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가을 문학기행 Ⅱ
거장의 향기
황광국
2013년 11월 2일
시간은 가고 우리들의 첫 번 째 행선 김환태 문학제와 최북그림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처음 맺는 인연이다. 거기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에술의 향기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하늘에도 땅에도 도는 기운 그 궤만 달리 할 뿐 순환하는 기운이야 변할 수 있으랴. 운명의 길, 거기 별빛이 인도하고 문인의 가슴을 물들인다. 반짝이는 별빛, 거장의 보편적 세계적인 언어로 엮어가는 향기에 정화된 사상 그 이념이 무주의 기운에 합류해서 흐르고 있다.
마침 제5회 눌인 김환태 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10시에 문학제가 열리고 있으니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막 식이 진행되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회자가 내빈을 무작위로 소개하고 있었다. 무주군내의 기관단체장 그리고 일부 외지인을 비롯한 문인들을 소개하고 있었으니 무주에 거주하는 시인 수필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다.
식이라야 어느 행사에서나 의례적으로 행하는 그런 절차를 따라 이어지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흔적에 관심이 쏠릴 밖에 없다. 천재는 일찍 불려간다던가.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 35세에 요절한 불우했던 순수비평문학 선구자의 자취를 잠시 더듬어 본다.
식이 끝나고 주최측 에서 제공하는 뷔페식사도 무난했다. 여기서 간 팀 함께 모여 무주의 머루포도주 곁들인 식사를 하는 것, 라일락도 피고 제비도 나르는 야외공연장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별미중의 별미일 수 있다.
오늘 일정이 촉박하므로 식사를 마치고 2층 전시실로 갔다. 김환태 문학관과 조선후기 이 고장 출신의 화가 최북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김환태문학관에 들렸다. 고인의 생애와 활동 상황 그리고 몇 점 안되는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나는 상징의 화원에 노는 한 마리 나비이고자 한다. 아폴로의 아이들이 가까스로 가꾸어 형형색색으로 곱게 피워놓은 꽃송이를 찾아 그 미에 흠뻑 취하면 족하다. 그러나 그때의 꿈이 한껏 아름다웠을 때에는 사라지기 쉬운 그 꿈을 말의 실마리로 얽어 놓으려는 안타까운 욕망을 가진다.’ 천재적인 비평가의 일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바로 옆 최북미술관에 들렸다. 달마도로 유명한 김명국, 군마도의 장승업과 함께 조선 3대 기인 화가로 꼽히는 화단의 거장, 붓 하나로 생애의 운명을 다한 최북의 작품세계를 처음 만나는 인연이 새롭다. 전시실 내에는 그가 그린 작품들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중앙에 걸려 있는 괴석도(怪石圖) 일점만이 진품이고 나머지 그림들은 모사품이다. 그래도 그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천재적인 화가의 면모와 함께 기이한 그의 일생, ‘최북 조선의 눈을 찌르다’라는 테마가 선명히 다가선다. 무주의 경관에 반짝이는 예술의 혼이 가을하늘에 가로지르는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다.
관람을 마치고 눌인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향해갔다. 산언덕에 완전히 시멘트와 돌로 조각된 단아한 무덤이 저 아래 무주의 익어가는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후손이 유해(遺骸)를 미국으로 이장하려 하였으나 무주군에서 관리책임을 지고 다시는 손을 댈 필요가 없도록 예술적 미를 살려 조성했다지만 그래도 숨을 쉴 수는 있어야 자연으로 맘 편히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제통문(羅濟通門)
무주구천동의 비경, 33경이 시작되는 제 일경 나제통문에 이르렀다. 1400여년 이전부터 불과 몇 미터 되지 않는 터널, 한쪽은 백제 땅에 바로 건너면 신라의 땅, 동과 서를 관통하는 교류의 역사가 묻힌 국경의 통문이다. 평시에는 삶을 구가하는 교역의 장이었을 터이나 전쟁에 휘말리면 피의 장이 되는 한이 서린 통로다. 그보다는 교류의 장이 더 컸을 터이다.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전투가 전개된 것은 백강(금강)을 거슬러 온 13만 당나라 대군과 탄현을 넘어온 신라의 5만 군사였으니 여기에서 전투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추정되지 않는 까닭이다. 백제 최후의 보루 계백장군의 오천 결사대는 황산벌(지금의 연산 뜰)에서 장렬히 전사하면서 백제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 왕국이 되었다. 전쟁에 패한 의자왕을 독단과 주색에 빠진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일찍이 해동증자라 일컫던 성군이다. 그 역사는 실록이 아닌 승자의 기록이어니 그에 대한 진위는 알 길이 없다.
이 거대한 화강암의 암반을 그 당시에 원시의 장비로 뚫었던 그 노고에 얼마나 많은 애환이 서렸을 터인가. 바로 앞에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설천교라 명명되어진 현대식 콘크리트교가 육중하지만 그 옛날에는 어떻게 건넜을까? 통문의 아치에 羅濟通門이라 한자로 새겨진 석문이 백제 쪽에도 신라 쪽에도 같은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다. 기념으로 사진도 찍으며 굴을 통과해보며 역사를 더듬어 본다.
불과 몇미터의 거리에 다른 역사가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터널이 아니면 상대편 쪽으로 간다는 것은 상당한 고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높은 산이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산이 문제일까. 이 시대의 새로운 통문을 위하여는 훨씬 더 높은 장벽, 마음의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식자들의 소명이자 관건이 아니겠는가.
통문(通門)인가
통문(痛門)이던가
동과 서 가로지르며
가버린 역사
가버린 사람
흘러가는 물결 따라 가신님의
1400년 고스란히 지켜본 통문의 가슴
선화도 가고 서동도 가고
계백도 가고 유신도 가고
사랑도 아픔도 다툼도 질곡도 묻혀져 갔다
무엇을 위하여 그리 했던가
의자왕도 춘추왕도 시대의 풍류
그 영화의 뒤안길
이물 흘러흘러 백마강 구비 돌아 큰 바다에 이르면
다툼도 미움도 없는 모두가 하나인 것을
지는 낙엽
내리는 빗소리
슬픈 꽃잎으로 날려간 삼천궁녀의 붉은 자락
천년을 회자하며 세인의 가슴을 적시우리
귀로의 여향(餘響)
돌아오는 차안, 하루가 마무리 되고 우리들의 기행도 마지막 장을 향하여 기운을 돋운다. 거기 술과 안주가 빠질 수 있으랴. 맛은 손끝에서 나온다던가. 제비님의 손맛이 깃들인 홍어회에 남원의 산수유 막걸리가 기막힌 조화로 흥을 돋우고 있다. 홍어의 감칠맛, 익혀도 좋고 삭혀도 좋은 맛. 세월의 향이 거기 서리고 있다. 아쉬운 귀향길에 각자의 개성으로 울리는 특성이 차안을 물들이고 있다.
오늘의 기행이 이 차안에서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아름다운 하루의 문학기행에서 심중에 저물어가고 있는 붉은 계절이 아름답다. 피는 꽃이야 아름다움의 상징이랄 수 있지만 붉게 져 가는 저 잎새 또한 그 못지아니한가. 꽃은 떨어져 감으로써 열매를 익히고 잎은 져 가야 나무가 살아갈 수 있다. 모두는 생명을 존재케 하는 질서의 향기이니 극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그것이 순환하는 우주의 질서이자 생의 근본 이어니 지는 것은 피는 것인가. 때로는 미친듯 무섭게 피어오르는 만산의 억새는 또한 어떠한가. 피어나고 저물어가는 과정이 있었으므로 생이 돌고 있다. 그 과정 속에 청천 무주는 불타고 있다. 문학기행의 가슴도 불타고 있다.
첫댓글 한 번의 문학기행에 두 번의 기행문을 쓰시는 기이한 재주를 가지셨습니다. 기인화가 최북이 놀라시겠어요?
우리에게는 다소 생경했던 눌인 김환태 문학관, 기인화가 최북에 대해 더욱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행문을 써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여느 기행문보다 물 흐르듯 부드럽고, 또한 이 세상을 정반합의 원리로 바라보는 인식이 너무나
아름다움을 줍니다. 미리네님의 가시는 길이 더욱 더 황홀한 단풍길이 되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무주의 적상산과 적상호수 ! 안개를 헤쳐 가며 산행을 감행했던 우산속 문학 기행 ! 단풍든 낙엽길을 밟고 삼삼오오 찍은 사진들...추억도 힘이 된다더니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다시 찾고 싶은 무주! 무주!
산수국님의 댓글처럼 ..맞아요 최칠칠님 놀라시겠어요 붉게 물든 단풍처럼 온가슴에 시와수필이 불타고 있으심이 얼마나 부럽고 멋지신지 모르겠습니다. 두루두루 훔뻑 취해 잘 노닐다 갑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