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디베이트와 디베이트
1. 토론(디베이트)의 기원과 K-CEDA
우리가 배우는 디베이트는 그리스 아고라에서의 토론 또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술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재판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사실토론과 닮아 있습니다.
재판은 검사의 공소제기-변호사의 반론-증인심문을 통한 사실관계의 확인-변호사의 반대심문 또는 피고의 최후진술-검사의 구형-판사의 판결 순으로 진행됩니다.
입론과 반론,재반론,최종변론의 순으로 진행되는 이 재판의 진행은 디베이트의 다른 모습입니다. 최초의 디베이트 포맷은 영국의회의 정책 토론에서 따온 영국의회식(1820년대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간 토론회에서 처음 사용)과 1858년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 선거 토론으로 촉발된 링컨더글라스 디베이트 포맷이 있습니다. 이 링컨더글라스 토론은 가치토론의 전형이라고 합니다. 즉 서양에서 유래한 토론 방법은 대체로 정치 사회적 이슈나 철학적 가치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런 토론의 형식이 소개된 우리나라 최초의 책은 제가 아는 한 2001년 강태완 등이 지은 <토론의 방법>이라는 책에서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황연성 선생 같은 분은 1990년대 후반부터 초등학교에서 토론 포맷을 활용해서 토론 수업을 했는데 그 결과물로 <신나는 디베이트>라는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황연성 선생은 일본에서 교재를 가져온 스승의 도움으로 토론의 방법을 배웠다더군요. 반론펴기, 반론꺽기 등의 표현은 황연성 선생이 최초로 쓴 표현입니다.
K-CEDA를 창안했다고 하는 이 협회의 포맷은 미국의 대학간 토론대회를 주도하고 있는 CEDA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협회 회장님께서는 CEDA와 퍼불릭포럼 디베이트를 통합하여 K-CEDA의 마지막 글자 A의 차이(Association과 Approach)를 언급하면서 미국과 우리나라의 토론 수준이나 접근 방법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CEDA는 미국교차토론협회의 토론포맷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포맷과 독서 디베이트를 결합하여 고안하신 회장님의 노고를 인정하면서도 제가 굳이 역사를 들먹이는 것은 이런 과정에서 어디까지 모방이고 어디에서 부터 독창성을 갖는지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2. 디베이트와 민주시민교육
저는 독서 디베이트의 철학과 가치를 강조하면서 디베이톨로지라는 학문의 영역으로 발전시킨 회장님의 혜안에 감탄하면서도 그 접근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디베이트는 방법론이기 때문에 그 속에 어떤 내용을 넣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방법론 속에는 보다 정교한 논리성과 설득력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논리학과 수사학적 접근법을 강조한 이유입니다. 철학과 가치를 넣을 것이냐 논리학과 수사학을 강조하는 것이 맞느냐의 논쟁이 아니라 학문의 범주에 대한 생각입니다.
중고등학교에서의 디베이트 논제가 철학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는데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디베이트 방법론만으로 철학과 가치를 배우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 사유를 위해 독서디베이트가 필수적이라고 얘기한다면 그에 대해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디베이트, 즉 방법론을 학문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저는 디베이트가 우리 청소년들에게 자기주도적 학습의 주요한 방법일 수 있다는데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키우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디베이트를 통해 배려, 경청, 규칙의 준수, 리뷰 능력, 분석과 판단(순발력) 더 나아가서는 문제해결 능력, 틀림과 다름의 차이 인식 능력, 비판의식 등은 민주주의 덕목에 속한다고 봅니다. 디베이트는 자율과 책임감을 길러 학교 내에서는 물론 사회인이 되어 소통과 화합을 위한 지도적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적 인물들이 하나 같이 공사구분 못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더욱 간절하게 디베이트를 통한 통찰력 함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디베이트 학습을 통해 주어진 것을 베끼기 보다는 자기 것으로 만드는 훈련, 선택은 필연적으로 책임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청소년기부터 익히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며 이는 디베이트 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독서디베이트의 궁극적인 목적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질문법, 본질에 대한 통찰, 구조 분석 등을 디베이톨로지로 승화한 회장님의 견해를 수용한다하더라도 이는 독서 디베이트에서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 이슈나 철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논제 속에서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서양의 디베이트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독서디베이트가 발전하고 있는 이유는 일정 부분 학부모들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최근 학교 교육에서도 토론 수업을 강조하고 있지만 민주적 시민교육으로 승화하진 않고 있습니다. 반면 독서디베이트는 독서교육 열풍과 함께 토론에 익숙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까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토론대회를 개최한다고 공고가 나면 초등학생은 단 몇시간만에 마감되지만 고등학생은 미달사태를 빚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참으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우리 흥사단에서 만이라도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디베이트 동아리 활동을 호라성화 시키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의 잘못된 욕망을 고쳐보고자 하는 마음인데 독서디베이트는 그 잘목된 욕망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초등학생의 경우 디베이트 공부의 선택권은 아이들이 아닌 엄마들에게 있는데 디베이트를 가르치는 강사들이 접근하기 좋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사업 영역이 되어 버린 겁니다. 디베이트가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으로 거듭나려면 이런 부분부터 변화가 필요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민주적 시민교육이 필요하므로 디베이트 학습에 대해서 만큼은 청소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초등 고학년부터 디베이트를 학습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저는 디베이트의 출발 지점을 참여형 교육 방법에서 잡고 있습니다. 두마음토론, 피라미드토론, 모서리토론, 포토스탠딩 토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원탁토론, 회의진행법, 리빙라이브러리, 월드카페 등을 1단계로 하고 2단계에서 디베이트 방법을 가르치고 논제를 점차 다뤄나갑니다. 낮은 단계의 사실논제에서부터 높은 단계의 철학적 논제에 이르기까지 다룹니다.
3. 운동과 비즈니스
운동은 사회변화를 지향합니다. 회장님께서도 교육 분야에서 변화와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니 그건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기본적으로 운동은 비영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영리 조직이라 하더라도 그 조직에서 근무하는 활동가들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활동비를 받는데 그건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에 의해서거나 노동의 댓가로서 받는 것입니다. 제가 굳이 운동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은 이 카페와 회장님의 활동이 (교육)운동을 왜곡할 수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물론 회장님께서 하시는 일이 영리적 목적을 추구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비영리단체라 하더라도 수익을 내기 위해 노력을 하니까요? 다만 단체와 활동가들이 수익을 내는 사업을 할 때는 분명히 우린 이런 수익사업을 한다고 얘기합니다. 이 사업과 운동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교육운동을 가장 열심히 하는 단체를 꼽으라면 저는 서슴없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꼽습니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연간 수억원의 회비 또는 후원금으로 운영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교육문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교육 문제, 선행학습 문제, 학벌 사회문제, 진로교육 등에 대해 전문적인 이슈들을 뽑아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거나 보도자료, 시위, 토론회 등을 통해 사회문제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학습방법의 개선을 위한 이 협회의 노력이 수많은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2011년 초에 우리나라 디베이트를 대중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한 케빈 리는 그 의 책 제목을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라고 지었습니다. 교육혁명을 하겠다는 취지로 읽습니다. 그런 그도 교육운동을 한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가 이끄는 투게더 디베이트클럽은 주식회사로 운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협회는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비영리 단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운동을 써도 된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단법인은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까요? 저는 제가 흥사단운동 또는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고 얘기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시민운동가라곤 하지 않습니다.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카페에 운동의 목표를 제시하면서 자칭 교육운동가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저의 부끄움과 회장님의 당당함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을 느낍니다. 진짜 어려운 조건에서 교육운동과 시민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이런 상황을 본다면 어떨까 하는 조바심마저 납니다.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조금 길지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독서디베이트 보급을 통해 교수학습 방법을 바꾸고자 열망하는 디베이트 전문가’...
미안합니다. 함부로 회장님의 숭고한 취지를 무시했다면 말입니다. 제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 교육의 문제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힘쓰면서 생명까지도 역사발전의 제단에 바친 운동가들의 숭고한 모습을 희화화하지 마시길 바라는 충정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4. 디베이트와 독서토론
저는 30여년전 대학 1~2학년 시절 거의 매주 한차례 독서토론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주제가 정해지면 텍스트를 2~5권 정도 정해서 읽고 토론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토론 방식은 앞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기조 발제와 질의응답-문제 제기-토론 주제 3~5개 선정(발문)-토론- 결론으로 진행했습니다. 그 방식이 옳다고 강변하고 싶진 않습니다. 제 경험을 얘기하는 것은 한권의 텍스트 속에서 발문을 통해 논제를 이끌어 내고 디베이트를 벌이는 독서 디베이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디베이트의 기원이 사실, 가치, 정책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토론이라는 것과 독서디베이트는 차원이 다르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디베이트는 독서토론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 협회는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언어의 유희를 즐기고 있다고 까지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 논쟁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 실린 <독서디베이트>에 대한 제 소회를 적은 글에 ‘답글’(그 글의 정확한 표현은 ‘독서디베이트에 대한 답글’입니다)을 쓰신 회장님께서 이 카페에서는 ‘독서디베이트 공격하기’라는 글로 저를 자극해서 촉발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3년 동안 이 카페를 드나들면서 배운 많은 생각과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민망함을 느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차제에 제 생각의 일단을 드러낸 제 글이 독서디베이트를 공격하는 것으로 표현한 회장님께 다시한번 제 생각과 의견을 표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제 표현이 과도했거나 회장님의 뜻을 왜곡한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문제제기를 하셔도 좋습니다.
여기 실린 제 글이 혹시 카페 회원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서는 제 글에 대해 얼마든지 항변해도 좋습니다. 여기서 어렵다면 제가 운영하는 다음카페 ‘흥사단디베이트연구회’로 오셔서 글을 남겨두셔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디베이트코치협회의 무궁한 발전과 회장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세차례 동안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흥사단디베이트연구회 김전승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