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아테제 호숫가의 리츨베르크〉, 캔버스에 유화 / 110×110cm
“호수에서 수영을 해. 아주 조심스럽게. 수영을 하고 나면 다시 그림을 조금 그려.
해가 날 때는 호수 그림을, 날씨가 흐리면 방 창문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을 그려.
점심때가 되면 밥을 먹고 눈을 조금 붙이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간식 전후에 다시 한 번 호수에 몸을 담가.
가끔 다른 걸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수영을 하지.”
-구스타프 클림트
〈아테제 호숫가의 리츨베르크〉는 〈카소네의 교회〉처럼 오스트리아 빈의 컬렉터이던 빅토어 쥐커캔들과 파울라 쥐커캔들 부부의 소장품이었다. 이들은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 부부처럼 빈의 유명한 상류층 멤버였다. 쥐커캔들 부부에게 자식이 없어 1927년 빅토어 사망 후 이 그림은 〈카소네의 교회〉와 함께 그의 여동생 아말리에 레틀리히에게 상속됐다. 그런데 아말리에 레틀리히는 1941년 딸과 함께 폴란드의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 죽고 말았다. 주인이 사라진 이 그림은 자연스럽게 오스트리아 정부 소유가 되었고, 1944년부터 잘츠부르크의 현대 미술관에 전시돼 왔다. 하지만 아말리에 레틀리히의 후손들은 어머니를 학살하고 그림까지 빼앗은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그림 소유권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여 2011년 봄에 이 그림을 되찾았다. 그들은 그림을 되찾자마자 경매에 내놓아 같은 해 11월 4040만 달러(423억 9000만 원)에 팔았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풍경화 중에서 〈카소네의 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싼 가격이다.
〈카소네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 얽힌 극적인 사연이 가격을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그림 값의 일부가 잘츠부르크의 현대 미술관에 기증되어 이 그림의 주인이자 유대인 학살의 희생자인 아말리에 레틀리히의 이름을 딴 전시장을 짓는 데 쓰일 것이라고 처음부터 홍보가 됐다. 이런 사연 덕분에 프리미엄이 붙었다.
클림트는 초상화와 풍경화를 정말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은 초상화 아니면 풍경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화가들마다 즐겨 그리는 풍경이 있는데 20세기 초반 유럽 화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네는 지베르니의 정원을, 세잔은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고 또 그렸다. 클림트는 바로 이 그림의 풍경, 빈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유명한 호수인 아테제 주변을 많이 그렸다. 이곳은 클림트가 여름휴가를 즐기던 곳인데, 사실 그가 풍경화에 빠지기 시작한 것도 아테제 호수로 여름휴가를 가면서부터라고 한다. 클림트는 아테제 호수의 작은 섬인 리츨베르크라는 곳에 사는 어느 가족과 가까워 주로 그곳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리고 휴가 중에 이 호숫가 주변 경치를 쉬지 않고 그렸다.
그는 이 지역 풍경을 아주 좋아한 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인 1914년 여름 클림트가 리츨베르크에서 자신의 조카에게 보낸 그림엽서가 아직 남아 있는데, 그림엽서에 담긴 풍경 사진이 이 그림과 색깔이나 구도가 거의 똑같다. 이 그림엽서를 보면서 그렸거나 이 그림엽서와 똑같은 각도에서 마을을 보고 그린 것 같다. 한마디로 초록이 가득한 예쁘고 싱그러운 마을이다.
클림트는 당시 유럽의 아방가르드 화가들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의 그림마다 하나씩 그런 영향이 드러난다. 이 그림에서는 클림트가 당시 프랑스 후기 인상파인 점묘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우거진 숲이 거의 점으로 표현돼 있다.
클림트 그림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정사각형 캔버스’이다. 1900년 이후 정사각형 캔버스는 클림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특히 풍경화는 꼭 정사각형으로 그렸다. 세상을 조화롭고 평화롭게 그릴 수 있는 방법이 정사각형 캔버스에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그림에는 클림트 풍경화의 주요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첫댓글 구스타프 클림트!
정사각형 캔버스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