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청년 조훈현의 빛나는 전성기는 주지하다시피 70년대 말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75년부터 80% 대의 승률을 기록하며 다관왕(多冠王)의 면모를 과시하는데, 이 때부터 ‘제비’라는 별명과 함께 ‘조관왕’이라는 이름도 통용되곤 했었다.
이후 전관왕, 바둑황제, 전신, 최근에는 화염방사기라는 별명까지 획득함으로써 바둑 타이틀 못지않게 별명까지도 다양하게 보유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숨 가쁜 일대기의 장을 덮고 쉬어 가는 의미로 최근에 있었던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신문지상을 통해 알려졌듯이 얼마 전인 1월 하순에 조 국수는 아주 독특한 손님들과 조우했었다.
그들은 일본 만화계를 주름잡은 ‘고스트 바둑왕’의 원작자 오타 유미씨와 출판을 담당한 집영사(集英社) 편집장 다카하시씨였다. ‘고스트 바둑왕’은 일본에서 16부까지 출판돼 무려 1,200만 부나 팔린 초 베스트셀러-
앞으로 얼마나 이야기가 더 진전될지 모르지만 작가는 바둑의 진수를 표현하기 위해 세계최강의 한국을 찾아 온 것이었다.
물론 목적은 소재확보 및 만화배경의 리얼리티 구축 작업이었다. 그들은 한국 바둑인들을 만나기 위해 국내협력사인 서울문화사에 협조요청을 해왔고, 서울문화사의 김문환 편집장은 대학동창인 필자에게 SOS를 타전함으로써 어렵사리 취재일정을 잡게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일정은-
조훈현 국수 면담 및 자택 취재 강철수 화백과의 대화 한국기원 및 바둑 TV 스튜디오 탐방 유명 바둑도장(권갑룡 도장)
한국기원 원생들 수업과정 취재 한국의 일반기원 스케치 소소회 연구실 탐방 신예기사 자택 탐방(박영훈 천원) LG배 참관
등이었는데,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모든 스케줄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돌아갈 수 있었다.
거기에는 우리 바둑인들의 후한 인심도 일조를 했지만, 무엇보다도 ‘고스트 바둑왕’이 한국에서도 꽤나 알려진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오타 유미씨는 한국에 올 때 이처럼 많은 것을 체험하고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고 고백했다.
필자가 그들과 나흘 동안 동행하면서 인상 깊었던 몇 장면을 간략하게 기록하자면-
#1. 조 국수의 평창동 집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기념촬영을 하는데 기왕이면 대국장면을 찍자고 제의해 바둑황제와 마주앉은 다카하시 편집장이 대뜸 백돌을 한 움큼 집어 들고 돌을 가리자고 한다. 기겁하는 주변 사람들.
다행히 조 국수가 익살맞게 대응해주어 분위기가 살아남. 알고 보니 다카하시는 바둑문외한이란다.)
#2. 한식당 석파랑
(자하문에 위치한 석파랑 식당의 별채는 대원군의 여름 별장으로 유서 깊 은 곳. 그 곳에서 일본 손님들과 마주한 조 국수, 강철수 화백은 바둑과 만화에 관해 유창한 일본어로 해박한 지식을 쏟아 붓는다.
국수는 만화에 일가견이 있고, 화백은 또 바둑이 전문가 수준이었으니 환상의 콤비네이션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타 유미는 만화스토리를 오래 쓴 작가도 아닌 데 ‘고스트 바둑왕’ 단 한 편으로 ,200만 부를 히트시켜 떼돈을 벌었다는 소리에 강철수 화백이 탄식한다.)
강철수 : 제기랄! 역시 일본의 만화시장은 알아줘야 해.나는 평생 동안 2000권 이상 만화를 펴냈지만 요 모양 요 꼴로 사는데......
(그러자 국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조훈현 : 누가 뭐래. 나는 평생 동안 2000국 이상 바둑을 두었지만 요 모양 요 꼴 아닌감!
(듣고있던 필자가 기막혀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다.)
필 자 : 그 놈의 요 모양 요 꼴 좀 빌려줘 보세요. 우리도 그렇게 좀 살아보게 말입니다!
#3. 제주도 중문 롯데호텔 특별대국실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제1국이 벌어지고 있는 대국실 옆 해설장. 넓디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은 고작 열 손가락 안팎이다. 조선일보 관계자 및 한국기원 관계자, 그리고 기사 몇 명.
오타 유미씨,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유 미 : 이거 세계대회 맞나요?
필 자 : 그러믄요. 엄청 큰 대회구요. 두 기사 중에 우승자는 그랜드슬램 을 이루는 중요한 시합이죠.
유 미 : 그런데 분위기가 좀 썰렁하군요?
필 자 : 아아~ 이런 일들이 하도 빈번해서 이젠 별 이슈가 되지 않은 겁니다.
유 미 : 그렇군요. 하긴 최근에 한국기사 분들이 워낙 우승을 휩쓰니까 감동은 덜 하겠네요.
필 자 : 맞습니다.
(얼렁뚱땅 둘러 붙였지만 무척 비중이 큰 세계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매스컴과 바둑팬들의 관심이 다소 빈약했다는 점에서 주최 측의 이벤트 홍보 전략에 좀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4. 제주 공항
(일본으로 떠나가는 오타유미와 다카하시에게 한국바둑계를 돌아본 소감을 물었더니 즉각 튀어나온 대답들-)
유 미 : 한국바둑계는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아요. 프로들의 정신도 파워풀하고, 소년들의 실력과 의욕도 상상을 불허하며, 무엇보다도 일반기원에서 만나본 시민들의 바둑에 대한 열정이 너무 부러워요. 앞으로도 일본이 한국을 따라잡기는 요원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카하시: 바둑사이트 타이젬의 인상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예상할 순 없지만 느낌상 한국에서는 바둑이 스포츠와 인터넷 게임으로까지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습니다.
앞으로 ‘고스트 바둑왕’의 무대는 한국이 됩니다. 우리가 만난 조 국수님, 박영훈 천원, 김성룡 사범 등을 비롯한 소소회 멤버들과 한국기원 원생들 모두 만화에 등장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에서 한국바둑을 주시하고 본받으려는 바람이 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소감을 피력하고 그들은 제주공항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바둑만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오타 유미 일행은 한국에 건너와 실로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갔을 것이다.
우리는 바둑소재 만화로 대히트를 날린 그들을 부러워했지만 그들은 또 우리의 기름진 바둑토양을 무척이나 부러워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