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기도
- 도종환
새해 첫 아침 햇살은
창문 열고 기지개를 켜는 아이의
밝은 얼굴 위에
제일 먼저 비치게 하소서
숲의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햇빛이 골고루 내려앉듯
이 땅의 모든 아이들 빛나는 눈동자 위에
맑게 출렁이는 가슴 위에
빠짐없이 내리게 하소서
골짜기 깊은 곳에도
손잡을 곳 하나 없는 바위 벼랑에도
늪가의 젖은 풀 위에도
아침 햇살이 환하게 번져 가듯
그늘 지고 가파르고 습한 곳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도 새날의 햇볕이
따뜻한 걸음으로 찾아가게 하소서
산과 개울과 숲 어디에나 내리는 햇빛이지만
산은 산대로
개울과 나무는 개울과 나무대로
저마다 저를 위해 햇빛이 와 있다고 믿듯
아이들도 늘 저를 위해 준비된
사랑이 따스하게 떠오르고 있다고
믿게 하소서
그 사랑과 따뜻함으로
아이들 몸에서 푸른 잎이 돋아나고
때가 되면 열매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게 하소서
그렇게 자란 튼튼한 뿌리로
무너지는 언덕을 지키고
그렇게 크는 싱그러운 힘으로
막힌 물줄기를 열어 가게 하소서
- 도 종환 -
새해의 맑은 햇살 하나가
해뜨는 곳으로 걸어갑니다.
새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갑니다.
누님같은 소나무가 빙그레 웃는
새해의 아침이 밝아옵니다.
맑은 연꽃대에 앉은 햇살 하나가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당신의 창을 두드리고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사랑하는 일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다시 길을 가게 합니다.
어두운 골목
무서운 쓰레기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
이제 더 이상 당신 혼자 떨지 않게 합니다.
쓸쓸히 세상을 산책하고 돌아와 신발을 벗고
이제 더 이상 당신 홀로 밥을 먹지 않게 합니다.
밝음의 어둠과
깨끗함의 더러움과
배부름의 배고픔과
편안함의 괴로움을 스스로 알게 합니다.
때로는 마음의 장독대 위에 함박눈으로 내려
당신을 낮춤으로써 더욱 낮아지게 하고
당신을 낮아지게 함으로써 더욱 고요하게 합니다.
당신이 아직 잠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나무와 숲을 구분하지 못하고
바람과 바람소리를 구분하지 못할지라도
새해의 맑은 햇살 하나가
천개의 차가운 강물에 물결지며 속삭입니다.
돈을 낙엽처럼 보라고
밥을 적게 먹고 잠을 적게 자라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살아 있다고...
- 정 호승 -
새해의 약속은 이렇게
또 한 해를 맞이하는 희망으로
새해의 약속은 이렇게 시작할 것입니다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감사하자"
안팎으로 힘든 일이 많아
웃기 힘든 날들이지만
내가 먼저 웃을 수 있도록
웃는 연습부터 해야겠어요
우울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한 이들에게도
환한 웃음꽃을 피울 수 있도록
아침부터 밝은 마음 지니도록 애쓰겠습니다
때떄로 성격과 견해 차이로
쉽게 친해지지 않는 이들에게
사소한 오래로 사이가 서먹해진 벗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하렵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노력의 열매가 사랑이니까요
상대가 나에게 해주기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다가서서 해주는
겸손한 용기가 사랑임을 믿으니까요
차 한 잔으로, 좋은 책으로, 대화로
내가 먼저 마음 문을 연다면
나를 피했던 이들조차 벗이 될 것입니다.
습관적인 불평의 말이 나오려 할 땐
의식적으로 고마운 일부터 챙겨보는
성실함을 잃지 않겠습니다
평범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이야말로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소중한 밑거름이니까요
감사는 나를 살게 하는 힘
감사를 많이 할수록
행복도 커진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그 동안 감사를 소홀히 했습니다
해 아래 사는 이의 기쁨으로
다시 새해를 맞으며 새롭게 다짐합니다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먼저 감사하자"
그리하면 나의 삶은
평범하지만 진주처럼 영롱한 한 편의 詩가 될 것입니다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