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와 함께 초록 지붕의 집으로 가는 길, 앤은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지나게 된다. 마치 꿈을 꾸는 표정으로 그 길을 지나 온 앤은 매튜에게 길의 이름을 묻고, 사과나무 길이라는 정직한 대답에 발끈한다. 아름다운 것에는 그에 딱 들어맞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앤은 그 길에 ‘기쁨의 하얀 길’이라는 자신만의 이름을 붙인다.
벚꽃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 같은 것이지만 <빨강머리 앤>에서 벚꽃은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앤의 마음을 위로하는 존재가 되어준다. 기차역에서 자신을 데리러 올 매튜를 기다리는 앤은 눈앞의 벚꽃나무를 보며 공상에 빠진다. “만약 오늘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면 저 큰 벚나무 위에 올라가서 나무 위에서 밤을 새울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름다운 달빛을 받으며 하얀 꽃이 활짝 피어있는 벚나무 위에서 잠을 잔다는 건 아주 멋지잖아요. 마치 대리석의 널찍한 방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이 긍정적이고 상상력 풍부한 고아 소녀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이렇게 달랜다. 그리고 앤은 초록 지붕의 집에서 첫 밤을 보낸 다음날 자신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위로해 준 창밖의 큰 벚꽃나무에게 ‘눈의 여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딸기 주스 사건은 세상에 둘도 없는, 그래서 영원한 우정의 맹세를 한 앤과 다이아나가 눈물의 헤어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선회 모임에 가게 된 마릴라의 제안으로 다이아나를 집으로 불러 차를 마시기로 한 앤은 그녀에게 딸기주스를 준다는 게 그만 포도주를 주고 만다. 결국 다이아나는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고 이 사건으로 앤은 다이아나의 어머니로부터 다시는 다이아나를 만나지 말라는 절교 선언을 당한다. 이 일은 앤을 또 한 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지만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앤이 후두염에 걸린 다이아나의 동생, 미니메이를 돌봐준 일을 계기로 다이아나 어머니의 용서를 받고 다이아나와의 우정을 회복하게 된다.
마을에 새로 오신 앨런 목사 부부를 집으로 초대한 앤과 마릴라는 공들인 음식을 준비한다. 메뉴는 앤의 입을 빌리자면 ‘암탉의 살코기를 딱딱하게 굳힌 것, 소의 혀를 차게 한 것, 빨간 것과 노란 것 두 종류의 젤리, 크림을 바른 레몬 파이, 버찌 파이, 세 종류의 과자, 과일 케이크, 플럼의 사탕 조림, 파운드케이크, 작은 빵, 레어 케이크’다. 게다가 동경하는 앨런 부인을 위해 직접 레어 케이크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앤은 전날 커다란 레어 케이크 모자를 쓴 귀신에게 밤새도록 쫓기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당일 아침 지독한 코감기에 걸려 냄새를 맡을 수 없었던 앤은 케이크에 바닐라 대신 진통제를 넣는 실수를 하게 된다.
<빨강머리 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마차를 탄 앤의 모습이다. 앤이 처음으로 초록 지붕의 집으로 오던 날, 매튜는 마차를 타고 앤을 마중 나간다. 그 때 앤은 “전 마차를 타는 게 좋거든요”라며 들뜬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앤이 초록 지붕의 집에 온 지 1년이 되는 기념일에 매튜 아저씨와 앤은 마차를 타고 브라이트 강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퀸 학원의 입학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학원으로 떠나는 길에도 앤은 매튜와 함께 마차를 탄다. 마차 위에서 어깨를 구부리고 앉은 매튜의 곁에 앉아 종알종알 수다를 떠는 앤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평소 홍당무 같은 자신의 빨강머리가 늘 불만이었던 앤은 집으로 찾아 온 행상인의 “이걸 손에 묻혀 머리에 바르면 네 머리는 칠흑같이 까맣고 윤기 나는 머리가 되는 게야”라는 꼬임에 넘어가 전 재산 50센트를 들여 머리 염색약을 사게 된다. 그러나 앤의 머리는 칠흑같이 검은 머리는커녕 끔찍한 초록색 머리가 되어버렸다. 결국 아무리 감아도 색이 빠지지 않는 이 머리카락을 마릴라 아줌마는 가차 없이 잘라버렸고, 결국 앤은 남자 아이 같은 커트 머리가 된다. 하지만 제작진은 앤의 트레이드마크인 양 갈래머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인지 30회에서 짧은 머리였던 앤은 31회에선 다시 예의 그 긴 갈래머리를 하고 있다.
앤은 당돌할 정도로 자기주장이 분명한 어린애였다. 자신을 거둬준 마릴라와 매튜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는 성격이었다. 특히 ‘소매가 불룩한 최신 유행의 원피스’에 대한 앤의 욕망은 <빨강머리 앤>의 중요한 이야깃거리 중의 하나였다. 깔끔하고 실용적인 옷이 앤을 겸손하고 얌전한 아이로 자라게 할 것이라고 믿는 마릴라와 달리 앤은 “소매가 불룩한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가슴이 울렁거릴 것 같아요”라며 마릴라가 만들어 준 옷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소하고 실용적인 성격의 마릴라 아주머니는 결코 이 ‘소매가 불룩한 원피스’를 만들어 주지 않으셨다. 결국 이런 앤을 불쌍히 여긴 매튜 아저씨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앤에게 이 ‘소매가 불룩한 원피스’를 마련해주었고 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공상하길 좋아하는 앤은 종종 방 창가에서 양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마릴라가 원한 건 자신이 아닌 남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과 눈물의 밤을 보낸 다음날, 앤은 이 특유의 포즈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서 녹음이 우거진 평화로운 숲을 상상하며 다친 마음을 달랬다.
어느 날 강가에서 앤과 친구들은 사랑의 슬픔으로 죽게 되는 ‘백합공주 이야기’로 연극 놀이를 한다. 백합공주 역을 맡은 앤은 작은 배 위에 죽은 채를 하며 누워 강물 위로 떠내려보내진다. 그러나 갑자기 배에 물이 새면서 앤은 곤경에 처하고 결국 다리 기둥에 매달려서 도와줄 사람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얄궂게도 앤을 구해준 이는 그녀의 빨강머리를 홍당무라고 놀려 앙숙이 된 길버트였다. 길버트는 “우리 친구가 될 수 없을까. 지금 앤의 머리는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해.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하지만 길버트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어린아이 앤은 사과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역시 아직은 어린애였던 길버트는 두 번 사과하지 않고 돌아서 가버린다.
앤은 초록 지붕의 집 근처에 살고 있던 동갑내기 다이아나와 단짝 친구가 된다. 아마도 고아원에서 자라며 또래 친구와 사귈 기회가 없었던 앤은 책을 좋아하는 얌전한 소녀 다이아나에게 첫 만남부터 호감을 느낀다. 둘은 다이아나의 꽃밭에서 ‘해와 달이 있는 한 마음의 친구인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엄숙하게 맹세’한다. 촛불을 이용한 자신들만의 신호로 우정을 나누기도 한 둘은 앤이 퀸 학원에 진학하게 되면서 한동안 헤어지게 된다. 이때도 두 사람은 ‘비록 두 사람이 뿔뿔이 헤어진다 해도 내 마음의 벗에게 충실할 것’을 또 한 번 ‘해와 달에게 엄숙하게 맹세’한다.
마릴라가 “제발 그 입 좀 다물어라. 어린아이치고 넌 너무 말이 많아”라고 할 정도로 유난히 수다스러운 앤은 특히 화려한 수식과 연극적 어조의 문어체 말투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뱀이나 두꺼비가 우글거리는 구질구질한 토굴 속에 밀어 넣고 빵 하고 물만 줘도 괜찮아요” “세상의 그 무엇도 제가 갖고 태어난 무한한 상상력과 꿈과 같은 이상 세계를 빼앗아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바로 ‘절망의 구렁텅이’다. 왜 밥을 먹지 않느냐는 마릴라의 말에 앤은 “저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걸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 아주머닌 먹을 수 있겠어요?”라며 화를 내곤 했다. 절망의 구렁텅이라니... 열한 살 어린아이가 쓰기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인생이 연극인 앤에겐 곧잘 어울리는 말이기도 했다. 참고로 원서에는 “I'm in the depth of dispair”라고 표현되어 있다.
<빨강머리 앤>의 원작은 캐나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Anne of Green Gables>이다. 원제인 <그린 게이블즈의 앤>은 말 그대로 ‘초록 지붕 집의 앤’이라는 의미다. 정확히 ‘gable’은 ‘박공지붕’이라는 뜻으로 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으로 책을 펴서 엎어 놓은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매튜와 마릴라 남매가 살고 있던 이 따뜻한 초록색 지붕의 집에서 앤은 새로운 가족을 만나 보살핌을 받으며 시도 때도 없이 ‘지껄이는’ 주근깨 공상 소녀에서 아름답고 성숙한 여성으로 성장하게 된다.
첫댓글 기사 검색하다 본 빨간머리앤...초록색지붕도 마차도 벚꽃도 너무너무 기억에 남네요.. 봄에 어울리는 ㅎㅎㅎ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는 만화인거같아요.. 아침부터 기분이좋네요 ^__^ 반가워 앤~ ^__^ 이히
아..젤루 다시보고 싶은 만환데.. 어케 방법이 읎나? 다시봐도 예전 그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생각나요 받아쓰기하는데 앤은 많이틀리고 남자주인공은 다맞았나 그러구 ㅎ
ㅋㅋ 난 제대로본 기억이 없다능 ㅡㅡ;; 시골이라 그런것인가..
나중에 길버트와 러브모드 되지 않나? 아놔~ 벗꽃 흩날리는 교정에서 빨간머리 앤 읽으며 캔디의 테리우스가 멋질까 길버트가 멋질까를 생각해 봤었다는;;;; 아놔~ 나름 문학소녀 였는데~ -ㅅ-v
ㅎㅎㅎㅎㅎ 원래 길버트랑 맨날싸웠지? 흐
예전에 봤던기억이... 나도 다시한번 보고 싶넹~~ ^^
중학교때 음.. 가끔 앤닮았단 소리도 들었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성인이 되어선 향식이??
이거 다시 각인 시켜줄필요까진 .......
빨강머리 앤... 너무 좋아라하는 만화였음... ㅇ ㅏ... 너무 좋다...~~~~~~
응 근데항상 답답하기도 맨날 설겆이하고 할머니는 모닥불옆에서 뜨게질만하구 ㅋ
앤의 검정머리 염색 생각나... 초록색이 되어버렸지만...
참 재미있게 봤는데..ㅎㅎ 미래소년 코난두 보고잡네~
코난친구 포비가 더 보고잡다...
제가 보고싶으신가요??? ㅋㅋ
넌 향식이잔아~! 미래소녀 향식이~~!!!!!
주근깨도 이뻐 보였던... 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 이거 소설책으로 끝까지 다 읽었어요. 나중에 길버트랑 결혼해서 애가 7명? 인가 그럴껄요 ㅎㅎㅎ 길버트같은 남자 어디 없으까. ㅋㅋㅋㅋ
애 7명 낳게요??
글씨가 넘 넘 마나~ ㅋㅋㅋ
글많은것도 읽어야 세상을 살아가지..
나둥 이거 전집으로 샀었는데,,,,몇번을 읽어도,,,넘 잼있었다는,,,, ^0^
앙~
앤은 엄마가 없는건가?
앤은 없어. 친구는 몰겠다
빨간머리 앤~ 왠지 친근해 ㅋㅋㅋ
왠지 우리주위에 있을거같지않아? 삐삐랑? 같이?
하얀 사과나무꽃이 눈처럼 쏟아지던 장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이뻐요~
움,,고딩때 주근깨때문에 빨간머리 안이라고 불렸지,,,ㅋㅋㅋ
죽은깨 안이 아닌건 왜죠? ㅡㅡ; 이룔날 뵈여,, =3=3=3
앤의 2층 다락방이 참 부러웠더랬지.. '-')a
나두,,, 창문 맨날 힘들땐 창문열고 눈감고 상상 ~
난 앤이 너무 좋아서 가슴이 두근두근!!~
고등학교때에서야 비로소 책으로 읽은 소설~ ^-^ 막 장면들이 책장 위에 펼져진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