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27. 소설가 이동하
홀어머니를 잃은 소년은 단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소설을 써야겠다고 작심한 것은 아마도 중2
때였지 싶다. 직접적인
동기는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밀고 올라온다.
1950년대 중반, 낯선
도시의 빈민촌, 가장
부재의 극한상황 속에서 당신은 마흔 수도
미처 채우지 못한 나이셨다. 훗날 나는 이 무렵의 궁핍한 삶을 중편 3부작 ‘장난감 도시’에 썼다. 지금 읽어보면, 내가 왜 중2의 나이에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그처럼 독하게 했는지 실감된다.
문학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소설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랬다. 나는 단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비정한 세계에서,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성장기에, 나와 내 가족들이 겪어야만 했던 그 가혹한 체험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고, 이야기하면서 가슴속에 고여 있는 울음을 퍼내고 싶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위로 받고 상처를 치유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다른 동년배 작가들에게도 공통적인 게 아닌가 생각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동기와 소박하지만 강렬한 이 욕망은, 두말할
것 없이 6ㆍ25 전쟁의 소산이다.
어머니의 죽음 뒤에는 전쟁이 있었고, 전쟁의 배후에는 폭력적인 세계가 있음을, 골방에서 오직 소설 쓰기에만 코를 박고 사는 동안 조금씩 깨쳐갔던 것 같다. 대학 재학 중에 쓴 단편소설 ‘전쟁과 다람쥐’가 등단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고 믿는다.
이 난폭한 세계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하찮게 망가지고 있는가를,
다람쥐 한 마리의 운명을 빌어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전쟁처럼 엄청난 폭력도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전쟁은 한결같이 절대적인 명분을
치켜들기 때문이다. 대량 살상도, 무자비한 인종 청소도 그래서 정당화된다.
지난 70, 80년대에 이르러 연작소설 ‘폭력연구’를 쓰면서 나는, 인간집단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이 이제는 인류 최대의 재앙이란 생각을 했다. 마침 폭압적 권력이 우리 사회를 숨막히게 지배하던 시기였다.
폭력은 폭력을 확대 재생산하고, 급기야는 인간성 자체를 황폐케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말하자면,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항 이데올로기나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라는 회의와 전율을 어쩌지 못했다.(다소 비약하는 건지 모르나, 지난해 전세계인을 경악케 했던 9ㆍ11 테러사건이 그랬다. 무자비한 폭력성 자체도 그러려니와 나를 더욱 경악케 한 것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살맛이 난다’고, 어느 젊은 시인은 말했다)
문학의 언어가 꼭 사랑을 담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엿먹듯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증오나 원한의 언어일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구호와 시는 어떻게 다른가? 편을 가르고 담을 쌓고 완전무장을 요구하는 언어가 구호라면, 시는 어깨를 겯고 담을 허물고 무장해제를 강조하는 언어인 것이다. 왜 문학을 하는가? ‘오직 사랑을 위해서’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대신, 오늘 우리들이 일용할 양식처럼 너무나 흔하게 중독되곤 하는
그 증오와 원한의 수렁으로부터 헤쳐 나오기 위해 나는 소설을 쓰고
있노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본즉,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지금까지 너무 거창한 소리들을 늘어놓은 것 같아 적지않게 얼굴이 뜨겁다.
굳이 의미를 붙여 말하라면 그렇다는 얘기일 뿐, 다른 꿍꿍이 속은 없다.
고백하자면 내가 굳이 소설을 쓰게 된 데는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소설을
쓰는 일은 이 세상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업이라는 자각이 그것이다. 저 50년대의 극한적 가난 속에서 어머니를 잃은 다음부터 나는 삶의 근원적인 허무의식 못지않게 생존의 위기의식에 심하게 내몰렸었다.
어쩌면 나와 내 가족들이 졸지에 엄동설한의 길바닥으로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는 식의 강박증에 늘 시달렸던 것이다. 손이 어설퍼서 어릴
적부터 딱지 한 장 제대로 접을 줄 모르고 팽이 한 개 깎을 줄 모르던
위인이었다. 평소 못 한 개 야무지게 박지 못하는 내 손을 가지고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가 도무지 가당찮아 보였다.
세상 사람들과 다부지게 맞서지 못하는 심약한 마음이 나를 책 속으로 숨게 했고, 망치 따위 일상적 도구조차 제대로 부리지 못하는 무력한 손이 원고지를 붙잡게 했다고도 생각된다. 어쨌거나 그것들 속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만은 저 도저한 허무의식으로부터도, 그리고 저
생존의 불안감으로부터도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써낼 수 있는 재주란 어쩌면 결핍에서부터 얻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남들은 흔히 가지고 있는 생활능력 같은 것을 아예 갖추지 못한 채로 등을 떼밀려 세상에 나왔거나 아니면 천방지축 어설프게 굴다가 일찌감치 엎어먹었거나, 그래서
결국은 달리 대책 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런 이들에게 소설은 대리만족과 함께 약간의 보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중2 이래 단 한번도 진로를 고민해본 적이 없다. 문학에
대한 신념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나로서는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탓이다.
그나마 내가 매달려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일이 소설 쓰기였던 것이다. 나라고 왜 다른 길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겠는가. 이런 점에서 보면 소설 쓰는 일이란 것도 생업을 위한 다른 일들, 일테면 농사를 짓거나 운전을 하는 일들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한번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30년 넘게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감정에 늘 부대껴 왔다고 생각된다. 열등감과 자부심이 그것이다. 나는 왜 남들처럼 삐까뻔쩍하게 살지 못할까라는 열등감과, 그래도 덜 속물 아니냐라는 자부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해 왔던 셈이다. 그런 중에도 오늘까지 나를 지탱해 준 것은 후자이다.
소설을 쓰고 문학을 한다는 행위가 별나게 의미심장한 것은 아니라고
치자. 그래도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 아니냐, 순수를 추구하는 사람들 아니냐 하는, 그런 자부심을 껴안고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믿음도 잃어버린 듯싶다. 남은 것은 뿌리깊은 열등감 뿐. 내 안에서 한사코 껄떡거리고 있는 속악한 욕망들을 더 이상
숨기거나 다스리기가 어렵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누구보다 더 속물적이고 몰염치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면서도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면, 어느 새
저 젊은 날의 문학적 열정도 순수도 다 잃어버린 채 빈 껍데기만 남아있는 기분이다.
‘이순’의 나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 들어 종종 자신에게 던져보곤 하는 물음 중 하나다. ‘불혹’과 ‘지천명’을 지나온
나이가 그것이라면 이순이란 어떤 말에도 감정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뜻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순의 문턱을 넘어서고 본즉 거기 가려져 있던 다른 의미가
알밤처럼 또렷이 만져진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라는, 다시 말해 당위를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고집이 세지며, 분별력은 떨어지고 낯가죽은 두꺼워지는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곧잘 벌컥벌컥 화를 터뜨리곤 한다. 자신을 돌아볼 줄도, 적절히 제어할 줄도 모르게 되는 것, 그것이 늙음이라면 이순의 교훈은 바로 ‘순해지고 또 순해져라!’는 죽비 소리가 아니겠는가.
돌아보면 나의 소설은 전쟁의 상처였고, 폭력적 세상에서 내가 탄 추위였다. 그것은 또 생존의 불안과 강박증의 산물이었고, 한심하고 초라한 자화상 그리기였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문학은 자기 삶을 돌아보는 작업이다. 특히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곰곰 되새김질함으로써 자아와 세계를 성찰하고자 소망하는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는 여전히 난폭하고 비정하며,
나는 또 너무나 자주 그리고 깊이 상처받고 전율한다. 문학에 대한 열정도 순수도 거덜난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도 한사코 소설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입력시간 2002/09/18
이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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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11. 소설가 이제하-가난에의
의지
"문학은 거창한 것 다 버려야 만날 수 있는 실체"
순정에 겹던 문청 시절에는 “왜 글을 쓰는가” 라는 물음이 “왜 밥을 먹는가” 라는 소리처럼 해괴하게 들렸다.
목수더러 대패질, 못질을 해서 왜 집을 지으려는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얼마 전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온 일이 있다.
“문학을 하려고 합니다. 월수는 얼마쯤 되며 전망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좀 알았으면 합니다.”
문학이라는 말의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실업계 고교 졸업반쯤의
학생이려니 했다가 정작 질문자가 여중생으로 드러나 더 놀랐을 것이다.
글을 읽었을 때 도대체 어이가 없던 그 첫 느낌은 그러나 차츰 가시가
씹히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 변했다.
월수라…. 끝내 댓글을 거기 달아주지는 못했지만 그새 필자가 나름으로 궁리 궁리해본 대답은 대충 이렇다.
“여성 상위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성천하의 시대가 오는
것도 시간 문제겠지요. 그러므로 전망도 아주 밝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월수 천 만원 정도는 예사가 아닐까요. 그렇게 되면 사진발도 잘 받아야 하니까 얼굴 가꾸는 일에도 게을리 마시고….”
힐책 삼아 눙쳐 본 소리가 아니다. 잡다한 영상 매체들의 영향을 들먹이면서 여기저기서 ‘문학의 위기’ 운운 하는 소리는 나오고 있어도, 그 많은 대학의 그 많은 문예창작과 학생들조차도 ‘데뷔’라는
소리가 입에 익고 ‘사진발’이 노상 염두에 늘어붙어 괴롭히고 있다면 이건 어쨌든 문학에 대한 열정의 증좌이지 불모 현상은 아니다.
그 표출방식이 어쩐지 뒤틀려 있다고 생각될 뿐이다.
비근한 예로 이를테면 근자 나온 창작집들 중에 사진 대문짝만하게
겹으로 안 실리고 평론가의 보완해설 곁들이지 않은 책을 본 적이 없다.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가령 전람회 팸플릿 같은 것에 간단한
약력 외에 상 받은 이력이나 여타의 직함과 해설 따위들이 줄줄이 페이지를 메우고 있으면 “이 작자 작품이 허하니까 간판이나 내세우는군” 하는 생각이 제풀에 들어도, 문학 쪽은 어떻게 된 셈인지 그런
요란이라도 떨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름다우라고 치장한 책이 저자의 아집이나 야망, 상품광고에 동원되는 탤런트의 이미지부터 전달한다면 분명 뭔가가 잘못된 게 아니겠는가.
물론 몰염치한 출판업자들의 파행으로 전적인 탓을 돌릴 수도 있다.
문지나 창비 도장을 배꼽에 찍지 못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거나 그게 싫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인 행세라도 해서야 그나마 몇 권쯤
책이 팔린다는 소리 역시 그런 눈요기 파행의 한 증좌다.
문학의 주 소비층이 만화 독자들이기 때문인지 바야흐로 멀티 영상
시대이어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아니면 우리의 문화층이 아직도 과도사회의 난장판 대합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일까.
그런 식의 데뷔나 그 부침이 가수들처럼 월 단위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는 해도, 이건 시장의 도떼기판이지 제대로 가고 있는 문학의 행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마음의 가난이나 겸손이 작가가 지녀야 할 기본 덕목의 하나라고 아직도 믿고 있는 필자가 시대에 뒤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왕년의 사대부나 제도권의
먹물 선비들을 비웃던 이념권의 먹물
선비들처럼 가난을 짐짓 체통으로 여기고 자랑 삼을 생각이 필자에게는 없다.
배가 부르면 하루아침에 부르주아지
속성을 드러내고 여의치 못하면 송곳니 갈기를 계속 강요하는 세태가 여일하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단세포적인 그런 시대의 속성 만을 탓할 수도 없을 것이다.
변덕스럽고 누추한 그 꼴들을 그동안
너무 흔하게 보아와서가 아니라, 정직하게 써서 정당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비로소 문학도 당당한 그런 것이
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글 쓰는 일이 자기 구원이니 세상에 대한 보복이니 하는 소리도 그런
시류와 허세의 악순환 틈에서 비어져 나오는 비명일지 모른다.
문학이 구원이 되려면 죄를 인정해야 하는데 진보도 보수도, 참여도
순수도 제 허물을 자인하는 사람은 지금 아무 데도 없다.
필자는 문학을 구원에 이르는 무슨 종교 같은 것이라고도, 그것을 넘어서는 해탈 같은 것이라고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더구나 그것이 민족혼과 그 중심에 가 닿을 수 있는 결연한 의지라거나 공평한 세상에 일조하는 도구라는 식의 가당찮은 생각 같은 것은
꿈에서조차 떠올려본 적이 없다.
그런 것들을 믿었다면 지금쯤 사제가 되었거나 지사라도 되어 벌써
문학을 버렸을 것이다.
충만하면서도 근원적으로는 공허한 바다처럼, 필자에게 문학이란 차라리 어깨에 힘주어야 하는 그 모든 거창한 것들을 완전히 제외시켜
버리고 난 뒤에야 만날 수 있는 어떤 실체이다.
굳이 따지라면 그것은 나와 세상 사이의 혹종의 ‘관계’이고 그 알파 내지 플러스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한 올의 거짓도 틈입 못할 정도로 나와 세상 사이가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졌을 때에야 그 핀트도 바로 잡힌다.
쓸쓸한 빈소에서 홀로 절하고 있는 사내의 양말 뒤꿈치에 구멍이 나
있으면 그것은 어김없는 이 나라의 시인이고, 술 한잔 걸쳤다고 그런
시인에게 덤벼들어 무작정 주먹다짐을 하는 것도 자세히 보면 영락없이 시인이다.
좋은 세상 만든다고 외치고 있는 자는 정상배고, 광주를 떠들고 있는
자는 틀림없이 거기서 도망쳤던 자이다.
이런 부정적인 시선을 강요하는 세상과 그 부정을 다시 부정하려는
자아 사이의 긴장. 굳이 주제까지 말을 하라고 한다면 필자가 여태 써온 글들의 중심 뼈대는 모두가 그것이었다고 할밖에는 없다.
이 땅의 세칭 그 ‘민주화 투쟁’ 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점검해볼 요량으로 1970년대를 백 플래시로 삼은 어느 소설에서던가 ‘저는 발끝
하나 다치기 꺼리면서 남의 목숨은 분신이나 하라고 불구덩이 속에
차 넣던 자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는 대화를 지문으로 썼다가 일간지의 어느 서평 담당 기자에게서 시비 비슷한 항의를 지상으로 당한
적이 있지만, 노조 위원장 같은 유형은 절대로 소설 속에서도 악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그 적절하고도 해괴한 논리나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소설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어떤 형식이 아닐까 보냐는 이쪽의
해명도 말하자면 나와 세상과의 그런 시각적 관계이다.
적절하다는 것은 ‘노조 위원장’이라는 대명사가 당대 시류의 긍정적인 대세를 이루고 있거나 그 일반적 연민 아니면 공감 같은 통념을
가리키고 있어 그렇다는 것이고 그것이 해괴하다는 것은 문학의 자주성과 그 반역의 속성과 정체성 따위를 말하는 소리이다.
국문과 출신의 어느 비평가가 국문학자를 소설 속에서 희화화 시켰다고 비비 꼬였다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한다면 그것이 제대로 된 비평이고 옳은 비평가라고 할 수가 있을까.
이 나라에서 문학을 한다는 소리는 그래서 결국은 가난의 의지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일견 깨끗하고 겸허해 보이기는 하지만 속은 텅 빈 채 아무 것도 없는 것을 가난이라고 한다면 일제 말기부터 시작된 필자의 가난은 한마디로 벌거벗은 자연(自然)이었다.
새삼 바라볼 것도 없던 그 자연. 그것도 새나 나무나 수풀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울창한 숲 같은 것이 아니라 눈 닿는 한 벌겋게 묻어나는
황토와 시든 잡초가 반점(斑點)처럼 얼룩진 황폐한 들판이 전부였던
그 자연.
미당의 시를 빌리자면 ‘말라버린 여울바닥은 독자갈들을 드러내고
그 위에 또 무당이 포개어 앉아 오른손의 금을 펴보는’ 그런 벌거벗은 자연 말이다.
지루해서 더 이상 견디며 바라볼 수가 없던 그 가난한 자연이야말로
뜻밖에도 예사롭지 않은 인내심을 밑천처럼 필자에게 남겨놓았던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제하 연보
▲1937년 경남 밀양 출생
▲홍익대 서양화과 중퇴
▲1957년 ‘신태양’ 신인문학상에 소설 ‘황색 강아지’ 당선ㆍ1958년 ‘현대문학’에 시 ‘노을’ 등으로 추천 완료
▲소설집 ‘초식’ ‘기차, 기선, 바다, 하늘’ ‘유자약전’ ‘용’
장편소설 ‘광화사’ ‘소녀 유자’ ‘진눈깨비 결혼’ 시집 ‘저 어둠 속 등빛들을 느끼듯이’ ‘빈 들판’ 영화칼럼집 ‘이제하의 시네마천국’ ‘괴짜들 짱구들, 젊은 영화들’ 등
▲이상문학상(1985) 한국일보문학상(1987) 편운문학상(1999) 등 수상
입력시간 2002/05/29 17:33