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님이 주장하신 내용입니다. 칭의=구원
애초에 칭의만 구원에 해당되고 나머지는 구원받은 자의 삶과 윤리로 주장하시어
지금까지의 토론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간에 구원의 순서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그것은 중생과 회심의 용어정리부터 해야 올바른 토론이 된다는 것으로 정리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칼빈을 포함해서 17세기 이전에 개혁신학자들은 중생이라는 단어를 광의적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칼빈은 중생을 돌이킴과 성화를 포함해서 우리가 전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으로 설명했고, 1561년의 벨직고백서도 중생을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 전체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좁은 의미의 중생과 넓은 의미의 중생을 구별할 필요를 느꼈고 구원의 서정을 말할 때는 중생을 거의 좁은 의미의 중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죤머레이, 루이스벌콥, 안토니 후크마 등등....)
다시 말하면 성경은 세 가지 의미의 중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새로운 영적 생명의 시작으로 성령에 의해 우리 안에 심기워지며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음에 이르도록 하는 의미의 중생(요3:3-5, 요1:12-13, 요일5:1)-좁은 의미의 중생
2. 심겨진 새 생명이 처음으로 나타날 때를 의미하는 중생(약1:18, 벧전1:23)-넓은 의미의 중생
3.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최종적인 완성의 상태에 이르는 것(마19:28,KJV,ASV 참조)
저는 우리의 토론에서 중생을 좁은 의미의 중생으로 좁혀서 생각했으면 좋겠고 그런 의미에서 좁은 의미의 중생은 돌이킴과 동일시 될 수 없으며 구별되어야 하며 칭의에 선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과정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는 국면들은 동시적이며 상호관계적인 것이 많기에 카이로스님이 주장하는 칭의만 구원이고 나머지는 구원받은 자의 삶과 윤리 뿐이라는 주장은 구원론을 왜곡되게 이해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조심하고 피해야 할 표현으로 보입니다.
구원의 서정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국면들은 한결같이 구원에 포함되는 것이지 칭의만이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한우리 목사님은 바쁘신 분이세요.. 교회 규모가 좀 있어서리...
전적으로 공감하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