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해설
안톤체홉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러시아의
극작가이며
현대연극에 거대한 업적을 남겼다.
"갈매기"는 그의 처음 작품이고 사실주의 극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 포함된 인간의 슬픔, 사랑, 고통, 희망, 죽음을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코스차와 보리스의 갈등이나 코스차의 자살 등이 그에 해당하며
또한 우리네들이 그렇듯 인간의 심리적인 갈등을
이리나와 니나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작품은 끊임없이 방황하는 이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우리들에게 그 판단을 맡기고 있다.
그의 작품은 불명확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혼돈은 계속되고 있다.
벗기면 벗길수록 더욱 모호해져 가는 작품이 바로 체홉의 작품이다.
갈매기...
뜨레쁠레프는
배우였던 어머니 아르까지나의,
엄마로서의 애정에 늘 목말라하며 성장했다.
그는 엄마를 연극에 빼앗겼던 성장기에 대한 복수처럼,
또 한편으로는 엄마의 연인이자 이미 성공한 소설가인 뜨리고린에 대한 저항처럼,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꿈꾸며 희곡을 쓰고,
그 희곡을 집 뒷마당에 무대를 세워 실연해 보인다.
배우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 니나.
그러나 연기를 맡은 니나는 물론 아르까지나조차
그의 연극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그의 재능과 열정, 새로운 극실험에 박수를 보내는
v 도른 같은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인생 첫 번째 무대는 그렇게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니나의 마음조차
뜨리고린에게 빼앗기면서 그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3막에서
4막 사이, 2년의 세월이 흐른다.
세월은 야속하게도 사람을 그대로 두는 법이 없다.
모두가 2년 전의 모습은 아니다.
뜨레쁠레프는 다행히도 꽤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가 되어 있다.
그러나 새로운 형식을 외치며 쓴 자신의 글들이 또 다시 스스로의
진부한 틀 안에 갖혀 버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는 번민 한다.
니나는 도회지로 나가 배우가 되지만,
연극을 믿지 않는 뜨리고린과의 어긋난 사랑에 매달리면서
"항상 비중있는 역을 맡지만, 우는 듯한 목소리와 격한 몸짓 으로
거칠고 매력없이" 연기를 한다.
마샤는 월급쟁이 교사 메드베젠꼬와 가정을 꾸렸지만,
여전히 친정에 와 뜨레쁠레프를 돌보고자 한다.
아르까지나와 소설가인 뜨리고린은 변하지 않은 듯하지만,
그 둘 사이에도 2년이라는 세월은 얕지 않은 골을 만들었을 것이다.
4막
번민 끝에 "문제는 낡은 형식과 새로운 형식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서 자유롭게 흘러나오는 것을 쓰는 게 중요" 함을 깨닫는 뜨레쁠레프.
그에게 2년 동안 "인생을 다 살아버린 듯한" 니나가 찾아온다.
순수했던 젊은날이 그리웠던 걸까,
뒤늦게 뜨레쁠레프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걸까.
"인간, 사자, 독수리, 뇌조... 지구 위에서 생명체들이
사라져 버린 지 벌써 수천 세기가 되었건만,
저 가엾은 달은 밤마다 부질없이 자신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뜨레쁠레프의 첫 희곡의 대사를 고스란히 다시 읊어대는 니나는
인생을, 시작부터 그 한계가 명확했던 "삶의 한계"를 알아버린 게 분명하다.
니나가 바람처럼 사라진 후,
뜨레쁠레프는 자기 원고를 모두 찢어 버리고는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곧 이어 총 소 리.
어쩌면 뜨레쁠레프는 "영원히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죽음 으로서 뛰어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