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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마을 주민과 함께 하는 목회실천
2014년 신년목회계획 세미나
문순국 목사(도화교회)
1. 교회의 역사와 지역사회에 대한 설명 및 부임 과정
저희 도화교회는 충북 제천시 백운면 도곡1리 120-1에 소재하고 있는 농촌의 작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개척된 지 만14년이 되었고, 제가 이곳에 부임한 것은 2002년 7월 초 2대 교역자로 부임하여 12년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화교회에 부임해서 첫 주일에는 저희 부부를 포함하여 7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렸고, 교회학교 아동부에는 1명의 어린이가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개척된 지가 얼마 되지 않기도 하였거니와 교회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도화교회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부정적인 요소가 훨씬 더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저는 농촌 목회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 없이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순종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 아내가 넷째아이를 출산하다가 중환자실에서 한 달 가까이 혼수상태로 있던 중에 심장이 세 번이나 멈추는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고 그 과정 가운데 생명을 건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기적적으로 소생하여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은혜로 그 어느 곳이든 생명을 다한 목회를 하겠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촌이라는 다소 어려운 목회가 예상되는 목회지 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감사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도화교회 예배 드리는 모습)
2. 교회가 자립하게 된 이야기
처음엔 어떻게 농촌목회를 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농촌 지역에 맞는 전도를 꿈꾸며 기도하던 중 농촌 인구의 대부분이 노인임을 실감하고 노인 분들에게 맞는 전도 전략을 모색하였습니다. 도시처럼 전도지나 프로그램으로는 농촌 분들에게 다가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여력도 없었으므로 철저히 섬기는 목회 방향으로 전도의 물꼬를 트는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도시의 큰 교회에서 농촌교회에 봉사를 와 줄 수 있다고만 하면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분들을 초청하여 지역을 섬길 수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의료봉사, 이미용봉사, 한방의료봉사 등을 수시로 하였습니다. 행사를 한 번 할 때마다 100여명 가까이 점심도 대접했고 지역이 넓고 대중교통이 없어 모두 차로 모셔 오고 모셔다 드리기를 하루 종일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들이 예수님만 믿게 되고 교회가 지역에 좋은 소문만 날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낡은 교회차량을 이용하여 노인들을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일은 처음부터 하였고 독거노인들을 섬기는 일도 구체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오옥이 할머니입니다. 그분은 6년 이상을 자궁암에 걸려 투병 중에 계셨고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으며 삶이 형편없는 분이었습니다. 지능도 한참 모자라는 분이어서 동네 사람들이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그런 할머니였는데 목사인 제가 그런 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어 병원에 모셔다 입원도 시키고 기도하여 드리며 작은 관심을 보였더니 지역 주민들에게 소문이 아주 좋게 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제일 처음 전도한 할머니가 오옥이 할머니이었는데 세례 받고 1년 정도 신앙 생활하시다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그 때까지 저희 교회에 대한 지역주민들이 품고 있었던 부정적인 인식이 깨끗이 씻어지고 오히려 아주 좋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전도가 되기 시작해서 지금은 어른들만 70여명, 아이들 30명 모두 100명 정도가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처음엔 주로 70대 이상의 노인들만 전도가 되어 전형적인 농촌 교회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노인 성도들이 천국에 가시고, 다른 시설로 가셨는데도 불구하고 주일 출석 인원이 평균 70여명 정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성도들의 평균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교회 안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나 모두가 행복해하는 은혜로운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있었습니다. 교회가 개척 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고 기존성도들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주민들이 전도가 되니 이들은 아이와 같은 믿음이어서 봉사할 생각도, 어떻게 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제 생각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에게 봉사를 하게하면 이분들이 겨우 만난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 갈까봐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겠지'하는 믿음으로 그저 묵묵히 섬기기만 하였습니다. 무슨 행사를 하든 저는 운전을, 아내는 식사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일을, 그리고 우리집 아이들은 교회청소를 5년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도시에서 신앙생활 하시던 분들이 등록을 하게 되면서 그분들이 자연적으로 충성의 모범을 보이고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 아이와 같던 성도님들이 변화하여 이제는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사모를 아끼고 교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우리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로 알고 행복해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저희교회가 심혈을 기울이며 하고 있는 일은 어린이 사역입니다. 농촌의 특성상 교회주변에는 아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어린이가 교회의 희망이므로 한 명이라도 귀히 여기며 사명감을 가지고 접근하였습니다. 저희가 처음 도화교회에 부임하였을 때 주일학교엔 1명의 아이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출석하고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의 아이들 4명과 주일학교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며 전도하기 시작하였는데 별 진전이 없어 아이들에게도 노인분들과 마찬가지로 차량으로 봉사하며 그들을 전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농촌의 아이들은 교육이나 문화적인 혜택 등 모든 부분에서 도시의 아이들에 비교해서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농촌이 소외 계층으로 전락되었듯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소외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농촌 아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전도 전략이 있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농촌 지역의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희망을 심어 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전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3년 1월부터 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인 공부방을 시작하였습니다. 공부방 운영에 대한 경험도 없었고, 공부방에 대한 정보도 없었지만 무조건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전도하기 위하여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매일 방과 후에 교회 사택에 모여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며 점점 교회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하였고 1년 정도 운영하니 때마침 정부에서는 공부방을 지역아동센터로 법제화하여 교회에서 돌보는 지역의 아이들을 국가의 아이들이라는 인식하에 매월 운영비와 급식비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로 10년째 운영되는 지역아동센터는 지금은 프로그램도 다양화되고 전문화되어 도시 아이들 부럽지 않을 정도의 수준 있는 프로그램들이 매일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가 운영되면서 교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아이들의 부모가 전도되었으며 아이들과 그 가정들이 조금씩 치유되고 회복되는 여러 가지 긍정적이고 행복한 일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일주일 내내 교회내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교회학교에도 출석하고, 불신 가정의 아이들도 교회 문화에 점점 익숙해져 주일학교에 전부 등록하여 지금은 교회학교 아동부와 중고등부가 30명 정도가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은 교회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지역아동센터의 어린이들과 교사들)
또 한 가지 저희교회가 2005년부터 하고 있는 일은 문해학교(한글학교)입니다. 문해(文解) 학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저희가 도화교회에 처음 부임해서 경험한 일 중 하나가 노인들이 숫자를 몰라서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이 전화기 메모리 기능을 이용하여 ‘단축번호 1번은 큰아들 네, 2번은 작은아들 네.........’ 이런 식으로 전화번호를 저장 해 드려야 그나마 자녀들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생활하다가 어찌하여 메모리 기능이 삭제되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지요. 한번은 노인 성도님 한 분이 글자를 몰라 암 검진 안내장을 보고 암에 걸렸다는 내용인 줄 알고 낙심하여 제게 찾아와 우는 소리를 하는 등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여 문해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가장 큰 문제는 전도를 하면 교회는 가고 싶은데 글자를 모르니 창피스러워서 교회를 못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목사인 제 입장에서는 글을 몰라 천국을 못 간다는 것이 가장 크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시대를 잘못만나 전쟁과 가난으로 배우지 못하였고 일평생 농촌에서 피땀 흘려 농사짓고 고생고생하면서 자식 키우며 살았는데, 늦게나마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시면 좋겠는데 한 맺힐 정도로 못 배운 글 때문에 포기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동기를 가지고 시작한 문해학교도 지역 주민들에게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문해학교를 통해서 노인 성도들이 일평생 못 만났던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적인 일들이 생겼습니다. 또 문해학교에서는 농촌에 늘어나는 이주여성 한글학교를 개설하여 병행하고 있습니다. 농촌지역에 요즘 많은 결혼 이주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사역도 매우 효과가 좋아 저희교회엔 예수님을 믿고 집사직분을 받은 필리핀, 중국, 베트남새댁들이 있습니다.
(도화문해학교의 학생들)
또 한 가지 2010년에 시작하여 제천시에 설치 신고하여 운영하는 '옹달샘'이라는 아동 그룹홈이 있습니다. 예전엔 부모가 책임지지 못하는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자라게 하였는데 이제는 보육원이 아닌 가정형태의 그룹홈에서 자라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던 남매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그 아이들 때문에 아동 그룹홈을 2011년에 설치신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4살, 5살, 6살, 중1, 중2의 아이들이 사회복지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아동 그룹홈도 사람을 키우고 희망을 갖게 하는 중요한 도구가 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교회의 규모는 작고 역사와 전통도 없고 농촌에 속해 있어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점점 창대할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2003년에 시작된 지역아동센터도 모범적으로 잘 운영되어지고 있고 2005년에 시작된 문해학교, 2007년에 시작된 결혼이민자한글학교도 지역에 필요한 중요한 사역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2010년에 시작된 아동 그룹홈도 아이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나고 있습니다. 일련의 과정 속에 복지건물이 필요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예수님도 믿지 않는 지역의 독지가가 도화교회가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100평의 땅을 기증하여 주셔서 2007년에는 37평의 복지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3. 현재 교회의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 기도제목
지난 2011년 겨울방학에 저희교회가 또다시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일을 말씀드리면, 요즘은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자연환경에서 자녀들을 키우고자하는 도시의 학부모들이 과감하게 아이들을 산촌유학센터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 지역의 소규모학교로 전학하여 농촌아이들과 함께 자연체험도 하면서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유해한 환경과 부모님들의 맞벌이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고,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치유하게 하고자하는 욕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가 '희망나무숲 산촌유학센터'를 2011년 12월에 개소하였습니다.
'희망나무숲 산촌유학센터'에는 현재 12명의 아동이 입소하여 농촌유학생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산촌유학센터는 사회복지시설이 아니어서 철저히 수요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제도입니다. 고가를 부담하고라도 도시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농촌에서 키우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지역아동센터는 매우 훌륭한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학습은 물론 과학실험, 플롯, 바이올린, 기타, 드럼등의 프로그램들이 매일 진행되고 전문상담사가 상담도 진행합니다. 이 프로그램들을 병행할 계획이며 더불어 농촌체험도 하고 전통놀이도 하여 다소 느슨하더라도 도시의 아이들도 농촌의 아이들처럼 과도한 경쟁이 없는 자연환경에서 키워내고자 합니다. 저희교회 주변은 자연환경이 매우 좋습니다. 교회는 야산과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교회 앞은 맑고 큰 시냇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엔 아이들이 물놀이도 하고 고기도 잡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400평 정도 되는 마당엔 잔디가 깔려있어서 아이들이 전통놀이와 축구 등을 하면서 마음껏 뛰어놀고 모래밭도 있고 트램플린(방방이)이라는 놀이기구도 있어 매일 신나게 놀이하고 있습니다.
새로이 시작된 산촌유학센터를 통해 저희교회가 지역을 살리고 아이들부터 도농이 교류하는 건강한 지역을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산촌유학센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자라나면 이곳이 그들의 외갓집처럼, 고향처럼, 고향교회처럼 여겨지며 그들에게 좋은 신앙의 뿌리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농촌교회가 산촌유학센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복지시설은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이제는 농촌교회가 시작하기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지역아동센터는 종사자 기준과 시설 기준을 갖추어야 하고 진입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자력으로 2년 이상을 운영해야 하는데 요즘은 학교와도 경쟁을 해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아이들을 방치했던 학교가 지금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아이들에게 방과 후 교육도 하고 엄마품돌봄교실 같은 지역아동센터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 농촌교회가 새로이 복지시설을 시작하여 안착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농촌교회가 산촌유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촌교회에 아이들이 넘쳐나면서 활력이 생기고 교회가 젊어지고 도시민들이 자주 찾게 되어 도농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활동하다보면 또 다른 에너지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여 다른 농촌교회들도 산촌유학센터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도화교회에 부임할 때 교회 재정은 고갈되어 3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고, 지역에서 비난받는 교회였으나, 이제는 어린이 사역과 노인사역들을 통해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2010년에는 1억원 가까이 예산을 들여 교회와 사택 리모델링을 하였습니다. 70평의 교회가 성공적으로 리모델링되어 매우 아름다운 교회로 변모하였습니다. 리모델링을 하고자하는 교회들이 자주 방문하는 농촌의 아름다운교회가 되었습니다. 네 분의 장로님들이 충성스럽게 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 여러 명의 권사님들이 솔선수범하여 크고 작은 일들에 기쁨으로 섬기고 있으며 이를 본받아 모든 성도들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농촌교회이지만 날마다 사람들이 들끓습니다. 새로 등록한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도화교회는 매일 잔칫집 같이 활발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농촌인데도 아이들이 날마다 바글바글합니다. 교회마당엔 자동차들이 매일 7~8대씩 주차하여 있어 저희는 교회마당을 가리켜 농담으로 '중고차 전시장'이라고 합니다.
저희 교회 식구들이 소망하며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산촌유학센터 전용건물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지금은 산촌유학의 아이들이 비좁은 사택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올 봄에 교회옆에 365평의 땅을 매입하여, 건물을 세우고자 기도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노인 성도님들 가운데 독거노인 분들과 자식들은 도시로 떠나고 농촌을 지키고 계신 노인 성도님들이 여러분 계시는데 이분들은 항상 저에게 부탁을 합니다. '목사님! 저희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 그룹홈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날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으며, '농촌선교 모델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했던 저희 교회를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고, 축복하여 사용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하는 일들이 다른 농촌교회가 하고자 하는 일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다음 까페, "희망나무숲 산촌유학센터"에 오시면 지역아동센터와
산촌유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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