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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22년 7월, 고타바야 라자팍사(Gotabaya Rajapaksa) 당시 스리랑카 대통령이 국외도피 후 대통령직에서 사임하면서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던 사태 이후 1년이 지났다. 1년 사이 스리랑카에서는 라닐 위크라마싱하(Ranil Wickremesinghe) 신임 대통령이 취임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스리랑카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더불어 외환보유고가 일부 회복되었고, 최근에는 스리랑카와 대외부채 문제 조율을 위한 주요 채권국의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1). 그러나 스리랑카의 경제 위기는 △만성적 무역적자 △관광업 편중 △높은 해외 노동자 외화 송금 의존도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단기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본고에서는 지난 1년간 스리랑카의 노력과 진전을 살펴보고, 남은 과제를 점검하면서 스리랑카 경제의 현주소를 평가하고자 한다.
스리랑카 경제위기 원인과 회복을 위한 1년간의 노력
2018년 43억 달러(한화 약 5조 8,160억 원)에 달하는 관광수입과 함께 947억 달러(한화 약 128조 879억 원)의 GDP를 기록했던 스리랑카 경제는 이후 역성장을 지속해 왔다(<표 1> 참조). 특히, 2019년 부활절 테러와 2020~ 2021년 코로나 19 펜데믹은 스리랑카의 중요한 외화공급원인 관광수입과 해외 노동자 송금액 급감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2019년 집권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정부의 △포퓰리즘에 기반한 감세 △국채발행을 통한 재정조달 △무리한 대외부채 도입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스리랑카 경제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때문에 IMF는 구제금융 제공 조건으로 △인플레이션 통제 △무분별한 감세 중단과 보조금 삭감을 통한 세수 확보 △외환보유고 회복 △부패척결 △채무 지속가능성 회복을 요구했다. 특히, IMF는 스리랑카가 무리한 차입을 통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부채가 증가했다며, 대외채무 재조정을 위해 중국, 인도, 일본 등의 주요 채권국으로부터 재정보증(Financing assurances)을 확보할 것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표 1> 스리랑카 주요 경제지표
자료: 스리랑카 중앙은행2) 및 CEIC Data
2022년 7월 출범한 위크라마싱하 정부는 IMF의 요구를 적극 수용했다. 스리랑카는 아시아지역에서 IMF 구제금융 지원액이 두 번째로 많은 국가(1위는 파키스탄)였기에 IMF는 스리랑카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2022년 5월 하드디폴트3)로 1948년 독립 이후 최초로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스리랑카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만성적인 적자상태에 빠져 있는 실론전력청(CEB, Ceylon Electricity Board)4) 의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2022년 8월 전기요금을 75% 인상했고, 각종 보조금 축소 조치를 선제적으로 시행하여 IMF로부터 2022년 9월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대한 실무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또한 2023년 2월에는 전기요금 66% 추가 인상 및 소득세 인상 등의 조치를 취했고, 결정적으로 중국, 인도 및 파리클럽 회원국(일본, 프랑스, 한국 등이 포함) 등 채권국들로부터 재정보증(Financing assurances)을 확보하면서 2023년 3월 IMF 이사회의 구제금융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하여 15% 수준까지 강도 높게 기준 금리를 인상한 결과, 2022년 9월 73%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은 2023년 8월 2.1%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울러, 스리랑카 정부의 다양한 정책 시행과 더불어 2023년부터 스리랑카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증가하면서 2023년 1~9월에만 스리랑카 방문 관광객이 100만 명을 돌파했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관광수입이 14억 5,000만 달러(한화 약 1조 9,594억 원)를 돌파했다5). 2022년 전체 방문 관광객과 관광수입이 각각 71만 명과 12억 5,000만 달러(한화 약 1조 6,891억 원)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큰 회복이었고, 이는 고스란히 경제회복과 세수증대로 연결되었다. 한편, 2022년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2022년 3월 7일 환율: 1달러당 200 스리랑카루피(LKR) 2022년 5월 12일 환율: 1달러당 385 스리랑카루피) 수출액이 일정 부분 증가했고, 이는 오랜 기간 침체되었던 스리랑카의 수출업계가 2022년 131억 달러(한화 약 17조 7,027 원), 2023년 1~8월 80억 달러(한화 약 10조 8,108억 원) 상당의 수출을 달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6).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2022년 7월 18억 달러(한화 약 2조 4,324억 원)에 불과했던 스리랑카의 외환보유고는 2023년 9월 35억 달러(한화 약 4조 7,297억 원)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그림 1> 스리랑카 경제위기의 원인, IMF의 진단 및 회복 노력의 결과
자료: 저자 작성
스리랑카의 단기적 과제 – 대외채무 조정 협상
한편, 이러한 스리랑카의 경제회복 추세에도 불구하고, 최근 IMF는 9월 스리랑카 구제금융 프로그램 1차 점검을 마무리하면서 구제금융 자금의 2차 분할집행(Second Tranche)을 위해서는 스리랑카가 대외 채권국 및 민간 채권단과의 채무 재조정을 적기에, IMF의 목표치에 부합하는 수준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즉, IMF의 입장에서는 스리랑카가 이제는 말뿐인 재정보증을 넘어서 중국 등의 채권국과 채무 조정협상을 완료해야 할 때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IMF에 따르면, 2022년 말 스리랑카의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128%, GDP 대비 대외부채 비율은 78%다. 이는 스리랑카가 오랜 기간 빚을 내어 빚을 갚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해 왔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IMF는 스리랑카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채무 지속가능성의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IMF는 2023년 3월 구제금융 승인 조건으로 2023년 말까지 스리랑카가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을 111%, 대외부채 비율을 74%로 감축하도록 하는 내용을 제시했는데7), 문제는 스리랑카가 이와 같은 채무 재조정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채권자들(국가 및 민간)과의 합의가 필요하며, 그 합의가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채무 조정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고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채권국들 간의 이해관계 차이이다. 스리랑카의 대외부채는 국채발행을 통한 금융시장에서의 채무와 개별 채권국들로부터 도입한 양자성 채무로 구분되는데, 양자성 채무의 가장 큰 비중(2022년 6월말 기준 52%)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전체 채권국과 스리랑카 간의 대타협보다는 중국-스리랑카 간 양자합의를 통한 해법을 주장해왔다. 한편, 중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채권국들은 일본, 인도, 프랑스가 주도하는 채권국 협의체(파리클럽)에 참여해 왔으며, 모든 채권국에 대한 동등한 조건의 채무 재조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양자 채권국들 간의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1년에 걸친 논의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의 대외 부채 조정 협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중국 정부와 스리랑카 정부가 채무 재조정에 합의했다는 보도(2023년 10월 11일, 각주 1 참조)가 나오고 있지만, 10월 말까지 구체적인 채무 재조정의 내용과 방식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특히, IMF가 중국과 스리랑카 간의 합의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공유 받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일각에선 10월 17~18일 중국 일대일로 포럼을 앞두고 ‘채무함정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내놓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채무 조정 협상 부진의 두 번째 이유는 스리랑카 국채에 투자했던 민간 채권단과의 협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부터 스리랑카 정부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국채(International Sovereign Bonds) 발행을 급격히 늘려 왔으며, 이는 스리랑카 경제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8). 스리랑카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채권단과 협상을 추진하고 있으나, 민간 채권단 구성의 복잡성과 채권단 간의 통합된 의견수렴의 난항 등으로 인해 관련 논의가 지체되어 왔다.
스리랑카에게 있어 다행인 부분은 IMF의 1차 점검이 끝난 후 양자 채권국들과의 채무 재조정 및 민간 채권단과의 채무 재조정에서 타협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산케이紙의 2023년 10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일본, 인도, 프랑스 등 스리랑카의 주요 채권국들이 중국을 제외하고서라도 자체적인 채무 경감 합의를 10월내로 완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로이터(Reuters)紙는 같은 달 12일에 10월 초 민간 채권단이 120억 달러(한화 약 16조 2,162억 원) 상당의 채권 조정 방안에 대한 제안서를 스리랑카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9). IMF가 구제금융 자금의 2차 분할집행을 위해 요구해온 조건들이 해당 문제들이었던 만큼, 스리랑카로서는 관련 합의가 이루어지는 대로 다시 한 번 IMF로부터 구제금융 자금을 수령하며, 정부의 관련 노력도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스리랑카 경제 전망과 중장기적 과제
스리랑카의 경제는 최소 향후 1년 동안은 現정부 하에서 지속적인 회복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現정부의 주요인사들이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이행하고 경제개혁을 수행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으며, 국민들도 2022년 경제위기-사회혼란-정권종식의 과정 속에서 발생한 혼돈의 상황이 재발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2024년 하반기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점은 중요한 변수다. 現정부가 경제회복 우선론을 내세우며 2023년 예정되어 있던 지방선거를 취소하고 치안회복을 명분으로 집회·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 경제회복이 더디어지는 순간 정권의 정당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또한, 스리랑카의 경제위기가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발생했던 만큼 관광업 회복과 해외노동자들의 송금으로 발생하는 일시적인 회복을 넘어 중장기적인 경제성장의 동력을 회복해야 한다. 특히, 반복되는 IMF 구제금융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스리랑카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무역적자 및 경상수지 적자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아울러 부패척결, 공공지출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등과 같은 거버넌스의 문제는 여전히 스리랑카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으며, 이와 같은 중장기적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내수산업 다각화 및 수출상품 다양화를 위한 노력과 함께 공기업 개혁 등 결코 쉽지 않은 과제들을 스리랑카 지도층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야 될 것으로 평가된다.
* 각주
1) Reuters, “Sri Lanka's creditors likely to reach debt reduction deal in Oct – Sankei”, 23.10.2.(자료접근일 23.10.11.), https://www.reuters.com/article/sri-lanka-debt-idINL2N3B80LV 및 Daily FT, “China says Export-Import Bank tentatively agrees with Sri Lanka on debt treatment”, 23.10.11.(자료접근일 23.10.11.), https://www.ft.lk/front-page/China-says-Export-Import-Bank-tentatively-agrees-with-Sri-Lanka-on-debt-treatment/44-753909
2) 명목 GDP부터 수출까지의 자료는 Central Bank of Sri Lanka (CBSL), “Key Economic Indicator”, 해외송금 자료는 CBSL, “Workers’ Remittances”, 관광수입 자료는 CEIC Data “Sri Lanka Tourism Revenue”에서 각각 발췌함. 각 자료의 링크는 아래와 같음.(자료접근일 23.10.11.) https://www.cbsl.gov.lk/sites/default/files/cbslweb_documents/publications/annual_report/2022/en/3_KEI.pdf, https://www.cbsl.gov.lk/en/workers-remittances/statistics,https://www.ceicdata.com/en/indicator/sri-lanka/tourismrevenue.
3) 민간 채권단의 전면적인 손실을 의미함
4) 실론전력청(CEB, Ceylon Electricity Board)은 실론석유공사(CPC) 및 스리랑카항공(SLA)과 함께 매년 스리랑카에 막대한 손실을 낳는 스리랑카 3대 국영기업 중 하나다.
5) CBSL, “Weekly Economic Indicators – 13 October 2023”, 23.10.13.(자료접근일 23.10.16.), https://www.cbsl.gov.lk/sites/default/files/cbslweb_documents/statistics/wei/WEI_20231013_e.pdf
6) Ibid
7) IMF, “IMF Executive Board Approves US$3 Billion Under the New Extended Fund Facility (EFF) Arrangement for Sri Lanka”, 23.3.20.(자료접근일 23.10.16), https://www.imf.org/en/News/Articles/2023/03/20/pr2379-imf-executive-board-approves-under-the-new-eff-arrangement-for-sri-lanka.
8) Al Jazeera, “Infographic: Sri Lanka’s economic crisis and political turmoil”, 22.4.7. (자료접근일 23.10.16.), https://www.aljazeera.com/news/2022/4/7/infographic-sri-lankas-economic-crisis-and-political-turmoil.
9) Reuters, “Sri Lanka bondholders sent $12 billion debt rework proposal to government, sources say”, 23.10.12.(자료접근일 23.10.16.),https://www.reuters.com/world/asia-pacific/sri-lanka-bondholders-sent-12-bln-debt-rework-proposal-government-sources-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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