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득하게 일기장이나잘 채워서 자자손손 물려줘라.
도스토에프스키의 《罪와罰》에서 법대생인 라꼬리나코프의 두 사람을 살인한 일로
그를 밉다거나 저주한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죄와벌은 명작임에 틀림 없다.
여기에는 주인공 라코리나코프가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죄과를 치른다는 줄거리에서 독자의 관심을 끈다.
결국 惡人의 존재가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명작인 박경리의《토지》에서악인은 이준구다.
그는 먼 친척으로 어린 서희를 돌본다는 명분으로 많은 토지를 자신의 손아귀로 넣었다.
물론 그는 서희를 중심으로 뜻을 함께하는 인물들로부터 위신을 구기지만
광산에 투자하라는 계략에 걸려 패가망신하고 병신자식이라고 갖은 학대를 일삼던 하나뿐인 아들품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惡人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엔 도드라지게 내세워서 저주를 퍼부울 만한 惡人이 없다.
그래서 내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거저 그냥 평범하게 살아온 듯하다.
고만고만한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크게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삶을 살아왔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까지 집에서 통학했다.
4킬로미터의 거리로 흔히 10릿길이라고 하는데 그 길을 왕복하며 국민학교 졸업식날 6년 개근상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지각과 조퇴기ㅡ 잦았기 때문에 그 희망이 무산된 아픔이 있다.
비나 눈이 많이 내려도, 너무 춥거나 더워도 반이 결석하는 마을이지만 나는 악착같이 출석했었다.
그런 덕분에 촌놈이 상위권 성적에 들긴했다.
그렇게 5학년이 끝나갈 무렵부터 읍내에서 학교 다니게 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될성부른 아이니까 공부를 제대로 시켜보자. 그런게 아니었다.
큰대고모님을 작은 대고모님네 아제가 가까이 모시고자 하는 효심이 나를 끌어들인 것이다.
이대목에서 그 아제는 나에게 惡人일까?
그는 이모를 극진히 모시진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건 높이 사야한다.
고모의 친조카인 내게 삼촌이신 분이 아버지를 포함해서 자그마치 8형제이다.
물론 내게 고모도 두 자매가 있다.
한 분이 장녀였지만 마흔에 요절한 것으로 안다.
한 분이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한 남편을 따라 일본에 정착한 후 집안에 많은 보템을 줬다.
나는 그 둘째고모 덕을 제일 많이 봤다.
무슨 연유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큰 대고모를 모신 것을 예쁘게 보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그 많은 조카 중에 그들의 홀로된 고모는 결국 마지막까지 작은 대고모의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