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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파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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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전파 음악의 정의 음악사적으로는 바로크 시대와 낭만파 시대 사이의 음악을 말하며, 굳이 시기를 나누자면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일어난 음악 활동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2. 왜 '고전파 음악'인가?사람에 따라 정의는 다르겠지만, '고전(classic)'이라는 말은 어떤 사조나 작품 기타의 것들이 발생한지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 그것이 특정한 사상이나 양식 등을 사용하고 그 대표성을 인정받을 만할 때 붙일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모든 시대의 음악과 달리 이 시기의 음악이 특별히 '고전파 음악'이라고 대접받게 된 것은 이 음악들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낭만파 음악가들이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시대의 음악이 정연한 형식적 구성을 갖추었고, 당시 그들이 사용하던 여러 가지 음악적 기법들의 훌륭한 예를 제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불어 그 이전의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서는 - 물론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도 사용되고 있었지만 - 그러한 규범적 요소가 부족했고 잘 정리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의 음악에 '고전'이라는 용어를 붙여 준 것이었다. 3. 시대적 배경고전파 음악의 융성시기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에서 1812년 나폴레옹의 패퇴에 이르는 시민 혁명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토지에 기반을 두었던 종래의 귀족들에 대해 대부분이 상공업자였던 부르주아지의 힘이 폭발하게 된 것이 시민 혁명인데, 이것은 음악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종래의 귀족들은 어릴 때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음악적인 교양도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토지를 경제적 기반으로 하였으므로 그만큼 안정적인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고 주로 사교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음악가를 고용하여 음악회를 여는 일이 잦았고 이에 따라 음악가들은 특정한 스폰서의 보호를 받아 음악 활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바흐의 스폰서는 교회였고(몇 번 옮겼다), 헨델은 평생을 떠돌다가 마지막에 영국 왕실을 스폰서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전파 시대에는 귀족이 몰락하고 부르주아지가 사회의 주도층이 되는 관계로 종래의 스폰서 체제는 차츰 사라지고 대신 공개 연주회나 악보 출판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음악가들이 살아가기 시작했다. 하이든은 평생 대귀족의 궁정악장으로 있었지만, 모차르트의 경우 그의 마지막 10년은 완전히 자유로운 활동을 하고 있으며, 베토벤은 몇몇 귀족의 후원을 받으면서도 거의 독립적인 예술가의 생애를 보냈다. 둘째, 사회적 변화는 곧바로 음악적 변화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음악의 주요한 고객이 좀더 교양이 낮은 부르주아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은 좀 더 듣기 쉽게 만들어야 그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전시대의 다성음악(polyphony)적 기법보다는 단순한 단성음악(homophony)적 기법을 사용한 음악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호모포니라고 해서 중세에 있었던 형태, 즉, 한 순간에는 하나의 음만 나타나는 형태는 아니고, 주선율이 뚜렷이 드러나고 다른 음들은 화성적 반주에 그치는 것이었다. 또, 고전파 시대에는 폴리포니 기법도 풍부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나 어느 정도 복잡함을 더해주기 위해서 사용되었으므로 완전히 호모포니에만 기초하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음악적 퇴보라고도 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낭만파 시대까지 이어지다가 근현대 음악에 와서 변화를 맞는다. 셋째, 부르주아지의 성장으로 청중이 차츰 대규모화되면서 관현악은 대편성화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려면 넓은 공간을 필요로 했으며 마이크가 없던 그 시대에는 그 공간에 적합한 크기의 소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경향 역시 낭만파 시대까지 이어지고(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그 정점에 있다), 근현대 음악에 이르러서야 축소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넷째, 계몽 사상의 성장과 사회에서 종교적 영역의 축소는 종교 음악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전 시대에 비해 미사곡,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의 작곡은 현저히 감소하였다. 주로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하였던 오페라 분야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이 쓰여졌으며, 특히 '피가로의 결혼'이나 '피델리오'에서처럼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오페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 음악적 특징폴리포니가 호모포니로 바뀌었다는 점이 바로크 음악에 대한 고전파 음악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혁명적이라 할 만한 것은 못되었다. 기타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바로크 음악의 잔재는 곳곳에 남아 있는데, 종교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오페라 분야에서는 레치타티보(recitativo)나 다 카포 아리아(레치타티보-A-B-A의 형태)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화성법과 대위법에 관련된 변화는 그것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이므로(사실은 저도 잘 모름) 여기서 소개할 수는 없고, 다만 몇 가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것들만 소개하겠다. 첫째, 소나타 형식의 원리가 확립되었다. 바로크 시대에 소나타라고 하는 것은 고전파 시대 이후의 소나타와는 좀 다른 것인데, 연주한다는 뜻의 'sonare'가 소나타로 되고 노래한다는 뜻의 'cantare'가 칸타타가 된 것에서 출발하여, 교회 소나타와 실내 소나타의 두 가지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소나타 형식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낭만파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낭만파 시대의 음악가들이 고전파 시대에 작곡된 '소나타'란 명칭의 곡들을 분석한 결과, 한결같이 제1악장에는 복수의 주제가 나타나며 이것을 전개함으로써 악곡을 구성해 나간다는 점을 발견하였고, 이에 따라 이 형식을 '소나타 형식' 혹은 '제1악장 형식'으로 부르게 된 것이었다. 소나타 형식이 전 시대의 음악 형식에 대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하나의 악곡에서 복수의 주제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바로크 시대에는 하나의 악곡에는 하나의 주제밖에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단일 주제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복수의 주제가 나타나는 것으로 바꿈으로써 음악 전개에 있어서 재미와 다양함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소나타 형식은 당대의 계몽사상이 추구한 균형과 조화라는 사조를 반영하기도 하는데, 제시부-전개부-재현부의 형태는 균형 잡힌 이성의 전개를 나타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하겠다. 둘째, 음악에 있어서 다이나믹(dynamics)의 변화가 좀 더 다양해졌다. 바로크 시대에는 셈여림을 바꿀 때 단지 피아노(p)에서 포르테(f)로 하는 등 단계적 강약 변화밖에 없었는데, 이 시대에 와서는 점점 세게(crescendo)와 점점 여리게(decrescendo 또는 점점 약하게(diminuendo)의 강약 변화를 하게 되었다. 이는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의 발명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함머클라비어는 이전의 쳄발로(cembalo, harpsichord, clavecin)이 할 수 없었던 강약의 조절이 가능했으며, 이 점으로 말미암아 강약 변화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셋째, 교향곡의 탄생이다. 원래 신포니아(sinfonia)라는 것은 오페라나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 여러 곡으로 이루어진 성악곡을 연주하기 전에 순수한 기악곡으로 연주하던 것이었는데, 이것이 고전파 시대에 독립적인 다악장의 곡으로 변모하였다. 형식적으로는 당시의 소나타를 관현악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었다. 넷째, 협주곡의 변화이다. 바로크 시대까지 협주곡은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 독주악기군과 관현악이 대립하는 형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좋은 예)이 대다수였는데, 바로크 시대에 토렐리 등에 의해 발전한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를 대등하게 놓고 다채롭게 대비하는 형태가 고전파 시대에 와서는 주류를 차지하였다. 카덴차가 제1악장 말미에 첨가되는 것이 확립된 것도 이 시대에 이루어졌다. 다섯째, 성악 부분에서는 리트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종교적인 주제보다는 예술시를 텍스트로 사용한 가곡은 중세 음유시인의 노래에서 출발하여 17, 18세기에 조금씩 발전하였다. 이것이 모차르트, 베토벤에 와서는 시와 음악의 결부가 두드러지고 반주부가 성악에 못지 않는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리트의 황금기는 낭만파 시대이지만 이미 이 시대에 그러한 발전의 기초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위에 소개한 내용들 외에도 고전파 음악은 많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나 자질구레한 것들이므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뭐니뭐니해도 고전파 음악의 가장 대표적 업적은 소나타 형식의 확립과 다이나믹의 다양화일 것이다. 5. 대표적 음악가들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누구나 고전파 음악의 대표주자로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이들만이 고전파 시대의 음악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과 동시대에도 수많은 작곡가들이 있는 것은 당연할 터이고('아마데우스'에 나온 살리에리 같은 사람들) 그 직전의 전고전파 시대의 인물들에도 주목해야 한다. 스카를라티나 C.P.E.바흐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후일 빈 고전파가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는 음악적 토양을 마련하였고, 그러한 점에서 이들의 공헌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6. 고전파 음악의 감상과 비평에 있어서의 유의점하인리히 솅커(Heinrich Schenker)라는 음악학자가 쓴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이라는 책을 보면 관심을 가질 만한 경고가 나온다. 그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베토벤은 천재이다. 그의 천재에서 나온 음악을 두고 어찌 범인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가. 그들은 과연 그 음악을 알고서 이야기하는 것인가? 이런 경향이 생긴 것은 전적으로 리스트와 바그너의 책임이다. 이 사람들은 베토벤의 음악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무식한 대중의 취향에 맞도록 변질시킴으로써 오늘날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 책은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에 대한 음악적 분석을 하고 그에 기초하여 연주할 때의 지침을 만든 책인데, 책의 곳곳에서 리스트와 바그너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 외에는 모두가 틀렸다는 식으로 써내려 나가고 있다. 오직 천재만이 천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시사하는 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들이 음악을 들을 때, 감성적인 면에 치중하는 것은 사실이며, 나쁘게 말하면 오직 귀의 쾌감만을 중심으로 음악을 듣고 또 비평할 때에도 그렇게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위대한 음악가들이 음악을 작곡할 때에는 그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면서 그들이 습득한 기법들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특히 고전파 시대에 있어서는 낭만파 시대와는 달리 문학 역사 등 음악 외적 요인보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곡을 쓴 경우가 많으며, 이를 위해 자신이 지닌 역량을 총동원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고전파 음악의 감상에 있어서는, 물론 우리들의 감성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특히 레크리에이션의 일환으로 편안히 듣고자 하는 경우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음악을 느끼고 음악과 일체감을 갖는다면 되는 것이다.), 음악의 분석을 토대로 작곡자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음악 내에서 구현하려고 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일을 할 만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관계로 어려운 일이 될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설사 그러하더라도 우리는 고전파 음악이 갖는 특성 - 특히 구성 측면 - 에 대한 이해를 갖고 그에 따라서 음악을 감상해 보려는 시도조차도 전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음악의 중요한 부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음악에 대해 함부로 비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그러나 위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음악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설사 그것이 원래 음악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과 동떨어진 것이라도, 다시 말해서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도, 자신이 그렇게 이해하고자 하는 적절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그의 연주는 낭만주의 전통에 따른 해석이며 특히 바그너의 해석 방식에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음악의 연주가 또 하나의 음악의 재창조 과정으로 본다면 그의 연주 역시 나무랄 데가 없는 연주로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반면에, 요즈음의 정격 연주 시도는 정반대의 입장에 선 것으로 고전파 음악의 본질을 발굴해내고자 하는 뜻을 나타낸다. 고전파 음악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반드시 당시의 악기를 사용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다 정확한 재현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해도 현대 악기로 고전파 음악을 연주하면 정격 연주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보지는 않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교향곡 연주는 카라얀의 연주이다. 60년대 그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은 그때까지 푸르트벵글러식, 즉, 낭만주의 전통으로 일관한 연주에 대해 고전적 전통에 입각한 그의 연주가 신선함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