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많아 말을 짧게 했습니다,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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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수용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수용은 그 발전 단계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1.오사운동에서 1927년까지의 1차국내혁명전쟁시기로서, 이 시기는 마르크스주의 철학 체계 중 주로 사적 유물론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고, 지식인들도 사적 유물론을 응용, 중국 혁명에 대한 실제적 문제를 해결하려 든 시기였다. 둘째 시기는 대혁명 실패 이후 1930년대 중반까지로, 이전에 비해 대중적인 확산이 있었고 셋째 시기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49 인민공화국 성립 이전가지인데, 이때 중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중국 혁명의 실천이 상호 결합, 모택동 사상, 즉 맑스 철학의 중국화가 이루어진 시기다. 즉 오사는 일차 시기로써 마르크스주의 철학 체계가 신문화 운동을 통해 대략 소개된 정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반전통반봉건의 기치 아래 시작된 중국의 신문화 운동은 54직전까지 서구 문명을 지향하다가 54를 통해 방향을 수정하게 되는데 이 때 사회주의는 중국의 전통-서구의 지배를 동시에 거부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사회는 반식민지반봉건이라는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이런 구조에 서구 사회의 발전 과정을 바탕으로 한 계급구조와 이를 근저로 한 이념 체계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었다. 결국 이는 54이후 조직화되어 가던 노동자와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던 농민에게서 혁명성을 이끌어 내 대자적 계급으로 성장시키려는 노선을 선택하는 이유가 된다. 중국의 이러한 특성은 중국 지식인이 맑스주의자가 되기 전에 먼저 공산주의가 되는데에서 보여진다. 선실천 후이론이라는 말이 54시기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특징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 한다.
아나키스트의 개념이 중요한데, 아나키스트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무정부주의’라는 표현은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이 꺼리는 표현이다. 그들은 자유연합주의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대개 이러한 개념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사운동 당시의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당시 중국의 맑시즘 내지 사회주의는 소개되고 있는 초기연구단계이므로 이들간의 전향 아닌 전향이 많았을 것임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에스프란토 어는 폴란드의 안과의사 자멘호프 박사가 1887년에 만든 세계 공용문자로서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에스프란토는 자멘호프 박사의 필명이기도 하다. 이 문자를 발명한 목적은 언어와 문자의 통일을 통해 세계평화를 이루고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고자 함이다. 그래서 이 문자가 만들어진 초창기부터 상당수의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이념과 이 문자가 합치된다고 보아 관심을 가지고 학습했다. 그런 관계로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한 흐름 속에 에스프란토 어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 사회에 에스프란토 어를 소개한 것 역시 사회주의자였다. 특히 이는 청말민국초와 신문화운동 시기 문자 개혁 운동의 흐름 가운데 놓여있다. 중국 최초의 아나키스트 잡지인 ‘신세기 :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와 ‘천의 : 일본 동경에서’에 에스프란토 기사가 꽤 실려있다. 이후 러시아 아나키스트 스테파니와 그의 자살 후 에로센코의 활약이 인상깊은데 특히 에로센코는 상해로 건너와 에스페란토 어를 가르친다. 중국, 일본, 한국인 아나키스트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의 한 마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사회주의자는 에스페란토주의자여야 한다. 또 모든 에스페란토주의자는 사회주의자여야 한다’ 요컨대, 근대 중국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기본적으로 아나키스트에 의해 고취되었으며 특히 청말 민국 초부터 오사운동을 전후한 시기는 언어 문자 개혁운동과 결합해 문화급진주의의 정점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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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한 답은 소개하는 측면이 강하네요. 오늘 교수님 말씀의 취지와 대개 비슷합니다.
오늘 답변에서 보다 쉽게 설명하려 한 것이 백화문 관련 운동에 대해 잘못 말씀드리는 것으로까지 되어버렸는데,
백화문을 쓰는 것은 문법적인 측면이 아니라 문체적인 측면의 개혁이 더 강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언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지요? 교수님께서 한국의 예를 드셨는데, 그 부분도 참조해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황재영 학우님의 질문에 대해 더 충실히 답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