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가장 힘들게 일하는 전자제품은 컴퓨터의 명령을 받아 비지땀을 흘리듯 쉴새없이 잉크를 뿌려대는 프린터이다. 이제는 레이저 프린터에 밀려 구닥다리로 취급받는 잉크젯 프린터이지만 그 안에는 생명공학의 기대주 DNA칩을 만든 첨단 기술을 갖고 있다.
DNA칩에 응용된 프린터의 기술은 압전소자(壓電素子)를 이용한 잉크 분사. 압전소자는 1880년 후일 퀴리 부인의 남편이 된 피에르 퀴리가 형과 함께 발견했다. 결정판에 일정한 방향에서 압력을 가하면 판의 양면에 외부에서 준 힘에 비례하는 (+)(-) 전하가 발생해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반대로 압전소자에 전기를 걸어주면 결정판의 모양이 저절로 변형된다.
프린터가 전기신호를 보내면 압전소자가 늘어나 주사기처럼 잉크를 노즐 앞까지 밀어낸다. 그 뒤 재빨리 전류를 차단하면 압전소자와 함께 잉크도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노즐 앞까지 밀려났던 잉크는 작은 방울이 돼 떨어진다. 전류의 세기를 조절하면 분사되는 잉크방울의 크기와 양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DNA칩이란 유리기판에 유전자 DNA를 촘촘히 심은 다음 혈액과 반응시켜 유전자의 발현 여부를 알아보는 장비. 프린터의 잉크 분사기술은 DNA칩 표면에 나있는 미세한 홈에 원하는 양만큼 DNA?뿌려주는 데 이용됐다. 세계적인 프린터제조업체인 휴렛 패커드사가 미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국립연구소와 DNA칩 개발 공동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압전소자를 이용한 잉크 분사 기술 덕택이다.
압전소자는 가정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스렌지의 스위치는 압전소자를 이용해 스위치를 누르는 압력을 전류로 바꿔 불꽃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