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추진 중인 ‘도농(都農)복합선거구제’가 정치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광역시에선 중대선거구, 농촌지역에선 소선거구제를 각각 실시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는 최근 열린우리당 유인태(柳寅泰) 의원이 적극 추진의사를 밝히고,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이강래(李康來) 의원이 긍정적 검토 의사를 밝히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가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복합선거구제는 올 초 정치개혁법안 논의 과정에서 여권에서 중대선거구제의 대안으로 제시한 절충안이지만 한나라당의 반대로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월에도 총선 결과가 지역적으로 편중됐다며 선거구제 개편 필요성을 제기했고,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 의원은 “도농복합선거구제는 청와대에서부터 준비해 온 일”이라고 말해 여권이 이 선거구제에 미련을 갖고 있음을 내비쳤다.
반면 그동안 선거구제 개편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던 한나라당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번 17대 총선의 결과에 자극받은 측면이 없지 않다. 한나라당은 충청권에서 30~40%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단 1석에 불과했고 수도권에서도 열린우리당과의 득표율 격차가 3~4%였지만 의석수는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 비영남, 소장개혁파 의원 사이에서는 “영남에 편중된 현재의 구도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주의의 멍에를 벗고 서진(西進)하려면 선거구제 개편을 검토할 때다”라는 말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 영남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찮아 도농복합선거구제로 개편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가 이날 “선거 때마다 새로 힘을 얻은 정파가 뜯어고치겠다는 것은 정략적이고 반의회적인 발상으로 열린우리당이 수의 힘을 과신하는 것 같다”고 말한 것도 당내 반발 기류와 무관치 않다.
도농복합선거구제가 도입되면 서울과 경기는 4~5개 권역으로, 부산은 2~3개, 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은 1~2개 권역으로 나뉘어 5~10명씩의 의원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제, 중소도시 지역은 2~5명을 뽑는 중선거구제,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가 각각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호남·충청=열린우리당, 영남=한나라당’이라는 고질적인 지역주의 구도가 크게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17대 총선 득표율을 기준으로 볼 때 열린우리당은 영남에서 전체 의석의 20~30%를 얻을 수 있고 한나라당도 충청에서 30~40%, 호남에서 1~2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 의원은 “여야가 지역별로 고루 의석을 나눠 가질 수 있어 지역 싹쓸이 구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