who will be vanquished and forgotten?
동남아시아만큼 왕권과 영적인 힘이 밀접하게 얽혀 있는 곳은 없습니다. 수백 년 동안 다르마 신앙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한때 왕이었던 이들이 데바라자, 즉 신왕의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세기의 일입니다.
이 신왕들 중 누가 헌신의 유산을 쌓을 것이며, 누가 정복당하고 잊힐 것인가?
공개된 867년 북마크 인물
앙코르
삔브야(ပျဉ်ပြား Pyinbya): 미얀마 바간 왕조의 초대 국왕
파두마라자(ပဒုမ Padumaraja): 미얀마의 몬족계 왕조인 하리푼자야의 7대 국왕
로카팔라(Lokapala): 9세기 마타람 왕조의 국왕. 유로파 시간대의 마타람 왕조와는 나라 이름만 같음
인드라(Indra): 쿠타이 왕조의 당시 국왕
자야바르만 3세(ជ័យវរ្ម័នទី៣ Jayavarman III) 867년 당시 앙코르의 국왕
일지
중국편에서는 진관이 향시부터 시작해서 과거에 합격한 뒤, 지방관으로 일하면서 중앙 정치에도 참여하다가 1075년에 농민반란이 일어나는 와중에 첩이 바람을 피운 걸 알자 화병이 들어 실제 역사보다 일찍 급사하는 과정을 다룸(실제 역사에서는 1100년경에 사망)
일본편에서는 키요하라 타케노리로 진행, 오슈를 기반으로 연맹을 만들고 동쪽으로 진군하지만, 카와치 연맹에게 진격이 막힌 뒤 암으로 사망하는 과정까지 다룸(실제 역사에서는 후3년의 역 발발 이전에 사망)
앙코르편에서는 실크로드 무역로 방문, 대규모 사원 공사, 주변 영주와의 친목 도모를 통해 신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앙코르 왕국을 세울 동안 중국에선 당나라가 무너지고 군웅할거 시대가 열리며, 실제 역사보다 늦은 883년에 사망할 때까지의 플레이 기록이 포함
중국
당나라, 송나라 시기로 나뉨
일본
앙코르
앙코르 유적 부조를 참조한 걸로 보임
각 문화권 견본
첫댓글 양놈새끼들보면 일본 참 좋아라하네요
이번 확팩은 차이나머니가 주이긴 하죠
일본 중국 역사가 제일 관심많은건 당연한 거죠
이게 유럽 몽골 인도랑 같이 돌아가는데 성능문제 없이 돌아갈까..?
지금도 아프리카랑 인도 덕분에 렉이 미처날뛰는데 동아시아 나오고나선 감당이 될런지....
옷들이 매우 친숙하구만 그려
기쁨과 걱정이 동시에!
렉전혀 없던대..렉이 심하다는 분들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