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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주명리(좋은사람 정모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釋山
◈ 인도는 신의 나라인가? |
◈ 인도는 신의 나라인가? | |
인도를 논함에 있어서 종교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인도라는 나라에 수식어처럼 반드시 따라오는 단어가 바로 '종교의 나라', '신에 의해 삶을 영위하는 나라', '종교가 곧 생활인 나라' 등등이다. 인도를 피상적으로만 접할 때는 엄청난 양의 신상과 사원들, 그리고 그 신상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신이 지배하는 사회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인도를 조금만 더 깊숙히 살펴보면 인도에는 종교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일단 힌두교에는 종교의 기본요소인 교단이나 조직, 경전 등이 없다. 심지어 교리 자체도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 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정해 놓은 이론일 뿐 전혀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최소한의 신앙심마저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신의 존재를 믿지도 않는다. | |
열심히 신상 앞에서 기도하는 인도인에게 무엇을 기원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특별히 기원하는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만약 신에게 무언가를 기원하면 신이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단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인도인들은 신의 능력을 믿지 않거나 의심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인도인들은 신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일상 생활속에 신을 깊숙히 끌어안고 살아왔다. 그렇다면 인도인에게 있어서 신은 어떤 존재인가?
인도의 신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거나 전지전능하지도 않으며, 인간과는 다른 세계에서 존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도인들이 느끼는 신에 대한 개념은 가족, 또는 친구와 다를 바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당연히 같은 가족에게 그러하듯 밥을 가져다 주고 때로는 신상의 입에 직접 떠 넣어주기도 한다. 때로는 신상을 정성스레 목욕시키기도 하고 예쁜 옷을 입히기도 한다. 일련의 이러한 행위에는 보상심리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내가 신에게 이렇듯 정성을 다하니 신이 원하는 것을 줄 것이라거나 복을 준다거나 할 것이라는 바램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집안의 신에게 그러하듯 외부에 나아가 길거리에 앉아 있는 신상에게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간다. 때로는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기도 한다. 마치 '안녕! 잘지내고 있지?'라고 가볍게 인사하듯 말이다. 인도인은 신을 경배하거나 받들지 않는다. 신에 따라서 존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귀여워하기도 하며, 싫어하기도 한다. 인도의 신들은 인도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표현이 훨씬 더 적절하다. 인도의 신은 깨달음을 얻은 존재가 아니다. 신도 인간과 같이 질투하고 결혼하고, 이혼도 하며, 사랑의 열병을 앓는가 하면 하는 일마다 실패하여 좌절하기도 한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인도의 신들은 인간들보다 더 열등한 면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신이 인간과 만나고 싶거나 깨달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도대체 인도에는 왜 그렇게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인도의 신들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런 절대자가 아니다. 수 많은 신들을 인도인들은 스스로 탄생시키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한다. 결론은 그렇다. 인도의 신들은 인도인들의 심성 또는 성격을 형상화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설화에 등장하는 많은 주인공들의 성격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규정지은 것이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상의 인물도 신이라는 이름으로 그 성격을 부여하고, 오늘날에도 범인과는 다른 심성을 지닌 사람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존재시킨다. 따라서 인도의 모든 사람들도 특징적인 성격을 강하게 어필한다면 신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신이 좋은 신이건 나쁜 신이건 간에 말이다. 일례로 마더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사랑이 존경을 받으면서 마더 테레사는 인도 신의 반열에 올려졌다. 인도인들은 마더 테레사의 영혼에게 길흉화복을 부탁하거나 마더 테레사 자체를 신으로 믿지는 않는다. 다만 마더 테레사의 헌신적인 사랑과 그 성격을 좋아하여 신의 이름으로 오래 기억하고자 할 뿐이다. 비슷한 예로 전설적인 도둑도 신이 되어 현재 도둑질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신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인도인에게 있어서 신은 생활속에 자리잡은 친한 친구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신만을 고집하지도 않으며 타인의 신과도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다. 다만 그 신의 성격이 마음에 들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인텔리에 속하는 어느 인도인 친구는 인도의 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인도에서의 신은 마치 연예인처럼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존재일 뿐이다. 우스개 소리지만 인도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 베스트 10을 선정한다면 매우 흥미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루 일상을 신과 함께 생활하는 인도인들의 신에 대한 신앙심은 외골수로 치닷기 십상인 우리나라의 신앙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
◈ 인도의 음식문화 | ||
인도의 오랜 속담중에 <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음식 취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인도에서는 음식이 인간의 성격과 영혼, 육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육류와 발효 음식류는 인간을 탐욕스럽고 게으르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우유와 유제품, 과일, 야채, 콩 종류는 사람의 심성을 평화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도인들이다. 인도에 유난히 채식주의자가 많은 것은 비단 종교적인 이유뿐 아니라 이러한 전통적인 가치관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인도의 음식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은 음식에도 음양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방의학과 마찬가지로 인도인들은 음식을 찬음식과 더운음식으로 구분하는데,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찬음식과 더운음식의 조화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예를들면 찬음식에 속하는 밀가루 음식을 먹고나면 반드시 더운음식인 우유를 후식으로 먹는다거나, 더운음식인 육류를 섭취한 후에는 찬음식인 요구르트 종류를 후식으로 취하는 관습이 그것이다. 인도는 그 넓이나 인종면에서 워낙 크고 다양하기 때문에 음식문화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북인도에서는 자파티라고 불리는 밀까루 음식이 주식이고 남인도에서는 쌀이 주식이며 공통적으로 애용하는 음식재료는 콩(달), 야채, 치킨, 요구르트(다히), 우유, 계란 등이다. 하지만 인도음식은 위의 음식재료를 이용하여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첨가되는 '마샬라(masala)'에 의해 그 특징이 좌우된다. '마샬라(masala)'란 식물의 뿌리나 잎, 줄기, 열매 등에서 추출한 일종의 향료 또는 양념개념인데 그 종류만 해도 수백가지에 달한다. 인도의 음식문화는 마샬라 문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똑 같은 재료의 음식에 어떤 마샬라를 첨가하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맛과 향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도음식에 관하여 말할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육식, 특히 소고기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인도인은 소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생각이다. 심지어는 '인도는 소를 숭배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인도에서 소고기를 먹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인도문화의 원류인 드라비다족(현재 남인도에 주로 거주)은 원래 소고기는 물론 말고기, 돼지고기도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농경사회에 있어서 소의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노동집약적인 농경사회에서 소가 차지하는 노동력도 큰 것이지만 소가 제공하는 우유와 이를 이용해 만드는 유제품은 중요한 식량원이기도 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단지 고기만을 취하기 위한 소의 도살은 매우 현명치 못한 행위였을 것이고, 지도자들은 소고기 섭취를 금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소를 신성시하는 설화를 민중사회에 유포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세에 들어와 회교도들이 들어와 무굴제국을 건설한 이후 인도의 음식문화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회교의 교리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고 그 대신 들어온 것이 치킨과 난이다. 회교의 영향에 따른 치킨과 난의 공통점은 탄두리라고 부르는 화덕에서 구워낸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파티와 난을 구별하지 못하는데 자파티는 인도 서민의 주식으로서 팬위에서 얇게 구워내는 것이고, 난은 화덕에서 두툼하게 구워내는 것이다. 배낭여행자들은 실제로 난을 먹어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난은 고급식당이나 호텔에서 주로 구워내기 때문이다. 또한가지 회교의 영향을 받은 요리는 염소고기다. 원래 염소고기는 회교왕국의 궁중에서 먹던 요리인데 요즈음은 많이 대중화되었다. 결론적으로 소고기 금지, 돼지고기 금지의 과정을 거쳐 치킨과 계란, 염소고기가 육류의 주종을 이루게 되었고 원래부터 채식주의자 였던 사람들은 콩을 주식으로 하여 부족한 단백질원을 보충하는 것이다. 하지만 천민들은 고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는 경우가 많다. 먹고살기 위해 이것저것 가리기 힘들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래서 더욱 천민대접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도의 대표요리라고 생각하는 카레는 무엇일까?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레는 국적불명의 요리이다. 그대신 인도에는 '까리'라는 음식의 종류가 있다. '까리'는 국물이 있는 요리를 총괄하여 지칭하는 단어다. 카레의 어원은 이 '까리'에서 찾을 수 있다. 인도의 까리 중에는 생강의 뿌리로 만든 '할디'라고 하는 노란 마샬라를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보고 영국사람들이 노란국물이 있는 요리의 대명사로서 '까리'를 'curry(커리)'로 발음하게 되었고, 영어발음을 제멋대로 고치는 데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 '카레'라고 부르게 된 것이 오늘의 카레가 된 것이다.
이제 인도인들의 음식먹는 습관을 살펴보자. 인도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발을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취한다. 의식이라고 해봐야 어떤 신성한 것이 아니고 신상 앞에 갖다 놓고 잠시 잠시 못 본 척하며 눈을 감았다 뜨면 그만이다. 물론 식당에서는 이런 의식을 하지 않는다. 식사가 시작되면 손으로 짜파티나 밥을 달(콩 스프)이나 까리에 비벼먹거나 찍어 먹는다. 밥을 손으로 먹는다는 것...여러사람의 입안을 들락거린 수저보다 훨씬 깨끗하다고 이들은 말하는 데 사실 맞는 말이다. 인도에 여행가는 사람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손으로 밥먹는 체험은 꼭 해보길 권한다. 의외로 식욕을 돋구는 면이 있다. 식사를 하면서 미각과 시각은 물론 촉각까지 동원하는 것이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젓가락으로 먹는 열무김치보다 손으로 들고 베어먹는 열무김치가 더 맛있다고나 할까? 또 한가지 이들의 식습관 중 긍정적인 것은 절대 음식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운 날씨에 마땅히 저장할 만한 방법도, 냉장고도 없는 상황에서 음식을 남긴다는 것은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그랬듯이 그것은 곧 죄악이다.
마지막으로 인도여행 중 한가지 유념해야 될 음식문화에 대하여 언급하자면 지역별 식사시간의 차이이다. 남인도에서는 아침을 먹지 않고 11시경에 아침 겸 점심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며, 캘커타 지역의 뱅갈족들은 저녁식사를 밤 10시 이후에나 시작한다. 반대로 얼마전 지진이 발생했던 구자라트 주에서는 저녁식사를 오후 4시면 시작한다. 인도인들은 식사량이 참 작을 뿐더러 식사 시간도 제각기 마음대로다. 평범한 인도인들에게 배고프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언제 식사할 것이냐고 물어도 대답은 거의 '아무때나'라고 한다. 그들은 먹는 문제에 있어서도 큰 집착이나 욕심이 없어 보인다.
우리에게 알려진 대표적인 인도 음식, 인도의 주식은 북인도와 남인도에 차이가 있다. 북인도는 밀가루로 만든 인도 빵인 난(Naan), 남인도는 쌀밥을 주식으로 한다. 난은 밀가루에 물과 소금만 넣고 탄두르에 구워내 는 평평한 세모 모양으로 만든 빵이다. 쌀도 일반적으로 하얗게 먹는 흰밥과 샤프란, 박하잎, 닭고기를 넣고 볶은 '브리야니(Biriyani)'가 있다. 또한 버섯, 콩, 당근, 커터즈치즈를 넣어 볶은 '필라프'라는 볶음밥도 있다.
인도 음식에 주로 쓰이는 용기인 '탄두리(Tandoori)'를 사용한 요리는 별미이다. 탄두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화덕을 칭하는 인도어로 24시간 동안 계속 숯불에 달구어져 있다. 이 옹기에 양이나 소, 닭, 돼지고기를 바비큐 스타일로 구워지는 음식을 탄두리 음식이라고 한다. 닭을 요구르트와 고추, 커더멈, 정향, 계피, 커민씨드를 넣어 양념한 후 탄두리에 구워낸 탄두리 치킨이 우리 입맛에 맞다.
인도 대표격으로 알려진 음식은 역시 커리. 양고기, 닭고기, 생선을 기본으로 소스로 쓰이는 양파, 토마토, 요구르트 등을 넣어 끊이고, 집집마다 취향에 맞게 배합한 향신료(기본적인 향신료는 마살라)를 넣고 걸쭉하게 끊이는데, 주식의 반찬으로 먹는다. 카레와 비슷한 '달(Dhal)'은 부드럽게 삶은 콩에 마살라를 가미한 것으로 다양한 콩을 사용하며 콩에 따라 맛과 모양이 다르다.
이외에 만두피에 야채나 고기, 치즈 등을 듬뿍 얹어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인도식 만두 '사모사', 고기를 갈아 볼이나 소시지 모양으로 만들어 탄두리에서 구워내는 까밥 등이 있다.
빼놓을 수 없는 인도 홍차 '차이(Chay)'는 찻잎에 우유와 설탕, 때로는 가지가 들어간 인도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이다. 또 요구르트에 설탕과 물을 넣어 청량음료처럼 마시는 '라시(Lassi)'는 단맛과 짠맛이 석인 음료로 여성들이 선호하고 있다. |
◈ 엄격한 신분의 벽 - 카스트(Caste) 제도 | |
인도에는 엄격한 신분 제도인 카스트가 있었다. 사제인 브라만(Brahman, 사제· 성직자 계층), 전사인 크샤트리아(Kshatriya, 귀족· 통치자· 전사 계층), 상인이나 농민인 바이샤(Vaisya, 상인· 농민· 지주 계층), 노예인 수드라(Sudra, 소작농, 수공업, 노예· 천민 계층)의 4개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여기에 인간보다 낮게 여겨져서 분류에 속하지도 못하는 최하층 불가촉천민인 하리잔(Harijan)이 있다. | |
인도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카스트 내에서만 결혼을 해야 했고, 카스트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직업도 정해져 있었다. 자기보다 낮은 카스트와 함께 있으면 부정을 탄다고 생각해서 같이 있는 것도 꺼렸다. 카스트 제도는 처음에 인도를 정복한 아리아인들이 원주민들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제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낮은 카스트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라는 힌두교 의식이 퍼져 나가면서 점차 신분 제도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지금 인도는 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가 폐지되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카스트는 여전히 일상 속에서 많은 차별을 낳고 있다. 심지어 힌두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해도 카스트에 따른 차별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도에서 상대방에게 카스트를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참! 외국인은 카스트가 없기 때문에 인도에서는 제일 낮은 신분이다. |
◈ 인도인의 성격 | |
한 국가의 국민들 성격을 규정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국민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 자체도 위험한 일일진대 하물며 이방인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인도인에게는 다른나라 사람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성격이 있다. 이는 민족성과는 무관한 개념으로 아마도 오랜세월 살아오면서 사회환경과 자연환경에 적응하다보니 생겨난 성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 |
제일 먼저 평범한 인도인의 생활을 들여다 보면 인내심이 무척 강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 수 천년의 역사 동안 많은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왔으나 인도인들은 끝까지 인내하고 버티어 왔다. 변변히 저항다운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니고 침략자의 지배를 참고 버티며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기다려 왔던 것이 인도의 역사였다. 기다림과 인내심의 함수관계는 모르겠지만 여행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도인의 성격은 정말 끈질기게 참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한 여름 푹푹 찌는 만원버스 안에서 갑자기 말없이 사라져 버린 기사를 아무런 불평없이 2시간 이상 기다리는 사람들이 인도인이다. 물건을 팔기 위해 3시간을 쫒아온 아이들부터 릭샤에 태우기 위해 반나절을 기다리는 왈라에 이르기까지 인도인은 기다림에 매우 익숙해 있다. 때로는 인내가 아니라 포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모할 만큼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인도인의 또한가지 특징은 목표의식이 없고 무사안일 천하태평이라는 점에 있다. 인도 여행 중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노 프라브럼(No problem)이다. 그들은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일단 노프라브럼(No problem)이고, 실제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것 같다. 아니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고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곳곳에서 여행자와 인도인 간의 언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대부분은 여행자가 항복하고 만다. 아무리 항의하고 따지더라도 그들은 뭐 그 정도 일 가지고 화를 내느냐는 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주장이 맞기는 하다. 모든 것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화를 낼일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의 부다가야에 가보면 어느 사원에 이런 문구가 써있다. '어쩌면 이것은 그것이다.'라고.
그렇다. 어쩌면 이것은 그것일지도 모르는데 왜 굳이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고 우기며 싸우는지 인도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인도인의 기질은 때로 여행자에게 멋진 생활철학으로 비추기도 한다. 여유만만하고 급할 것도, 다툴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노 프라브럼(No problem)으로 넘어가는 그들의 생활자세는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경쟁에 지친 문명자들에게는 분명 부러운 생활태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질은 부정적인 면에서 의욕상실로 이어진다. 인도인의 대부분은 운명론을 신봉하고 있다. 부자나 고위관리들은 그들의 능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지 부러운 대상도 아니고 그리 되고자 노력도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운명이라고 믿어 버린다. 질투도 성취욕도 없이 그저 운명이러니 하고 넘겨 버리는 생활태도는 그들을 게으르게 하고 의욕이 없게끔 만들지만, 바로 그 운명론이 인도인으로 하여금 인도사회의 계급사회적 모순을 버티며 마음의 평화를 안고 살아가게 만들지도 모른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 또한 인도인들의 빼 놓을 수 없는 특기라고 할 수 있다. 별 특별한 일도 아니고 자신과 관계 있는 일도 아니건만 인도인들은 걸핏하면 빙 둘러서서 참견을 한다. 기차를 타면 인도인들의 모든 시선이 여행자에게 집중되며 일단 말문이 트이고 나면 참으로 궁금한 점도 많고 물을 일도 많아진다. 이러한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곧잘 토론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별일도 정말 아닌데...어느새 모여든 인도인들은 심각하게 토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지겨울 정도로 참견을 많이하는 인도인들은 길거리에서 빈둥거리며 할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들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이 많아서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 중에서 인도인들은 가장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누구든 10여분만 이야기하면 마치 친구인 것처럼 대하며 그 친구의 친구도 또 친구가 된다. 그리고 마치 오랜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금방 마음을 여는 인도인들의 사교성은 가히 놀랄 만하다.
원래 가족간의 유대관계가 깊은 인도인들은 그 만큼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깊은 정을 나눈다. 이들은 한번 사귄 친구와 싸우는 법이 별로 없으며, 일단 친해지면 헌신적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인도를 여행한 사람들 대부분은 인도인과 부딪히면서 수 없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인도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고 사기꾼이라며 입에 침이 튀도록 욕을 하다가도 뒤돌아서면 그 순박해 보이는 큰 눈망울이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인도인이다. |
◈ 인도 거지의 세계 |
인도의 거지들... 이들만큼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거지들이 또 어디에 있을까? 굳이 상대를 찾는다면 유럽의 집시족 정도가 이에 필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 거지와 유럽의 집시족은 그 차원부터가 다르다.
인도 거지들은 이미 수 많은 여행기와 인도를 소개하는 서적들에 의하여 그 철학성과 당당함을 인정 받고 있다. 더군다나 인도 거지들을 칭송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직까지 거지에 의해 물건을 강탈 당했다거나 험한 꼴을 당했다는 여행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그 집요함과 뻔뻔스러움에 당황할 뿐이다. 반면에 인도 거지들의 생활을 직접 보고 온 여행자들은 그 처참함과 열악한 생활환경에 한번쯤은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가슴 뭉클한 처연함을 느끼곤 한다.
인도 문화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인도 거지들... 인도의 유수한 문화유산들을 제치고 인도 관광의 최고 볼거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거지들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원래 인도에서 거지를 지칭하는 단어인 '비까리' 혹은 '빅추'는 부처님이 오래 기거했던 기원정사에서 발생한 말이다. 수 많은 수행자들이 부처님 밑에 모여 설법을 듣고 함께 기거하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릇을 들고 시주를 받고자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빅추, 또는 비까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비까리는 '비구니'라는 말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철학적으로 해석하면 비까리가 내미는 그릇에는 무엇이 담길지 아무도 모른다. 바로 空(공)의 상태를 일컬음이다. 결론적으로 거지의 구걸을 스님의 탁발과 같은 급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인도의 거지들이 당당할 만도 하다.
인도에 있어서 거지는 완전한 직업인이다. 어떤 책자를 보면 인도의 거지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철학을 지니고 있어서 여행자를 부끄럽게 만든다느니, 아니면 인도 거지로부터 중요한 가르침을 받았다느니 하는 글들이 나온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가끔 부딪히는 인도 거지의 철학적 언사는 철저한 직업의식의 발로로서 정형화된 발언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일단 외형적으로 보이는 인도거지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신체적 장애를 갖지 못하면 거지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듯이 즐비한 장애자들과, 갓 태어난 아이를 위태롭게 안고 거리로 튀어나온 거지들, 마치 전쟁 중의 토굴을 연상케 하는 움막촌들과 그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은 어떻게 사람으로 태어나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동정심을 넘어서 저런 거지들을 방치하고 있는 인도정부에 대한 분노로까지 이어진다. 분명 인도거지들의 삶은 처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거지들을 바라보는 여행자들이 쉽게 단정 짓는 오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도 거지들의 하루하루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일 것이며, 아무런 희망과 꿈도 없이 매일 처절한 삶을 마지못해 영위할 것이라는 단정적인 생각이다.
인간들의 모임체에는 나름대로 그 내부에 희노애락이라는 기본적인 감정이 존재한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전원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며, 전쟁 중의 난민수용소에 기거한다고 해서 슬픔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집단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공존하기 마련이다. 인도의 거지들도 나름대로의 삶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최소한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보다는 훨씬 밝고 활기찬 집단이다.
거지들도 나름대로 결혼식을 하고 가족을 이루며, 저축을 하는 거지도 있고 여행을 하는 거지도 있다. 인도의 릭샤왈라(인력거 인부)보다 거지의 수입이 더 많다는 보고도 있다.
그렇다면 거지들이 느끼는 자신들의 삶은 어떨까? 일단 외형상으로는 고통스러워 한다거나 불만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푸리에서 만난 거지에게 당신의 생활이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거지는 너무나 간단 명료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거지생활 안하지"...
예전에 델리에서 아시안 게임을 개최할 때 인도정부는 거지들을 도시에서 추방하는 조건으로 직장을 보장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는 거지들의 주장은 '무엇이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겠는가?'였다.
인도 거지들은 현재 거지로서의 수입보다 2~3배 정도의 수입을 보장하는 조건 정도로는 굳이 직업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또 한가지 인도 거지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점은 예상외로 굶어죽는 거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심 좋은 시골에서는 물론이고 대도시에서도 거지가 방문하여 먹을 것을 요구할 때 이를 냉정히 거절하는 집은 거의 없다고 한다. 기근과 천재지변으로 모두가 굶주릴지언정 단지 거지라는 이유만으로 굶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쯤이면 인도 거지들이 왜 세계 어느나라의 거지들보다 당당하고 명랑한지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거지도 직업이기 때문에 자기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조금 더 똑똑한 거지는 인도에 여행오는 사람들의 국적을 한 눈에 알아본다. 물론 어느 나라 사람들의 박시시(Baksheesh, 팁)가 가장 후한가 하는 것도 이미 꿰차고 있다. 심지어는 대상에 따라 작전을 달리하기도 하고 같은 한국인이라도 여행 목적이 불교순례인지 단순여행인지를 귀신 같이 알아낸다. 하긴 간단한 외국어를 가장 빨리 배우는 집단도 거지들이니 할말이 없다.
인도 거지들은 신비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바와 같이 결코 철학적이거나 도통한 도사같은 부류가 아니다. 거지들의 삶은 분명히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처절한 생활의 연속인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도의 보편적인 삶에 비추어 그러하다는 것이지 객관적인 사실이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행자의 눈에 보이는 그들의 삶은 분명 처절하기 그지 없다. 단지 인도에 있기 때문에 인도 거지들이 그나마 덜 슬퍼보인다는 것이다.
* 인도 거지는 대개 두가지부류이다.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이 되는 거지이고, 둘째는 동냥하는 법을 배워 그걸로 돈을 버는 거지이다. * 인도 거지도 역시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주는걸 보면 우르르 몰려 든다. * 안겨있는 애기들이 실질적으로 자신이 부모에게 안겨 있는게 아닐 수도 있다. * 정 불쌍하다고 생각되면 몰려드는걸 방지(사고의 위험성)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장소를 떠날 때 줘라. |
◈ 인도 사두(Sadhu)의 세계 | |
인도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명상에 잠겨 있는 사두일 것이다. 원래 사두란 성직자와 같은 직업을 의미하는 호칭이 아니다. 마음과 육체 그리고 온갖 욕심으로부터 초월한 사람, 즉 오욕칠정(五慾七情)으로부터 해탈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두는 흔히 알고 있듯 힌두교의 수행자를 일컫는 말은 더욱 아니다.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스스로의 마음과 육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사두라고 불리며 예수와 부처도 사두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종과 종교, 철학을 초월하여 깨달음을 위해 수행하는, 또는 깨달은 자를 일컫는 말이 사두인 것이다. | |
따라서 사두는 어려서부터 지정된 사람이 아니고 사두가 되기 위해 교육을 하는 기관도 제도도 없다. 일상생활 중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고자 하면 누구나 사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수행의 방법에도 일정한 룰이 없다. 흔치는 않지만 간혹 직장생활을 하고 가족생활을 하는 사두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두들은 이마에 세 개의 줄을 칠하고 다닌다. 그 줄의 색깔은 흰색이나 붉은 색, 또는 오렌지 색인데 그 중 흰색은 향나무 액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염료로서 두통을 제거하고 시력을 밝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빨간색은 행운을 상징하며, 오렌지색은 카레의 원료와 돌가루를 섞어 만든 염료라고 한다. 이들 중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칠하는 것일 뿐 종파 따위의 분류개념은 아니다. 반면에 세 개의 줄을 가로로 칠한 사두는 비슈누신 추종자이며, 세로로 칠한 사두는 시바신 추종자이다. 하지만 인도철학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 시바신과 비슈누신의 경계는 별 의미가 없어진다. 정확히 구분되는 성격의 신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두들의 모습 중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온몸에 회색빛의 분말을 뒤집어 쓰고 다니는 모습일 것이다. 이 회색가루는 원래 화장터에서 태우고 남은 잿가루를 칠한 것이다. 이러한 횟칠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 육신은 어차피 한줌의 재가 되어 돌아갈 것이니 현세의 생에 집착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교훈을 상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사두의 세계는 여행자에게 있어서 매우 신비롭게 느껴진다. 문명을 뒤로한 채 스스로의 깨달음을 위해 명상에 빠져 정진하는 모습은 분명 미스테릭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두의 생활은 어떤 것일까?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점이 아마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실제로 사두들의 수행은 먹거리나 잠자리 등 기본적인 것들로부터의 해탈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두들이 하루에 먹는 식사량은 상상을 초월하는 미량이며, 수행자에 따라서는 3일부터 근 한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수행하는 사두들도 많다. 잠자리 또한 등을 붙이는 곳이 곧 안식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저 먹고 잘 수 있으면 그리하고, 없으면 안먹고 안자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면 그 또한 그리하면 그만일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에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면 사두의 길을 걷기 어렵다. 심지어는 타인의 눈길이나 의복 따위의 문제로부터도 해방되길 원하는 사두들은 나가사두(벌거벗은 수행자)가 되기도 한다.
사두에 대한 인도인들의 태도를 보면 상당한 존경심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일단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고,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다 하더라도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사두들의 가르침이나 행동이 일반 인도인의 삶에 지표가 되고 스승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고 사두의 길을 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일이기도 하지만 무책임한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나 아들이 갑자기 도를 깨우치겠다고 집을 나선다면 남아있는 가족들과 주위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할 노릇일게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이러한 결심을 높게 평가하고 존경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인간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를 그들은 너무나 잘알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사두들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사두들은 여타 종교 수행자들 처럼 교파조직이나 수행지침이 있을까? 그것은 결코 아니다. 인위적인 조직이나 수행의 왕도 따위는 아예 없다. 그것 자체도 인간의 심성을 얽매는 부질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존경하는 사두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추종하는 집단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오쇼 라즈니쉬 같은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추종하는 제자들과 사두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조류일뿐 교파나 종교집단은 아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은밀한 사두의 세계를 엿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한가지 명심할 것은 여행자가 많이 모이는 장소에 요란한 치장을 하고 앉아서 요가시범을 보이고 있는, 그리고 함께 사진 찍기를 요구하고 돈을 적선하라고 하는 사두들은 필경 가짜라는 것이다. 그들은 지능적인 거지에 다름 아니다.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자 수행하는 사두들이 사람이 많이 모이고 번잡한 관광지에 앉아 일일이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친절을 베풀고 있으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
◈ 인도의 장례제도 | |
인도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바라나시의 마니카르니카 가트(Manikarnika Ghat) 화장터일 것이다. 이곳에서 이방인들은 작은 충격에 휩싸이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감상에 젖기도 한다. 아마도 인도를 여행한 사람들이 갖는 인도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부분 이곳의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수 많은 인도 여행기들은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단골메뉴로 등장시킨다. 일단 외형상 바라나시의 화장터는 생각보다 담담한 유가족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
오열하고 슬퍼하는 모습은 커녕 마치 불장난 하듯 시체를 이리저리 뒤적이는 모습은 가히 놀랍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많은 책들이 바라나시를 묘사함에 있어 인도인은 삶과 죽음을 초월했다거나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현실을 초월한 사람들이라는 등의 다소 감상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인이라고 해서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도인도 우리와 같은 심성을 지닌 인간일진대 어찌 슬픔이 없고 눈물이 없겠는가? 한 마을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가장 먼저 터져나오는 것은 역시 가족들의 통곡소리이며, 그 통곡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슬퍼하는 유족들을 위로한다. 이 때 주로 건네는 위로의 말은 '긴 여행을 끝내고 누구나 가는 길을 가는것 뿐인데 왜 슬퍼하는가?' 따위의 것이라고 한다.
장례준비는 매우 간단하다. 일단 시신의 입에 갠지즈강에서 떠다 놓은 성수를 붓고 흰옷으로 갈아 입힌 후 그 위에 오렌지색이나 초록색, 또는 붉은 색의 천을 덮는다. 시신위에 덮는 이 천은 색깔에 따른 특별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평소에 좋아했던 색으로 미리 준비해 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시신의 위에 간단한 꽃장식을 하면 그만이다. 장례 준비가 끝난 시신은 <타트리>라고 하는 대나무 들 것에 들려 화장터로 운구된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이 죽은 후 화장터로 옮겨지기까지의 시간이 불과 약 3시간, 길어야 6시간 이내라는 것이다. 사실 슬퍼할 겨를도 없는 시간인 것이다.
집밖으로 나온 시신은 네 사람이 <타트리>의 귀퉁이를 어깨에 걸쳐 높이 올려진 채로 화장터로 향한다. 이때 모든 유족들과 친지, 마을사람들은 '람 람 사테헤!'라고 외치며 시신의 뒤를 따른다. '람 람 사테헤'는 '신의 뜻을 따른다'는 말이다. 화장터까지 여자는 동행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단 화장터에 도착하면 시신을 바닥에 내려 놓고 집안 어른이 화장터 뒤편의 나무시장으로 가서 화장에 쓰일 나무를 큰저울에 달아 구입한다.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나무의 양이 정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일부 책에서 소개된 것처럼 시신이 반도 타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양을 구입하는 경우는 요즘에는 매우 보기 힘들다. 이 시간에 나무시장 근처의 거리 이발소에서 상주는 머리를 삭발한다. 머리를 삭발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빨리 잊고 떠나보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비록 삭발을 하더라도 머리중심(가마가 있는 부분)의 머리카락은 마치 안테나처럼 일부 남겨 놓는다. 인간의 정령이 통과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화장터 바닥에서 잠시 대기하던 시신의 화장차례가 되면 시신을 잠시 성스러운 갠지즈강에 담궜다가 꺼낸 후 나무단위에 올린다. 이 때 상주가 시신 주위를 7바퀴 돌며 쌀, 꽃, 향료 등을 뿌리고 머리부분에 불을 붙인다. 이후의 시신소각은 화장을 직업으로 하는 인부에게 맡겨진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러나 매우 담담해 보이는 표정으로 화장을 지켜보는 동안 인부는 시신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소각시키는데 막판에 이르러서는 나무 막대기로 시신의 머리를 때려 터트리기도 한다. 머리가 깨져야만 그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시작된 화장이 완전히 마무리 되기까지는 약 5~6시간이 소요되며, 장작의 불이 꺼지고 나면 인부들이 그 재를 광주리에 담아 강물위로 버리는 것으로 모든 장례절차는 끝나게 된다.
화장이 끝난 후 망자에 대하여 갖는 제사 따위의 의식은 없다. 죽은 후 13일째 되는날 친지들이 모여 '뜨리오도시'라고 하는 만찬을 즐기며 망자를 회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유일하다.
사람이 죽은 후 재가되어 강물에 뿌려지기 까지의 시간이 불과 10시간 남짓하고 이후의 기일도 지켜지지 않으니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허망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인도에서 이들의 장례의식을 지켜보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바로 인연의 끈을 놓는다는 것,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 그 자체가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
◈ 인도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들 !! - 역사 속에서 발견한 놀라운 인도 | ||
평화의 나라 : 인도인들은 10,0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상 단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공한 적이 없다. 반면에 수많은 나라들이 끊임없이 인도를 침략해 왔다.
숫자의 나라 : 최초로 숫자개념을 인식한 것은 인도인이며, 인도의 아르야밧다에 의해 '0'의 개념과 소수점의 개념도 인식되었다.
최초로 대학을 세운 나라 : 인도는 BC 700년 경에 이미 세계 최초의 대학인 타크쉴라 대학을 건립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15,000여 명의 학생들이 무려 60여개 학과에서 공부했다는 것. BC 4세기 경에 설립된 날란다 대학은 고대 인도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학교 중의 하나다. 바로 우리나라의 혜초스님이 수학한 곳이다.
언어의 모태가 된 나라 :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는 모든 유럽언어의 모태가 되었으며, 현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언어와 가장 밀접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인도인들의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매우 빠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나라 : 현대 인도의 이미지는 낙후된 경제발전으로 인한 가난이다. 하지만 영국이 침공한 17세기 이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의학의 모태가 된 나라 : 2,500년 전부터 시행되어 온 인도 고유의 의술인 <아유르베다>는 의학의 모태가 되었다. 요즘에 이르러 그 가치가 새삼 재평가되고 있다.
항해술을 만든 나라 : 항해술은 6,000년 전의 신드강에서 탄생되었다. 'Navigation, 'Navy'등의 단어도 산스크리트어의 'Navgatih', 'Nou' 등에서 파생된 것 들이다.
지구의 공전 횟수를 처음으로 알아낸 나라 : 인도의 바스카라 차리야는 유럽보다 수백년 전에 이미 지구의 공전 횟수를 계산해 내었다. 5세기에 그는 이미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데 365.258756484일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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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의 나라 : 인도의 부다야나는 유럽보다 600년이나 앞서 '피타고라스의 정의'를 설명했다.
수학의 나라 Ⅱ : 대수학, 삼각함수, 미적분 등은 인도로부터 나온 수학이다. 인도에서는 11세기에 이미 스리다 라차리야에 의해 강의되었다. 또한 그리스/로마인들이 가장 큰 숫자를 10의 6제곱이라고 인식했을 때 인도에서는 10의 53제곱까지 계산해 내고 있었다.
다이아몬드를 생산했던 유일한 나라 : 미국의 보석 연구소에 의하면 1896년 이전까지 다이아몬드를 생산한 나라는 세계에서 인도가 유일했었다고 한다.
무선통신을 개발한 나라 : 미국의 IEEE는 세계최초로 무선 통신을 개발한 사람은 마르코니가 아니고 인도의 자그디 쉬보스라고 보증했다.
세계 최초의 댐을 만든 나라 : 세계최초로 댐을 만들고 저수를 시작한 것은 인도의 사우라스트라였다.
세계 최초의 인공호수를 만든 나라 : BC 150년경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왕조 때 라이바타카 언덕 꼭대기에 <수다르샤나>라는 인공호수가 만들어졌다.
체스를 만든 나라 : 체스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서구사회에 전파된 것이다.
수술의 원조가 된 나라 : 인도의 수스루타는 수술의 원조다. 그는 2,500년 전에 제왕절개술, 백내장, 인공 수족, 골절, 비뇨기 수술등을 완벽하게 해냈으며, 심지어 뇌수술까지 감행하였다. 이 당시 이미 125개가 넘는 의학용 기구를 사용했고, 의학 전반에 걸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음이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되었다.
고대 문명을 이룬 나라 :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시적인 삶을 영위할 때 인도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하라파 고대문명을 이루어 냈다.
비폭력으로 독립을 이룬 나라 : 인도는 폭력없이 독립을 쟁취한 몇 안되는 나라중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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