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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약초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녹림거사(일송)
♣ 주지육림(酒池肉林) ♣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술로 연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호사스러운 술잔치를 이르는 말이지요 중국 은나라 주왕이 못을 파 술을 채우고 숲의 나뭇가지에 고기를 걸어 잔치를 즐겼던 일에서 유래되었는데 술로 만든 못과 고기로 이룬 숲이란 뜻에서 극히 호사스럽고 방탕한 술잔치를 비유하는 말이지요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 걸(桀)은 황음무도(荒淫無道)하고 탐욕스러웠으나 남다른 힘과 지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하나라를 망하게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말희(妺喜)라는 여자이지요 걸왕이 한창때, 유시(有施)씨의 소국(小國)을 공격하였는데 유시씨는 대항할 힘이 없어 많은 진상품을 바치고 항복했어요 그 진상품 가운데 말희라는 여인이 끼어 있었어요 걸왕은 말희에게 한눈에 반해 빠지고 말았지요 말희는 궁궐을 다시 짓게 하고, 주지육림을 만들어 질탕하게 놀면서 걸왕을 부패하게 만들었어요 말희는 한 가지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을 꾸미어 하 왕조의 국력을 기울게 만들었지요 걸왕의 이런 행태를 보다 못 한 현신 관룡봉(關龍逢)은 눈물을 흘리면서 간하다가 참수되고 말았으며 선관(膳官, 궁궐의 주방을 맡은 관리) 이윤(伊尹)은 충간을 듣지 않는 걸왕을 버리고 당시 상(商)나라의 수도였던 박(亳)으로 도망쳐 탕왕(湯王)을 섬겨 상나라 창업의 일등 공신이 되었어요 당시 탕왕은 덕을 갖춘 군왕으로 제후들의 협력을 얻어 국력을 확장해 가고 있었지요 걸왕의 횡포가 날로 자심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그를 떠난것을 안 탕왕은 드디어 걸왕 타도의 깃발을 높이 들었어요 걸왕은 명조(鳴條)의 싸움에서 대패하여 달아나다가 남소(南巢)에서 죽었지요 이로써 초대 왕 우(禹)로부터 제17대 왕 걸까지 약 500년에 걸쳐 존재하였던 중국 최초의 왕조였던 하 나라는 문을 닫고 말았으며 탕왕의 상나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어요 이 이야기는《사기(史記)〈하본기(夏本紀)》에 나오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상나라(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도 하 나라 마지막 왕 걸왕의 전철을 밟고 말았어요 주왕은 자질이 뛰어나고 식견이 높았으며 두뇌가 명석하여 남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는 총명할 뿐 아니라 용력도 뛰어나 맹수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뛰어난 체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자질을 덕을 쌓는데 쓰지 않고 자만에 빠져 신하들이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뛰어난 입담으로 자신의 비행을 합리화하거나 덮어 버리기 일쑤였지요 그는 천하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또한 주색과 향락에 대해서도 아주 호탕하여 달기(妲己)라는 여인에게 빠지고 말았지요 달기는 유소(有蘇)씨의 딸로서 일찍이 주왕이 유소씨를 토벌했을때 전리품으로 획득한 미녀였어요 주왕은 달기를 얻고 아주 기뻐했으며 달기의 아름답고 요염한 자태에 빠져 그녀의 환심을 살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했지요 주왕은 달기가 원하는 대로 궁중의 음악을 더욱 관능적이고 분방한 음악으로 바꾸었고 수도 조가(朝歌)에 녹대(鹿臺)라는 거대한 금고를 만들어 무거운 세금으로 그 금고를 채웠으며 거교(鉅橋)에 곡식 창고를 세워 곡식으로 가득 채웠지요 그리고 사구(沙丘)의 이궁(離宮)을 더욱 확장하여 그 안에 길짐승과 날짐승을 놓아 길렀어요 그는 신(神)에 대해서도 오만하고 불경하였지요 주왕은 또한 달기의 청을 받아들여 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 안주를 매단 숲을 만들었으며 이를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 부르며 수많은 남녀들이 알몸으로 밤새도록 환락을 즐겼지요 (益廣沙丘苑臺, 多取野獸飛鳥置其中. 慢於鬼神. 大聚樂歡於沙丘, 以酒爲池, 懸肉爲林 使男女裸相逐其間, 爲長夜之飮.) 불평을 하는 백성들에 대해서는 공포정치를 하였으며 불구덩이 위에 기름을 칠한 구리 다리를 놓고 그 위를 걷게 하는 포락(炮烙)의 형(刑)을 자행하였지요 당시 은 나라에는 천자의 정치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이 있었는데 서백 창(西伯昌), 후의 주문왕(周文王)), 구후(九侯), 악후(鄂侯)가 있었어요 삼공중 한사람인 구후(九侯)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주왕은 그 딸을 빼앗아 부인으로 삼았다가 죽여 버렸으며 구후도 죽임을 당하여 그 시체로 젓갈을 담갔지요 이를 본 악후(鄂侯)가 참지못하고 충언을 하자 이 역시 죽여 시체는 포(脯)로 만들었어요 서백 창(西伯昌) 또한 이를 보고 탄식하다가 유리(羑里)의 옥에 갇히고 말았으며 서백의 가신들이 주왕에게 미녀와 재물을 바치고 그를 석방시켰지요 풀려난 서백은 자신의 영토인 낙서(洛西)의 땅을 바치고 포락의 형을 면제받은 후 자기 땅으로 돌아갔지요 그 뒤에도 충신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주왕에게 간하였지만 대부분이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요 또 친아들 왕자 비간(比干)도 부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심장을 갈기갈기 찢겼으며 그 유명한 기자(箕子)도 옥에 갇히고 말았어요 주왕은 이 밖에도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가르고 뼈가 시려 강을 건너지 못하는 노인의 다리를 자르는 등 말도 할수 없을정도의 포악한 짓을 자행하였지요 주왕에게 고초를 당한 서백 창이 한을 품고 죽자 그의 아들 발(發)이 분연히 일어나 은나라를 멸망시켰지요 그가 바로 주(周)나라의 공식적인 초대 왕인 무왕(武王)이지요 무왕은 아버지 서백 창을 문왕으로 추증하고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을 사부로 삼아 민심을 끌어모으고 군대를 정비하여 포악한 주왕을 응징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갔어요 그리고 때가 되자 무왕은 주왕을 멸하기 위해 동쪽을 향해 진군을 계속하여 은나라의 교외인 목야(牧野, 하남(河南) 기현(淇縣) 서남에서 진을 쳤지요 주왕도 70만의 대병을 이끌고 목야로 나왔지요 하지만 주왕의 폭정에 시달렸던 은나라 대부분의 장졸들는 주나라 무왕에게 항복하거나 귀순하여 버렸지요 폭군 주왕이 이끄는 은나라 군대는 한번도 싸워보지 못하고 와해되자 주왕은 목야에서 도망쳐 수도 조가에 있는 녹대 위로 올라가 불을 지른 후 보석으로 장식한 옷을 입고 그 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지요 이로서 중국 최초의 왕조였던 하 나라는 말희라는 여인때문에 망(亡)하였고 하나라를 멸하고 새롭게 세워진 은 나라는 달기라는 여인 때문에 멸(滅)하였지요 이 이야기는 《사기〈은본기(殷本紀)》와 《사기〈주본기(周本紀)》에 나오는데 하 나라의 걸왕과 은 나라의 주왕이 각각 말희와 달기에 빠져 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 안주를 매단 나무로 숲을 만들어 즐겼다는 말에서 주지육림(酒池肉林)이 유래 되었다고 하지요 또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이 있어요 이는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뜻이지요 즉 나라를 위태롭게 할 만한 미인이며 임금이 미혹(迷惑)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만큼 매우 뛰어난 미녀를 말함이지요 아마도 하 나라의 "말희"와 은 나라의 "달기"와 같은 여인 이지요 해서 옛말에 여자를 항상 조심하라 했지요 여자의 마음속의 사랑은 손님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언제든 시간이 지나면 떠나기 때문이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거사:조동렬(일송) *- ▲ 말희 ▲ 달기 ▲ 주왕의 주지육림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