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해 가고 있다. 교회성장이라는 신화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에 세상은 교회로부터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교회는 정체와 둔화현상이 나타나고 반기독교 정서가 급속하게 확장되어가고 있다. 교회 밖에서는 원색적인 비난과 공격이 나타나고 교회 내부에서는 양극화와 무기력증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교권에 대한 도전과 예기치 않은 종교 간의 갈등도 대두되곤 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교회가 스스로 낮아지고 작아지기보다 서로 경쟁하듯 지역의 힘을 입어 거대한 건물을 세우고 스스로 권력화 되어가는 현상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소통의 부재로 인한 결과이다. 교회는 포용과 관용, 그리고 희생적 사랑의 이미지는 잃어버리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회는 세상에 대해 먼저 등을 돌린 적은 없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지도 않았다. 종종 세상과의 경계를 세우고 교회 안에 들어 온 이들을 위한 잔치만 성대하게 베풀어 왔다.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교회 중심적, 교회 목적적 사고에 갇혀있는 것이 문제이다. 교회는 지역을 위해, 세상을 위해 있는 것이지 교회를 위해 지역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숭실대 기독교학과 10주년 학술대회에서 강사로 나선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는 한국교회에 대해서 먼저 “사회로부터 비판받는 교회를 보고 많은 교회 리더들이 봉사를 해야 교회가 다시 산다고 말하는데 교회가 과연 줄 것이 있는가?”하고 묻고 이어서 “물적 자원은 교회가 아닌 단체에서도 많이 하는데, 그것 이상의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또한 그는“암울한 시대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준 것은 복음”이라며 “한국교회가 사회봉사의 사명을 돌파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말이다.
소통이란 사전에서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또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제는 교회가 지역과의 불통 상태를 청산하고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교회가 지역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실현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변화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필자는 ‘교회의 지역 가꾸기’에 있다고 본다.
교회의 지역 가꾸기는 교회와 지역이 서로 대립하거나 어느 한 쪽으로 예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를 지향하면서 교회가 지역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보고 섬김으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살기’이며, 신앙의 생활화인 것이다.
기독교철학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문화명령’으로 명명되어진 말씀, 곧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 따르면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돌보고 가꾸는 사명이 주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교회는 지역을 돌보고 가꾸어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고 문화와 환경을 아름답게 가꿀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의 희망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유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담을 쌓고 지역은 교회에서 등을 돌린다면 희망과 행복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교회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교회는 지역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발 벗고 나설 때이다. 교회의 변화 없이는 지역에 희망도 없다. 지역에 희망이 없으면 교회도 머리 둘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