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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일이 바로 아이 노릇입니다
이상호 |
“시골에서 아이들 가르치기가 어때요?” 그 선생님은 토요일에 내가 사는 곳까지 찾아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 한 아이는 버릇처럼 자해를 하고, 어느 아이는 무기력증에 빠져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고, 또 다른 아이는 하루 종일 말을 한 마디도 안 한단다. 오랫동안 왕따를 당해 피해망상증에 걸린 아이도 있는데 별일 아닌 것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늘 따로 보살펴 주어야 하고, 주의력이 모자란 아이, 틱 장애가 있는 아이, 난폭한 행동을 하는 아이까지, 하루하루가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거의 컴퓨터에 빠져 있는데 바꾸어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해 봐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아 교사로서 벽을 느낀다고 했다. 2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쳐 온 그 선생님은 자기 반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교사뿐 아니라 어른들 둘 셋만 모여도 교육을 걱정한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하고 자기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놀지 못해서 많은 문제가 생긴다.” “놀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집 아이들은 학원, 학습지에 과외까지 시키고 있으니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답게 자라도록 돕는 일이 교육인데, 오늘날 교육은 지식이 교육의 전부라고 여기는 듯하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노는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딱지치기를 하는데 한 아이가 딱지를 치지 않고 들고만 다닌다. 왜 안 하냐고 물었더니 잃는 게 겁나서란다. 잃어도 괜찮다고 해도 주위만 빙빙 돌면서 살펴보더니 드디어 제 눈에 가장 못할 것 같은 아이를 골라 치기 시작했다. 두 장 잃고 한 장 따고 다시 두 장 잃은 다음 그만 일어선다. 손에 아직 두 장이 남았는데도 울상을 지으며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딱지를 치다 보면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며칠 뒤에 보았더니 이번에는 살피는 시간도 훨씬 줄고 다른 친구들 딱지를 척척 따기까지 한다. 나중에 물어 보니 집에서 연습을 했단다. 얼마 뒤에 다시 할 때는 선뜻 아무하고나 딱지를 친다. 잃을 수도 있고 딸 수도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 것이다. 잃고 따는 것이 흔한 딱지치기와 실패와 성공이 되풀이되는 삶은 그런 점에서 참으로 비슷해 보인다.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아이에게 오히려 잃는 것을 인정하게 하고, 잃어야만 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딱지치기는 그 어떤 설명보다 설득력 있는 교육이다. "체육 시간에 선생님께서 진치기 놀이를 가르쳐 주셨다. 남녀 각각 축구 골대 하나씩을 진으로 하여 술래 4명을 정하여 놀이가 시작되었다. 술래들은 못하는 아이들이 되어서 잡아도 계속 도망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내가 술래를 자진하여 열심히 뛰어다녔다. 거의 다 잡아서 안심했는데 임준모가 쳐서 다 도망갔다. 내가 술래가 아닐 때는 술래 심정을 잘 몰랐는데 술래를 해 보니 아주 힘들고 어려우며 앞으로 남의 심정을 잘 알고 행동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어릴 때 그냥 재미있게 놀았다고 생각하지만, 들여다보면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것은 거의 놀이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길눈이 밝아진다. 어디에 숨을지 찾으려면 주위 공간을 살펴 이해하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길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진치기를 많이 하면 달리기를 잘하게 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에게 이런 놀이는 가장 좋은 공부다. 오징어나 개뼉다구, 진놀이 같은 놀이는 무리 속에 있는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할 일을 깨닫게 하는 놀이다. 한번은 오징어 놀이를 하는데 한쪽은 키도 작고 힘도 약한 아이 한 명이 남고 한쪽은 힘 센 아이 두 명이 남았다. 작은 아이 편 아이들은 이제 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약한 아이가 힘센 아이 한 명을 밀쳐 내고 남은 아이와 일 대 일로 맞붙은 것이다. 결국 약한 아이가 졌지만 아이들은 모두 그 아이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워했다. 그 뒤로 그 아이는 정말 아이들 말로 180도 바뀌었다. 자신이 죽으면 자기 편 모두가 진다는 생각이 그 아이에게서 새로운 힘을 끌어낸 것이다. 꼬마야 꼬마야 놀이는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한다. 돌아가는 줄로 뛰어들어가려면 얼마나 많이 망설이고 주저하게 되는지 모른다. 하지만 몇 번이나 실패한 끝에 마침내 성공했을 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놀이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말로 필요한 마음가짐들을 배울 수 있는데다 재미까지 있다. 그래서 놀이는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친다. 학교 문 앞에도 가 보지 못하거나 초등 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어른들이 가장으로, 마을 어른으로 자기 노릇을 다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어릴 적 실컷 놀면서 깨달았기 때문이지 싶다. 사실 노릇도 놀이에서 나온 말이니 그 뜻을 되새겨 볼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아이 노릇을 제대로 하고 살고 있는지 새 학기부터 잘 살펴봐야겠다.
▷ 이상호 ∥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충북 충주에 있는 칠금 초등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1987년 놀이연구회 '놂'을 만들었고 스무 해 넘게 놀이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데 애써 왔다. 지금은 놀이를 연구하고 널리 알리려는 사람들과 힘을 합해 사단법인 '한국전래놀이협회'를 만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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