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옆자리 외9
오하룡
지난 밤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나니
날 데리러 온 저승사자 조건이라는 게
내 곁에 누가 있으면 끝장 선언이나니
이제 끝인가 나는 순순히 눈 감았나니
다투다 토라진 아내가 찬바람 일으키고
자리 비워 준 게 행운인지 액운인지
*일부개작
그
문 덜컥하는데
가슴이 울렁인다
누군가?
그였으면 좋겠다
*일부개작
소문 부르조아
사진 속의 내가 앉은 소파가
억시기 고급이더라고
이제 부르조아 다 되었다고
하더라는 소문을 들었다
큰 아이가 제 집에 있는 덩치 큰
소파가 버거우니 이번에 너른 사무실
얻었다니 손님 접대용으로 쓰지요
그 소파는 아는 지인이 이사 가며
버린 것을 아까운 생각에
얼른 주워 갖다 놓은 것이었다
훤한 자리에 놓으니 누가 뭐라든
어울러 보였고 우리 찾아 온 손님
잠시 쉬는 자리로 의미도 있었다
헌데 손님이 뜸한 겨를 내가 잠시
등 붙인 것이 영 어울리지 않던 모양이다
사진 부르조아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일부개작
이종환 시인
친구 이종환을 불러본다 잉여촌 창간동인으로 잠시 꿈결처럼 만났던 우리사이 그대 살았다면 시인다운 참 시인 목소리 내며 빛났을 텐데 아쉽고 안타까운 사람 칠순 넘어 살만큼 살고 보니 그대 생각 더욱 간절하다 그때가 언제던가 서울 내 셋방에서 오랜만에 우리 동인 몇 만나 회포 풀던 때 마침 대연각 호텔 대화재사건 터져 내 고물 흑백 소니티브이로 한숨 쉬며 불구경하는데 이상개 시인에게 날아온 전화 한 통화 어째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마산의 이종환 사망이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 불나게 이상개 시인 마산으로 내려갔지 후일 이상개 시인 전갈에 의하면 한 가족이 연탄가스로 참화를 입은 상황이라 친척 친지도 별로 없는 그들을 당시 마산의 정진업 시인을 비롯한 문인 몇 분의 협조로 화장하여 무학산 자락에 산장하고 말았다고 하였다 마산 근처에 연고가 있는 나는 서울 나그네 되어있고 고향 부산을 떠나 생업 터전으로 대도시에 배회하던 그대는 어찌하여 아득히 남도 자락 마산에 정착 했던가 가난한 그대 유한양행 다니던 규수만나 결혼하던 때 우리는 아낌없이 그대의 행복을 빌었었지 새 신부 데리고 내 충신동 비탈진 셋집을 찾아왔던 두꺼운 안경속의 선량하던 큰 눈 어제 런 듯 선하다 그대 추억해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대 떠난 마산에 내 지금 발붙여 산지 40여성상 그대위해 명복이나 빌 뿐인 우리 사이여 그대 젊어 고혼 되어 마산하늘 떠돌고 나또한 살만큼 살았으나 그대 뒤따라 고혼으로 떠돌 운명이여
동화작가 임신행
임신행의 전화다 지나가는 길에 보니 산호동 입구에 새 건물이 하나 섰더라 거기 세 주는 사무실 있을 것 같은데 알아봐라 오동동 큰길가 세 있다는 광고 붙었던데 알아봐라 그는 우리 일에 금방 숨이 차다 지금 있는 사무실 내부수리에 들어가느라 비워달라는 통지받고 걱정했더니 그가 속이 달아 전화 불나게 해오는 것이다 어지간하면 볼만하게 두고 볼 텐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언제나 앞장서고 본다 특히 내 일에는 궂은일이나 좋은 일이나 우선 나서고 본다 그와의 우정 사십년을 헤아린다 작은문학 만드는 일이나 출판사의 사소 한 듯 한일도 뭔가 도움 되겠다 싶으며 전화하고 달려 온다 정의의 투사 같다 내가 혹시 모순된 세상일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중심 잡는 일도 그가 도맡는다 동화작가 답게 동심에 찬 천진스러운 표정으로 어떤 때는 형님처럼 시집 여러 권 낸 시인답게 날카롭다 비틀어진 현실과 맞부딪칠 때에는 찬바람이 일만큼 맵고 싸늘하나 부드러울 때는 솜털처럼 한없이 부드럽다 뒤돌아보면 내 약력상의 몇 항목도 그가 챙겨 가능한 것이다 이제 그도 백발이고 나도 백발이다 그도 크고 작은 병 생겨 병원 들락이고 나도 역시 그런 처지다 뒤돌아보면 그와의 사이, 좋은 일만 있은 게 아니다 서로 의견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하고 한동안 절교한 듯 연락을 끊고 지내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는 언제 그랬냐 싶게 하루라도 전화를 나누지 않으면 안달이 나고 있다 이 모두 그의 일방적 아량에 힘입은바 크다 그와의 이야기 다 어찌 이런 시 한편에 담을 수 있으랴 이제 부인도 퇴임하여 단촐 하게 여유를 누리고 있다. 우선은 부디 건강 챙겨 말년이 보람 있기를 동갑의 우정으로 빈다
*끝부분 개작
思母曲
창원군 웅남면 외동리 성산부락 들먹이면 금방 가슴 절여오느니 여 닐 곱살 무렵 그 동네 이름 개천이름 들판 이름 정자나무 이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먹먹해지느니 스물 몇 젊은 여자 아들 하나 어찌되던 키우려고 벽촌 중 벽촌 한 호부라비에게 재취 가던 날 그 여자 어떤 표정이었을지 멀찍이 그 여자에 비친 어린 아들은 어떻고 그 아들에 비친 여자는 어떻고 아무리 쥐어짜도 상상 닿지 않을 뿐이나니 그리하여 그 아들 열 몇 살 되어 넓은 세상 나서던 날 어두운 새벽 찬바람 부는 상남역 저쯤에서 여자 얼굴 점점 더 작아지느니 그 얼굴에 비치는 아들 얼굴은 어떻고 그 아들에 겹치는 그 여자는 어떤지 그 모습 지금도 어른거려 아련해지느니 지금 그 아들 칠순 넘었어도 그 여자 생각하면 이리 눈물 마르지 않느니
*일부개작
하늘가네
소복소복 눈길 열어 하늘가네.
누구 없이 홀로 청승스럽네.
어디서 오는가 어디 가는가.
싸락싸락 눈 소리동무 하네.
길동무 되어줄까 말동무 되어줄까.
바람은 아는가 눈 노래 불러주네.
소복소복 눈길 열어 하늘가네.
세상천지 하얗고 눈길 하얗고
소복소복 눈길 열어 하늘가네.
후회
마음 안 든다고 에잇! 이라고
나도 모르게 뱉는 버릇을 후회하다가
다시 쓰고 다시 써야 하는 데도
확 찢는 버릇을 후회하다가
이제 나서야 하나 어째야 하나
망설이는 버릇을 후회하다가
털옷
가죽을 사용한 옷은 어떤 경우든 입지 않으리라 호기롭게 다짐 한 적이 있었나니 추위에 떠는 나를 위한다고 늘 추레한 행색이 안돼 보인다고 늙은 아내가 큰마음 먹고 사 온 목 부근 털 달린 잠바를 입으며 괜히 개와 눈 마주치는 것이 부끄러웠나니
*일부 개작
진땀
어둡고 삭막한 길을 걸어왔다 딴 길을 걷고도 아는 길을 걸은 척 했다 멀리 두르고 둘렀는데도 지름길로 온 척 했다 손해를 보고도 오히려 이득을 본 척 했다 마음에 없으면서 있는 척 다소곳이 예라고 대답한 적 있다 아니 많다 그 말로 내가 아닌 내가 되게 했다 지금도 내가 아닌 나를 나라고 생각하면 진땀난다 가련한 하룡이 그러나 내 입으로 소리 나게 가련하다고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