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조선일보 14면에 실린 사진기사입니다.
지난 4일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교 측이 신입생 등록금을 2.5% 올린 데 대한 항의로 필수과목인 채플(기독교 예배) 수업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날 집회 풍경을 조선일보가 사진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이 사진기사,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사진 아래에 있는 설명 없이 이 사진을 한번 천천히 보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이 풍선을 들고 소풍 나온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나요. 얼핏 보면 ‘등록금 인상 저지’ 집회가 아니라 마치 대학 축제의 한 장면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조선일보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 사진은 그런 이미지를 풍기고 있습니다.
이화여대 ‘풍선 집회’만 사진으로 처리한 조선일보
조선일보의 이 사진기사는 이외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지금 대학가는 이화여대 외에도 많은 대학들이 등록금 인하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려대 총학생회는 등록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학생처 건물을 점거해왔는데 지난 4일부터는 본관 총장실 점거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5일부터 본관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야외농성도 병행할 예정입니다.
인하대 총학생회도 지난달 30일부터 지금까지 본관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하대 총학생회는 학교 측의 3.9% 등록금 인상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이외에도 동국대와 숙명여대 그리고 서강대 총학생회 등도 학교 측의 등록금 인상 저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경향신문 4월4일자 1면 기사 제목처럼 대학생들이 <“못참겠다, 살인 등록금”>을 외치며 행동 강도를 점점 높여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 많은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 가운데 이화여대를 주목했습니다. 다른 대학들에 비해 이화여대의 상황이 심각했던 걸까요. 아닙니다. 심각한 걸로 따지면 고려대와 인하대가 이화여대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봐야죠. 하지만 조선일보는 다른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은 주목하지 않은 채 이화여대 ‘풍선 집회’만 사진으로 처리했습니다. 그것도 사진 설명을 주목해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그런 방식으로 말이죠. 이 사진만 보면 마치 대학생들이 ‘봄 기운도 느낄 겸 가볍고 재미있게’ 등록금 인하 투쟁에 나선 것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에 침묵하는 언론들
사실 경향과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을 제외하고 대다수 언론이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사진기사로마나 처리해주는 조선일보를 어느 정도 평가해줘야 하지 않냐며 반론을 제기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선일보처럼 보도를 할 바에는 그냥 보도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봤다면 절대 ‘조선일보식 편집’을 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5일자 경향신문을 한번 볼까요. 경향신문도 1면에서 조선일보와 비슷한 이화여대 집회 사진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경향은 3면에서 다른 대학들에 번지고 있는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을 관련 기사로 담아냈습니다. 대학 측의 무대응 때문에 학생들의 투쟁 강도가 더 강해지고 있고, 등록금은 계속 오르는 반면 교육여건은 후퇴하고 있는 대학 현실도 통계를 통해 보여줬습니다.
지금 대학가에 불고 있는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을 기사화 하려면 이 정도 입체적인 접근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등록금 문제는 개별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했던 ‘반값 등록금’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점검과 평가도 필수적이죠.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런 구체적인 분석을 필요로 하는 사안을 사진 하나로 ‘퉁 치고’ 넘어가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문제의 조선일보 사진기사는, 지금 대학가에 불고 있는 등록금 인하 저지 투쟁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왜곡의 이미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사화 할 바엔 차라리 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해 다른 언론들처럼 침묵을 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평소 조선일보가 이화여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 같아 이 사진은 제게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줍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사진(위)=2011년 조선일보 4월5일자 14면> <사진(중간)=2011년 한겨레 4월4일자 9면><사진(아래)=2011년 경향신문 4월5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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