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파키스탄 국경을 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위험한 도시 자헤단. 불법 무기를 소지한 사람이 많다고 하던가. 저녁에 야즈드에서 출발한 버스는 열 네시간 만에 자헤단에 도착했다. 전날 야즈드 버스 터미널에서 알게 된 자헤단행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가 "오늘부터 라마단 시작이라 식사하기 힘들테니, 자헤단에 있는 자신의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라." 라고 초대해 주었다.
그러나 그의 호의가 처음에는 무척 망설여졌다. 가족이 옆에 있는 남자나 여성의 초대라면 아무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그는 남자이고 혼자였고, 영어도 너무 잘했고, 또 너무 불필요하게 친절했기 때문에 그의 호의에 어떤 나쁜 목적이 있을까 의심이 되었다.
그는 자식이 무려 일곱명인 대가족의 가장이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많은 아이들이 있으면 아침을 먹고, 분위기가 수상하다 싶으면 그냥 나오자고 이야기하고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의 허름한 집 마당에 그의 딸들과 며느리가 헤잡 또는 차도르를 뒤집어 쓰고, 이방인들의 출현에 부끄러운듯 눈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호의를 의심한 것이 미안해졌다. 집에서는 헤잡 같은 것을 쓸 필요가 없을텐데, 저들은 낯선 남자인 내 남편 때문에 저렇게 몸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초대해준 그는 고등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영어를 가르치지 않을 때는 버스 운전을 한다고 했다. 영어를 잘하는 그를 통해 오늘부터 시작한 라마단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우선 라마단 기간은 1년에 한 번, 한 달간 지속된다고 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지만, 노약자와 임산부 그리고 여행자는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슬람이 아니고, 게다가 여행자이니 먹어도 된다고 그가 말했다.
그의 아홉살 된 막내딸은 가족을 대표해서 부엌에서 안방으로 우리를 위한 아침식사를 나르는 심부름을 계속했다. 음식을 나르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계속 쳐다보았고, 눈이 마주치면 수줍은듯 숨어버렸다. 아홉살이지만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아마도 낯선 남자가 와서 평소에 안하던걸 맸는지 엉성하기 그지 없었다. 스카프가 자꾸만 벗겨져서 막내딸은 얼른 다시 쓰며 고개를 숙였다.
막내는 천국의 아이들 2편에 나오는 어린 동생 때문에 학교에 시험을 못보러 가는 상황에서 동분서주하는 여주인공 처럼 너무 귀여웠다. 남편은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고 말했지만, 내가 강하게 말렸다.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었다간, 두번째 부인으로 삼아야 할지도 몰라. 절대 안돼!"
나는 여자여서 여자 형제들이 모여 있는 방에 들어가는 특권을 누렸는데, 막내는 나를 안내하며 사진첩도 보여주고, 학교 숙제 공책도 보여주고, 학교에서 배우는 듯한 영어 교과서를 내밀며 발음해 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내가 교과서를 보고 발음해 보이면, 막내는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었다. 사진첩에는 많은 형제 외에도 더 많은 사촌들의 모습이 있었다. 대가족의 사진을 보여주며 일일이 이름을 알려주는데,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하나도 외워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막내는 열심히 무어라 설명을 했다.
아침을 먹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국경을 넘어야할 시간이 되어 일어나야 했다. 더 지체하다가는 이곳에서 자고 가야할지 모른다. 현관에서 모두에게 인사를 하는데 막내가 보이지 않았다. 방에 가서 인사하려고 가보니 그 사이 정이 들었는지 울고 있었다.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서.
울지마, 막내야. 너에겐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낯선 외국 여행자겠지. 그래도 우린 너희 가족의 친절을 평생 간직할거야.
아, 보석 같은 사람들. 이란. 잊지 않을께요. 변하지 마세요.
첫댓글 하아 너무 따뜻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