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최고 섭씨 31도.
배낭속에 얼린 물 2통, 얼린 이온음료, 보온병에 어름 가득, 헤즐럿향 커피, 빵, 초코릿, 토마토...
도봉산 냉골로 들었다.
겨울에 추워서 냉골인지, 한여름 시원해서 냉골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 나는 알지못한다.
들머리는 숲길 오르막이다.
냉골은 바람도 거의 없다.
서늘하지 않다. 그저 마냥 덥다.
더운 여름날 다른 산길과 별반 다르지않다.
냉골에서 신선대쪽으로 오르려면 암벽을 여러번 타야한다. 암벽을 기어서 오르려고 냉골 코스를 잡은듯하다. 대장은 암벽을 거침이 없이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발끝에 힘을 주어 바위에 찰싹 붙인다.
대장 발끝에는 끈끈이가 붙었나보다.
손은 바위에 작은 옹이나 틈만 있으면 척, 척 잡으며 오른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참 신기하다.
대장은 심장을 여러 개 달고다니나?
나는 오르기도 전에 암벽을 올려다 보다가 겁부터 덜컥나고, 심장이 바짝 쫄아온다.
분명 나도 심장이 있을텐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산행은 정말 좋은데, 암벽 기어오르는 것은 ...'
바위에 오르기 위해 대장 뒤를 따랐다.
힘이 잔뜩 들어가니 몸이 뻣뻣해진다.
오르는 자세도 엉거주춤해진다. 내 스스로도 느껴진다.
그러니 발과 손이 맘대로 되지않는다. 나도 잘하고 싶다. 내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대장 속마음은 미치고 환장하게 답답했을 것이다. 속으로 '이런 멍청이' 하면서...
'대장님, 겁을 먹고, 발걸음을 맘대로 뗄 수 없는 나도 미치고 환장할 심정이라오'
절벽을 오를 줄도 모르고, 겁만 잔뜩 먹은 상태로 엉거주춤 기어오르자니, 이마와 등줄기에 땀만 줄줄 흐른다. 더워서 흐르는 땀, 겁먹고 쫄아서 흐르는 땀이 뒤범벅이다. 또 있다. 가족들 얼굴도 떠오른다. 난 아직 할 일이 많다. 여기서 굴러떨어지면...
아흐, 생각만해도 몸과 맘이 '후들후들' 떨리는 순간이다.
보다 못한 대장이 먼저 올라가서 밧줄을 나무에 걸어 내려주었다. 밧줄을 두 손으로 잡으니, 굳은 몸이 금새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순간 떠오른 생각 '역시 인생은 줄이다.'
경찰서에서도, 법 앞에서도, 취직 자리에서도, 병원에서도, 맛집앞에서도, 버스나 전철을 타려고해도, 코로나 백신을 맞으려해도 이젠 줄을 서야하는 세상에 우리가 산다.
누구는 쇠줄을, 누구는 밧줄을, 누구는 썩어가는 줄을, 그외 많은 사람들은 그 썩은 줄도 없이 살아간다.
그 옛날 하늘에서 목욕하러 내려온 선녀 이야기가 있다. 두 아이와 함께 하늘로 날아간 선녀, 그리고 홀로 지상에 남겨진 나무꾼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두레박을 바라 본 나무꾼이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까? 이 줄은 사랑과 그리움을 이어주는 신의 줄이었으리라.
그런데 저쪽 여의도 의사당에 자리를 잡은 뺏지단 나리들은 매일 물고 뜯으며 싸운다. 서로 힘이 쎈 줄을 얻어, 그 줄로 힘좀 써보려고. 그 줄이 영원할까? 천만에 말씀,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줄을 잡은 나는 겁먹어 온몸에 들어있던 힘도 빠지고, 마음도 편안해지니, 암벽을 가볍게 오를 수 있다.
그때서야 푸른 숲도 보이고, 거대한 바위도 보이고, 숲속 상큼하고 시원한 바람도 느껴졌다. 역시 인생은 줄이다.
오늘 삶의 행복과 불행은 나무에 걸어 내려준 밧줄 하나에 있었다. 내일은 무엇으로 행복의 문을 열수 있을까? 다시 기다려 진다. 나도 오늘 줄을 잡았는데, 혹여 불법줄을 잡은 건 아니겠지.
"대장님 줄은 불법아니지요?"
하나씩 암벽을 오른 후 소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 걸터 앉아 앞이 훤하게 트인 먼산, 용의 허리처럼 길게 뻗은 포대능선, 손에 잡힐듯 눈앞에 우뚝한 신선대, 자운봉, 만경대, 선인봉을 바라보며 마시는 헤즐넛향 냉커피, 떡과 도마토를 입속에서 씹을 때, 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들이다. 땀 흘린 다음, 그 바람의 달콤함처럼.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북한산 능선과 암봉들이 지난 해 가을 올랐던 추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한반도 수도 서울이 내 발 아래에 흐릿하게 펼쳐져 있다. 반만년을 이어온 한강도 흐른다. 그 속에 천만 시민이 살아가고 있다. 좀더 좋은 줄을 잡기위해 발버둥 치면서.
이제 하산을 해야 한다.
밧줄은 필요 없고, 스틱을 폈다. 무릎에 부담을 덜고, 안전을 위해서. 아, 인생에도 위로 올라가려는 욕망 때문에 줄이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욕망을 내려 놓으면 줄이 필요 없지 않을까. 그 내려 놓은 빈마음에 즐거움이든, 기쁨이든, 행복이든 채울 수 있으리라.
도봉산 신선대를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마음속 욕망을 비운 덕분이 아닐런지.
또 산에 올라야 겠다.
다시 채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나를 다시 비우기 위해.
2021. 6. 16
첫댓글
새돌님
파이팅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