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남긴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精麗한 세계적 수준의 걸작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아울러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문화재로 인하여 민족문화의 寶庫로 상징되는 신라천년의 고도인 경주와 그 주변지역을 답사한다는 것은 크게 세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첫째, 신라 천년의 歷史的 史實들을 문헌이 아닌 현재까지 남아있는 遺蹟과 遺物들을 통해 편린이나마 읽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주지역의 문화유산을 통해 한국고대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기초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둘째, 현대적인 의미로서, 영광을 누리던 한 시대가 역사의 운명 속에서 생명을 잃고 침몰할 경우 그들이 남겼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유물들이 후손들과 외부의 적에 의해 어떻게 유린되는가 하는 것을 극명하게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문화유산들이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을 滿身瘡痍의 상태로 이어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과정의 답사를 통해 우리는 결과적으로 오늘날 정부가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으며, 그러한 관리체계가 얼마나 심각하게 문화재를 훼손시키고 있는가를 알게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여정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신라의 역사문화 유적의 답사는 석굴암과 불국사 그리고 안압지와 첨성대 또는 황룡사와 천마총 등에서 뿌듯하게 느끼는 문족문화의 자긍심의 裏面에는, 통일신라의 高麗歸附이후부터 버려지고 잊혀진 역사의 현장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가릴 것 없는 우리라는 공동체는 빈곤한 역사의식을 지닌 민족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체험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아래 떠나는 신라 역사문화 유적답사가 좀더 알차고 의미있는 여정이 되게 하고자 나름대로의 답사코스를 제시하고자 한다. 답사를 다니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지역별 코스를 선택해서 답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인근한 지역에 있는 관련 유적지를 동시에 볼 수 있어 시간과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신라문화를 전체적으로 또는 시대별로 이해하는데는 한계를 느끼는 단점이 있다. 즉, 경주지역 전반을 다 답사한 연후에야 신라 역사문화유적을 유기적인 연관아래 유기적인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방법인 주제별코스는 한차원 높은 답사방법으로 얻는 것이 많은 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단점이 있다. 먼저 주제를 선정해야 하는 점과 그 주제에 해당하는 유적지와 유물을 선별하는 안목을 가져야만 한다. 만일 주제별 코스를 선택하여 답사를 성공리에 마칠 경우 해당분야의 관련지식을 짧은 기간 안에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답사지역의 중심지역과 인근지역에 대한 관련자료를 참고하면 주변지역에 대한 답사를 실시하지 않더라도 유적과 유물에 대한 유기적인 이해는 훨씬 빠를 것이다.
여기서는 주제별 코스는 다음으로 미루고 먼저 지역별 코스를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에 제시한 답사 코스는 비단 경주 뿐 아니라 경주를 중심으로 인근지역까지 포함하여 신라 역사문화를 느낄 수있는 총25개의 코스를 제시하였다. 하나의 코스를 답사하는데는 데체로 하루동안에 돌아볼 수 있고 소요시간은 대개 5시간내지 6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단, 경주에서 출발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였고 답사지마다 최소 20분에서 최대 60분 정도의 학습시간을 배려한 것임)
2. 안강지구(승용차) : 옥산서원, 독락당, 정혜사터 십삼층석탑, 금곡사터, 흥덕왕릉, 신광 냉수리신라비, 법광사터
*양동마을은 신라문화권은 아니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찾는 것이 좋다. 하루종일 둘러보아도 모두다 볼 수는 없다.
*답사참고자료 : 정혜사터심삼층석탑중수기, 법광사석탑기, 냉수리신라비문
3. 언양지구(승용차) : 천전리 각석, 반구대 암각화, 간월사터, 통도사
*천전리 각석은 오전에 햇빛이 들고, 반구대 암각화는 오후 늦게 햇빛이 든다. 또 가뭄이 심할 대 찾아가면 냇물을 건너 갈 수 있으며 그러지 못할 때는 망원경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통도사의 성보박물관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불화를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불화의 보호를 위하여 관람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오전에 1시간정도 오후에 2시간 정도 관람이 가능하니 미리 시간을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답사참고자료 : 천전리 서석 원문 및 추명
14. 남산3(등산) : 배리삼존석불입상, 삼릉, 전경애왕릉, 삿갓골 여래입상, 냉골 목없는 석불좌상, 마애관음보살상, 선각석가·아미타삼존불, 마애선각석불좌상, 석조여래좌상, 상선암마애대불좌상, 상사암, 용장사터
*상선암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15. 토함산1(승용차) : 석굴암, 불국사, 마동삼층석탑, 구정동방형분, 성덕왕릉, 전효소왕릉, 조양동고분군
*시간이 허락한다면 마동삼층석탑부근의 신라역사과학관에서 석굴암 모형을 관람하는 것도 좋다.
16. 남산4(등산) : 상서장, 남산토성, 장창골미륵삼존불 출토지, 부엉골마애여래좌상, 늠비봉 폐석탑(복원계획), 늠비봉 폐사리탑, 약수골 마애대불입상, 약수골 석조여래좌상
*부엉골의 부흥사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17. 서형산지구(등산 및 도보) : 전김인문묘, 전김양묘, 태종무열왕릉, 서악동고분군, 선도산마애삼존불, 전진흥왕릉, 전진지왕릉, 전헌안왕릉, 전문성왕릉, 서악동삼층석탑, 서악서원
*선도산마애삼존불에서 경주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선도산 마애삼존불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18. 단석산(등산) : 단석산신선사마애불상군, 단석산동록마애여래좌상, 단석산상제암마애여래좌상
*단석산을 종주하기 때문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도착지에 미리 차를 대기시켜두어야 한다. 또한 안내자 없이 초행 답사는 거의 불가능하다.
*신선사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답사참고자료 : 단석산 신선사 조상명기
19. 낭산(도보) : 전미탄사터삼층석탑, 구황동폐사지 석탑재, 황복사터삼층석탑, 추정신문왕릉터, 전진평왕릉, 보문사터, 전효공왕릉, 전신문왕릉, 망덕사터, 사천왕사터, 선덕여왕릉, 능지탑, 현중생사마애지장보살
*낭산 코스에서는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준비해야 한다.
*답사참고자료 : 황복사 금동사리함기
25. 창녕지구(승용차) : 창녕 교동고분군, 석빙고, 진흥왕순수비, 인양사비, 술정동 3층석탑, 관룡사 및 용선대 배바위, 함안 아라가야고분군, 암각화
*시간이 허락한다면 관룡사에서 출발하여 배바위불상을 거쳐 화왕산성과 주변의 억새밭을 구경하고 창녕읍내로 하산할 수도 있다. 또한 우포늪을 찾아서 생태기행도 겸할 수 있다.
*진흥왕 척경비명
이상에서 제시한 코스를 참고삼아 관련자료들을 활용한다면 경주 및 주변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좋은 답사가 되리라 믿는다.
덧붙이고 싶은 말은 露天에 있는 유적과 유물은 찾아가는 계절과 그 시간대 햇빛의 유무에 따라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답사의 이미지를 좌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한다.
남산은 매년 4월 진달래가 불국정토를 불들일 때인 첫째주가 가장 이상적이며, 방향은 해를 따라 동남산에서 출발하여 서남산으로 종주하면서 등반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대개 서남산의 삼불사 또는 삼릉에서 출발하여 용장사터를 경유 동남산의 칠불암으로 하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햇빛의 진행방향과 반대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상에 살아 숨쉬는 종교적 실체로서의 모습은 체험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으니 가급적이면 동남산에서 서남산으로 종주할 것을 권하고 싶다.
또 동남산의 서출지는 7월말이나 8월초순이면 배롱나무꽃과 연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며, 신선암마애보살상은 해가 가장 남쪽에서 떠오르는 동짓날 아침에 바라보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자연광의 자금신광을 맛보게 될 것이다. 참고로 신선암에서의 동짓날 일출시간은 7시40분경이다.
불국사는 매년 3월말, 4월초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할 시점이 좋으며, 석굴암 일출은 11월과 12월초인 늦가을에 도전하는 것이 좋고, 단석산은 3월말 또는 4월초의 진달래가 만개할 때, 또는 10월말 11월초에 단풍이 절정일 때 서쪽인 우징곡에서 출발하여 신선사 마애불상군을 경유하여 정상에 오른 뒤, 동으로 종주하면서 상제암 마애불상을 본 뒤 방내리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특히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제암 마애석불도 좋지만 영천, 포항, 경주일대를 조망할 수 있으므로 종주를 권하고 싶다.
낭산주변과 보문동의 전진평왕릉은 9월말 10월초에 벼가 익어갈 때가 가히 환상적이며, 감은사와 대왕암일대는 계절보다는 신문왕이 감은사 낙성식에 참여하고 수중릉을 조영한 음력 오월초 또는 중순을 권하고 싶다.
또하나 굳이 덧붙인다면 雨中의 雲霧속에서 마주하는 남산 용장사터 삼륜대좌불과 삼층석탑은 가히 일품이다. 특히 삼륜대좌불의 경우, 대부분 정면에서 바라보곤 하지만 그 위치에서는 부처님이 높은 곳에 앉아계신다는 느낌과 조영양식이 특별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감흥을 얻기가 어렵다. 그러나 정면에서 약간 북쪽의 바위에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불상과 탑의 보수와 관련된 내용을 남긴 명문이 있는데 그 어간에서 자리를 잡고 바라보면 부처님이 앉아계시는 높이와 바라보는 자의 시각의 높이와 주위의 산능선이 동일선상에 놓여 고위산 정상과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산능선의 운무가 마치 수미산의 정점에 계시는 부처님을 휘감고 같이 돌면서 예불을 하고 있는 것같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끝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답사를 하는 동안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안압지와 대릉원 같은 잘 정비된 유적지에도 물론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그 보다는 들판의 한모서리 또는 이름모를 산간계곡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유적들에 더 많은 애정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자료검토를 통한 해당유적의 역사적 성격을 파악한 다음 계절과 시간대를 조정하는 등의 치밀한 계획만이 진한 감동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떠나는 답사에 도움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