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KBS 1TV ''주부 세상을 말하자'' 에서는 97회 세계 여성의 날 주간 기획 세 번째 순서로 여자로 살아오면서 "내가 여자인 게 싫었던 순간" 순위를 공개했다. 이 설문조사는 2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 동안 인터넷 포털사이트 daum의 미즈넷(talk.miznet.daum.net)을 통해 진행됐는데 응답자 247명 가운데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시집만 잘 가면 만사 O.K?"가 37.7%로 1위를, 뒤이어 "여자는 예쁘고 날씬하고 봐야지(과거는 용서해도 못 생기거나 뚱뚱한 건 용서 못 해)"가 19.8%로 2위를, "그래도 아들은 있어야지! (나도 모르게 바라는 아들 욕심)"가 19%로 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평등한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당했던 아픔과 고통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여자로 태어난 서러움이 어디 이 뿐이었던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는 제 고장 장날을 몰라야 팔자가 좋다(여자는 바깥 세상 일은 알 것 없이 집안에서 살림이나 알뜰히 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 "명태와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두들겨 패야 한다"는 등의 말은 과거에 여성을 얼마나 천하게 여겨 왔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말들이다. 그래서 60∼70년대만 해도 이런 노래가 인기가요 순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참을 수가 없어도 견딜 수가 없어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여자의 일생」이라는 노랫말이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철저하게 차별받고 사회활동에 불이익을 당했던 시절이 불과 20∼30년 전의 일이다.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3월 8일, 불어 닥친 공항에 의한 경기침체로 생활고에 허덕이던 미국 섬유여성노동자들 수 만 명이 뉴욕 로저스 광장에서 근로여성의 노동조건과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고, 뒤이어 1909년 미국 전 지역 2만여 여성노동자들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10년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이 제창하여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기념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후에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정하게 되었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나라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대상을 정립하려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 여성의 지위가 눈부시게 향상되었다. 여성의 사회적 존재가치에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면서 2001년 7월에는 남녀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본원칙을 천명한 「21세기 남녀평등헌장」을 제정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남녀는 가정 안에서 역할과 책임을 공유한다. 특히 자녀양육은 남녀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남녀가 평등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다양한 가족형태를 존중한다.
―.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사회적인 기여로 인정되고 마땅히 보호받는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어떠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 남녀는 능력에 따라 동등하게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이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 여성은 고용과 임금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공유한다. 장애인을 포함한 소외여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 남녀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동등하게 행사한다. 정치와 공공 부문에 여성이 참여하는 기회를 늘리며,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 남녀는 동등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갖는다. 남녀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도록 교과 내용을 개선하고 지식정보 사회를 맞아 여성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한다.
―. 남녀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문화를 가꾸어 나간다. 이를 위해 가정과 직장, 대중매체 등 모든 영역에서 민주적이고 남녀 평등한 의식과 관행을 확립하도록 노력한다. 여성을 향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 남녀는 환경보전과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남녀평등 사회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국제적인 연대를 강화한다.
이러한 선언에서 보듯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권익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여성부가 신설되어 여성의 권익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여성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넣어 이름을 지어 부르는 사례도 늘어나는가 하면, 지난 임시국회에서는 여성차별의 대표적 악법이라고 여겨 왔던 '호주제 폐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괄목할 만한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나라의 여성의 지위는 선진국이라 일컫는 OECD회원국 가운데 가장 뒤떨어져 있는 것도 현실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근로조건의 개선과 임금의 격차, 여성인력 채용기피나 결혼한 여성에 대한 사회제약 등 여성에 대한 불이익이나 부당한 차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많은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그러나 법과 제도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이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사회의 틀을 깨는 의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법과 제도는 큰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사실 여성의 지위를 앞서 향상시킨 분은 예수님이셨다. 그래서 기독교가 들어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었다.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옴으로 가장 큰 변화는 여성의 인권과 지위향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선교 100주년을 훨씬 뛰어 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 안에서조차 은근히 여성을 비하하는 모습들이 남아있다.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여전도사를 두지 않겠다'는 말을 흔하게 듣는다. 여전도사들의 한두 가지 실수 때문에 그 능력을 비하시키는 여성차별의 또 하나의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운전하면서 갑자기 끼어 드는 차들이나, 도심에서 뒤따르는 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앞차와의 간격을 최대한 벌리며 답답할 정도로 서행하는 운전자들을 보면 무의식 중에 "여성운전자 일거야"하는 편견을 갖게 된다. 무의식 중에 내 사고의 틀 속에도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의 배후에는 어머니와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도 어머니와 아내의 역량과 역할은 아버지와 남편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참여에 제약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은 남녀의 구분없이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정신에도 반하는 것이다.
한때 나의 부끄러웠던 생각을 반성하면서 나는 여성의 날이 없어지는 그 날을 기대한다. '여성의 날'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누리게 되는 날이 온다면 더 이상 '여성의 날'을 두어야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여성의 날'이 사라지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첫댓글 여성의 지위를 낮추는 불평등은 사라져야 하겠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넘어서는 여권의 신장은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난 여자면서 남자가 더 좋아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