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lle Claudel, 샤쿤탈라(Sakuntala, 1888, 로뎅 미술관) 카미유의 대표작품으로 로댕과의 꿈 같은 시간을 보내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제작한 죽음과 함께 존재하는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시인이며 극작가였던 칼리다사 저작의 희곡 산스크리트극에서 내용 차용(두샨타왕은 사냥 나갔다가 산중에서 샤쿤탈라를 만나 결혼하고 기념으로 반지를 남기고 왕도로 돌아온다. 샤쿤탈라는 왕을 찾아 왕도에 오나, 도중에서 반지를 잃어버림으로써 왕의 기억이 사라지고, 그녀는 슬픔에 잠겨 천계로 떠난다. 반지를 되찾음으로써 왕의 기억은 되살아나 천계의 악마를 정벌한 왕은 그녀와 재회하게 된다는 내용)
“하늘이 그녀에게 준 재능은 모두 그녀의 불행을 위해 사용되었다.”
한 중년 남자가 악마의 모습을 한 나이 든 여인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 그 뒤로 젊은 여인이 무릎을 꿇고 남자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애원하듯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으려 하지만 남자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이미 나이 든 여인에게로 돌아서 버렸다. 단지 남자는 미련 한 자락이 남았는지 뒤에 있는 여인에게 뻗은 손을 거두지 못하고 있을 뿐.
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2층 회랑에서 만날 수 있는 ‘중년(The Age of Maturity, 1897)’이라는 제목이 붙은 조각작품으로 세계 명작 조각품 10선 안에 이름을 올린 예술품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젊은 날의 사랑과 열정도 변하고 집착도 사라진다는 인생 황혼기의 모습을 조각 속에 담아내고 있다.
세월의 무게가 드리워진 중년의 시점에 젊음이 내민 손길을 붙잡을 수 없어 늙음과 죽음에 끌려가는 인간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담아내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역을 인지하고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인생의 말년에도 결코 지워버릴 수 없었던 한 여류 예술가의 슬픔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 작품의 작가는 조각사에서 가장 뛰어난 초상 조각가로 평가받는 근대 조각의 시조로 우리에게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뎅(Auguste Rodin, 1840-1917)의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이다.
로댕의 뮤즈로서 그의 제자로서 15년 동안 로댕의 예술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평생 그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비운의 천재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그녀의 부모는 첫아들이 태어난 후 생후 2주 만에 죽게 되자 그녀에게 첫아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카미유’라는 양성적인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녀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신체적 결함이 있었지만 명석한 두뇌와 조각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지원으로 조각 공부를 시작한다.
카미유와 로댕이 처음 만난 것은 그녀의 나이 19세, 로댕의 나이 43세였다. 로댕의 친구였던 조각가 알프레드 부셰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로마로 떠나면서 자신이 지도하던 카미유를 로댕에게 맡긴 것이다.
빼어난 미모에 생명력 있는 역동적인 조각품을 제작하는 그녀에게 로댕은 단숨에 매료되었다. 로댕의 작업실에서 제자 겸 모델로 활동하게 된 그녀를 로댕은 모든 사교모임에 동반하고 다니면서 그녀의 재능을 극찬하고 알리기 시작한다.
이후 카미유는 로댕과 둘 사이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 작품 ‘사쿤탈라(Sakuntala, 1888, 고대인도의 이야기에서 가져온 제목으로 마법을 통해 사랑하는 남자와 재회한다는 내용)로 샹젤리제 살롱전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하고 로댕을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한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등의 제작에도 공동 참여한다.
두 사람은 동료 예술가이자 연인으로서 한편으로는 스승과 제자로서 예술을 향한 열정을 함께 하며 사회적 성공을 이어 나간다.
그러나 로댕 곁에는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20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키고 본인의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는 로즈 뵈레(Rose Beure)가 있었다. 로댕은 그녀를 떠날 수가 없었다.
카미유 클로델의 ‘중년’은 그러한 그들의 삼각관계를 담아낸 작품이다.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로즈 뵈레와 로댕, 그리고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카미유.
이 작품은 카미유가 프랑스 정부의 프로젝트 사업으로 의뢰받아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로댕의 방해로 작품 제작에 대한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작품 또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로댕은 이 작품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을 때 본인의 사생활에 대해 불리하게 작용할 파장을 생각하여 카미유가 작품을 통해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했다. 분노한 로댕은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막았으며 카미유와도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